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그녀는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수많은 뮤지션들에겐 훌륭한 스승이자 좋은 선배의 본보기였다. 마이클 잭슨의 어린 시절 우상이 바로 다이아나 로스였으며 그녀를 닮길 원해 성형 수술을 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마이클 잭슨의 1987도 앨범
1960년대 흑인 음악의 공장 모타운 레코드의 주력 상품이었던 슈프림스의 리드 보컬로 있으면서 모타운의 사장 베리 고디와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했던 다이아나 로스는 뛰어난 외모와 치밀하게 아름다운 가창력, 그리고 세련된 매너로 그룹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그녀의 이 스타 기질과 베리 고디의 아낌없는 서포트에 힘입어 다이아나 로스가 1969년 독립 활동을 발표하자 걸 그룹의 최고봉 슈프림스는 해산한다.
’Reach out and touch(20위)’, ’Remember me(16위)’, ’Surrender(38위)’, 그리고 마빈 게이(Marvin Gaye)와 태미 테럴(Tammi Terrell)이 함께 불러 1967년에 19위를 기록했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를 리메이크해 싱글 차트를 3주간 정복한 다이아나 로스는 성공적인 홀로서기를 했다. 이 노래들은 1984년 ’Solid(12위)’란 히트곡을 낸 부부듀엣 애쉬포드 & 심슨(Ashford & Simpson)이 수혈한 작품들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엔터테이너적 재능은 단지 무대 위에서만 한정되지 않았고 스크린에서도 그 끼를 발산했다. 전설적인 재즈 싱어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일생을 영화로 만든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에서 빌리 홀리데이 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이루었고, 이후 <마호가니>와 <더 위즈> 등의 영화를 비롯해 TV 영화에도 얼굴을 내밀어 가볍지 않은 연기력을 과시했다.
흑인 디바 다이아나 로스는 1970년대를 통해 ’Touch me in the morning(1973년 1주간 1위)’, 마빈 게이와 호흡을 맞춘 ’You’re a special part of me(12위)’, ’Last time I saw him(14위)’, 국내에서도 애청된 ’Do you know where you’re going to(1976년 1주간 1위)’, 디스코 스타일의 ’Love hangover(1976년 2주간 1위)’ 같은 대형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팝 역사에 ’다이아나 로스’라는 이름의 철도를 가설했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디스코 성향의 곡들을 취입했는데 바로 그 상업적 음반의 결정판이 디스코가 사향 길에 접어들고 새로운 물결인 뉴웨이브가 도래하던 1980년에 공개한
1980년에는 마이클 더글라스(Michael Douglas) 주연의 영화 주제가 ’It’s my turn(9위)’과 1981년에는 코모도스(Commodores) 출신의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와 함께 영화 <끝없는 사랑>의 사랑의 테마 ’Endless love’로 빌보드 싱글 차트를 9주 동안 장기 집권하면서 영화 음악으로도 쉼 없는 인기 행진을 이어갔다. 1994년에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가 다시 불렀지만 원곡의 부드러움과 원숙함에는 미치지 못했다(1994년 2위).
이렇듯 1980년대 초반 이 흑진주의 인기는 거칠 것이 없었다. 1956년 6위를 기록했던 프랭키 라이몬 & 더 틴에이저(Frankie Lymon & The Teenager)의 ’Who do fools fall in love’를 커버해 7위에 랭크시켰고 ’Mirror Mirror’는 8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작곡과 프로듀싱을 담당한 ’Muscles(10위)’ 등으로 인기 차트를 융단폭격 하면서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과 함께 1980년대 초반 흑과 백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섰다.
1984년에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의 영어 앨범 <1100 Bel Air Place>에 수록된 발라드 ’All of you(19위)’를 위해 입을 맞추었으며 같은 해 가을에 공개된 자신의 독집 음반
1960년대에는 모타운 레코드의 사장 베리 고디에 의해 움직이는 바비 인형처럼 체제에 순응하는 가수로 인식되었고 그 당시 슈프림스는 새로운 음악 트렌드를 창조하면서 그 유행을 좇았다. 한편에선 소울이 등장해 흑인 형제자매들의 자긍심을 표현했지만 슈프림스는 그 현실을 외면한 채 침묵의 악보에 그려진 음표에 의한 사랑타령으로 엄청난 부와 인기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백인들로부터도 거부감 없는 ’엉클 톰’이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당대 최고의 여가수인 다이아나 로스에게 쉽게 아물지 않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흑진주가 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그녀의 음악 인생이 현대 흑인 음악의 역사와 그 궤적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자신에게 밀려오는 음악적인 고독과 인간적인 자괴감을 잊을 수 있었다.
종소리는 때리는 자의 힘만큼 울려 퍼지듯 대중 음악의 내력에서 다이아나 로스의 이름도 그녀의 명성만큼이나 굵고 선명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