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밴드는 시나위와 H2O 출신의 두 베테랑 강기영(베이스)과 박현준(기타)이 이윤정(보컬)을 뽑아 1995년에 결성한 밴드다. 이 세 명의 조합부터 왠지 수상쩍다. 강기영과 박현준은 국내 록음악계에서 최정상급으로 분류되는 연주자들이다. 하지만 이윤정은 보컬리스트로 초보였고, 또 일반적인 가창력을 따지자면 지극히 평범한(어쩌면 떨어지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짬뽕.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이들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당시 국내 록음악 진영은 헤비메탈 전통의 화려한 테크닉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연주력도 형편없는 펑크 밴드는 밴드로서 인정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앞서 말한 무거움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삐삐밴드는 이 같은 통념에 안티를 걸었다.
데뷔앨범 제목부터가 <문화혁명>이다. 이 앨범에서 강기영, 박현준은 누구보다도 훌륭하고 어려운 연주를 펼쳐 보일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아주 쉬운 연주만을 해 보였다. 사실 이러한 아마추어리즘은 그간 이들을 아꼈던 록 팬들이 보기에는 명백한 배신이며 반역이다.
여기에 이윤정의 보컬은 그야말로 가벼움의 극치다. 마치 ‘백치’인양 무대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재잘댄다. 그녀의 보컬은 뛰어나진 않지만 못 말리는 폭발력이 있었다. 절대 음정과는 상관없이 자기 식으로 노래부르는 그녀는 ‘노래를 꼭 잘 불러야 하니?’라고 고정관념을 비웃는 듯했다.
이들의 음악 자체도 청취자에 대한 테러다. 대표곡 중 하나인 ‘안녕하세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만 반복한다. 무미건조하긴 ’딸기‘도 마찬가지. 곡 길이도 펑크의 3분 미학을 그대로 적용해서 ’무언가 더 나오겠지‘하며 기다리는 이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이러한 삐삐밴드의 전략은 게릴라식으로 변해갔다. 우선 이들은 펑크 밴드로는 이례적으로 가끔 TV 출연도 했다(그것은 물론 이윤정의 상품성 때문이다). 요즘 어느 쇼프로그램에서 대표적인 코너로 자리잡은 ‘게릴라 콘서트’도 삐삐밴드가 먼저 시작했다.
이들은 홍대앞, 상계동 등을 돌며 급작스런 콘서트를 진행했다. 또한 비틀스가 1969년 애플사 건물 옥상에서 기습 공연을 한 데서 영감을 얻어 이들은 강남역 근처의 한 건물 옥상에서 ‘깜짝쇼’를 해 화제를 이어나갔다.
삐삐밴드의 도발은 2집 <불가능한 작전>에서도 계속됐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따온 제목부터 키치(kitsch)적인 냄새가 그윽하다. 웃음소리, 녹음실의 대화 등이 그대로 삽입되어 음악을 하는 건지 장난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이 앨범은 펑크 일색이던 전작과는 달리 달파란으로 개명한 강기영의 주도로 테크노 곡들이 대거 실렸다. 그래서 다소 난해하게 느껴졌으며, 황신혜밴드의 전 멤버 조윤석을 모델로 한 ‘유쾌한씨의 껌 씹는 방법’ 정도가 대중들의 호응을 얻었다.
2집 활동 후 삐삐밴드는 약간의 노선 수정을 하게 된다. 좀더 진지한 음악을 하길 원하던 강기영, 박현준은 이윤정을 방출하고 그룹 토마토 출신의 고구마(권병준)을 영입했다. 밴드 이름도 삐삐 롱 스타킹으로 바꿨다. 록으로 회기한 이들은 3집 <원웨이 티켓>을 발표하고 수록곡 ‘바보버스’로 인기몰이에 나섰다.
삐삐 롱 스타킹은 얼마 후 역사에 남을만한 사고를 쳤다.
일련의 파문 후에 삐삐 롱 스타킹은 “우리는 (침이 아니라) 물음표(?)를 뱉은 것이다”라는 서두말로 항의문을 발표했다. 너무 많은 시련에 시달린 탓인지 얼마 후 이들은 음악적 견해차라는 이유로 해산했다.
해산 후 강기영은 ‘달파란’이란 이름으로 테크노 음반 <휘파람 별>을 발표하고 지금도 테크노 DJ로 활동 중이다. 박현준과 고구마는 99, 원더버드 등에서 함께 밴드생활을 했으며, 박현준은 현재 3호선 버터플라이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다.
파격과 일탈로 주류 문화에 대항했던 삐삐밴드(그리고 삐삐 롱 스타킹)는 결국 모호한 물음표를 뒤로 한 채 사라졌다. 이들의 기행이 어느 정도까지 진정성을 지녔는가는 아직도 의문이 남지만 이들이 몸소 실행한 도전정신은 기억해야 할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