오히려 그 같은 남성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것이 바로 TLC의 스타일이다. 남성들과 동등해질 여성들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그 구도 자체를 허무는 것이며 차라리 그 구도를 역전시키는 것이었다. 솔트 앤 페파나 엔 보그 같은 선배 여성그룹들에게 영향받았을 법한 이들의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태도는 이미 페미니즘이나 성 담론의 차원을 넘어선다.
천방지축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등장했던 데뷔시절부터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지나 사이버 여전사의 모습으로 변신한 최근까지 이들의 남성 상은 한결같다. 이들에게 남성은 즐거움의 상대인 동시에 언제나 계도대상이며 한 수 아래인 존재다.
데뷔앨범
남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내심 가슴 떨리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가치전복(?)적 마인드가 담긴 ‘여성찬가’는 그러나 그리 과격하지 않은 형태로 전달된다.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접근하는 TLC의 메시지는 섹시하고 사랑스럽게 들린다.
그만큼 이들의 음악은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것이 남들과 구별되는 이들만의 뛰어난 능력이다. 비록 그것이 치밀한 계산의 산물일지라도 발상이 새로운 이들의 메시지와 남들이 다 속을 정도로 완벽한 이들의 모습은 분명 감탄할 만한 의미를 지닌다.
티 보즈(T-Boz), 레프트 아이(Left Eye), 칠리(Chilli)로 이뤄진 TLC는 1991년 미국의 애틀랜타에서 결성되었다. R&B 여성 가수 페블스(Pebbles)에 의해 발탁된 이들은 댈러스 오스틴과 베이비페이스의 <라페이스(LaFace)>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1992년 데뷔작 <Oooooooh... On The TLC Tip>을 발표했다.
넝마 같은 힙합 바지를 입은 장난꾸러기 모습으로 데뷔한 이들은 급속도로 팝 음악계를 잠식했다. 수록곡 ‘Ain`t 2 proud 2 beg’(6위), ‘Baby-baby-baby’(2위), ‘What about your friend’(7위)가 연이어 싱글차트를 휩쓸며 ‘여성의 즐거움’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어 1994년에는 2집 <Crazysexycool>이 발매되었다. 개구쟁이 소녀에서 깔끔한 숙녀로 변모한 이들은 관능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며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성공을 맛봤다. 힙합과 팝, 소울이 가미된 이 앨범은 3곡이나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래미상, 빌보드 어워즈, MTV 어워즈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1천만 장이 넘게 팔린 그 앨범은 또한 지난 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힙합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이들은 공연패션으로 콘돔의상을 입고 나와 충격을 주는 등 남다른 상상력을 이어갔다.
그 같은 성공 여파로 이들은 이후 장기간 휴지기에 들어가서 해체 의혹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1999년 3집 <Fan Mail>을 출시하며 팬들에게 복귀했다. 전작들과 음악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관록의 TLC답게 일정수준 이상의 노래들을 선보였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싱글 ‘No scrubs’와 ‘Unpretty’를 차트정상에 등극시키며 저력을 과시했다. 사이버 시대답게 앨범 커버와 외모를 사이버 패션으로 장식해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TLC는 완벽한 팝 사운드와 넘치는 끼로 여성그룹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비록 그 성공의 절반은 LA 리드&베이비페이스, 지미 잼&테리 루이스, 저메인 듀프리, 댈라스 오스틴 같은 막강 프로듀서들의 몫이지만 TLC의 눈부신 활약은 그 절반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다. 적어도 마초적 남성사회에게 구속되지 않고 오히려 역습하는 이들의 재기는 분명 그들 자신의 공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