젝키의 소속사인 DSP엔터테인먼트 이호연 사장은 “3년간 연예활동을 펼치면서 많이 지쳤다. 또 데뷔 당시에는 10대들이었지만 이제 모두 20대에 접어든 만큼 각자에게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게 도리인 것 같아 해체를 결심했다”고 말했으며 기자회견에서 젝키는 “항상 쫓기는 스케줄과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지난 3년 남보다 힘든 성인식을 치뤘습니다. 특별한 이유보다는 가장 좋은 모습일 때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은퇴를 결심했습니다.”라고 입장을 정리하며 화려했던 인기와 달리 궁색한 해체의 변을 늘어놓았다.
1997년 발표한 그들의 첫 앨범은 나오기도 전에 인터넷을 통해 인기를 끌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모태로 삼았다는 ‘학원별곡’으로 단숨에 10대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이들은 두 번째 앨범으로 서울가요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스타 그룹의 자리에 등극했으며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선 댄스그룹을 대표해 처음으로 공연을 가졌다. 인기에 힘입어 <세븐틴>이라는 영화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라는 뮤지컬에 출연하여 인기의 가속행진을 계속한 이들은 ‘Road fighter''와 ’‘무모한 사랑’이 연속 히트한 3집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대한민국 영상음반 본상과 제9회 서울가요대상에서 HOT와 공동으로 대상을 받는다. 또한 영화의 곡들을 모은 스페셜 앨범에서 ‘커플’을 거푸 히트 반열에 올렸으며 4집에서의 ‘Com'' back''과 ‘예감’으로 당시 떠돌던 해체설을 불식시켰다. 그러나 3년간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던 이들은 마지막 앨범
이 후 은지원은 G라는 이름으로 ''Never ever''라는 곡을 발표했으며 강성훈은 워너뮤직코리아와 3장의 앨범을 계약하고 첫 앨범 <비상>을 발표했다. 또한 고지용은 인터넷 쟈키를 하며 연기자에 대한 포부를 밝히고 있으며 댄스를 담당하던 김재덕과 장수원은 스펙(Spec)이라는 댄스학교를 열었다.
젝키의 해체는 음악적인 재능이 있어도 살리지 못하고 바쁜 스케줄 속에서 기획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댄스 음악계의 소년.소녀들이 누리는 반짝 인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철저한 상품이며 언제고 버림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댄스 가수들의 운명을 팬들은 인식했으며 시류와 영합한 시장성과 댄스라는 틀에 박힌 음악이 영원할 것 같던 그들의 10대와 더불어 사라짐을 눈으로 목격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종은 하루만 지나면 TV 속의 찰나적 환상 속에 묻히고 여전히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일방통행의 음악 문화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