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Radiohead)
활동시기 : 1990년대~
데뷔/결성 : 1989년
콜린 그린우드(Colin Greenwood, 베이스),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 기타), 에드 오브라이언(Ed O'Brien, 기타/보컬), 필 셀웨이(Phil Selway, 드럼), 톰 요크(Thom Yorke, 보컬/기타)
# "우린 우리 맘대로 간다!"

서태지만큼이나 국내 팬들이 간절히 기다린 앨범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신보일 것이다. 출시 오래 전부터 평단과 팬들의 가슴을 졸이며 고대했던 이번 앨범은 서태지식으로 하자면 ‘내 맘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 라디오헤드는 3년만의 신작을 통해 그간 일궈놓은 자신들의 신화를 무차별하게 파괴하면서 또 다른 세계로의 확장을 꾀하고있다. 음악은 대중성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생경한 사운드로 가득하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최강의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도도한 음악선언을 해부한다.

지난 9월 영국의 음악관련 여론조사로 가장 권위 있는 ‘버진(Virgin) 올 타임 톱 1000 앨범’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규모도 최대일 뿐 아니라 이번을 포함해 3차례 밖에 실시하지 않아 비상한 관심이 쏠린 이 매머드 폴은 가장 우수한 앨범 1000장을 뽑는 조사로서 이번에는 뮤지션, 음악관계자, 평론가, 팬들을 망라해 자그마치 20만 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영국을 비롯해 서구에서 실시하는 음악관련 리서치는 어떤 것이나 대부분 비틀스가 1위를 차지하는 게 일종의 법칙처럼 되어있다. 그래서 싱겁고 맥이 풀릴 때가 많다(물론 비틀스매니아는 빼고). 이번에도 1위는 어김없이 비틀스의 < Revolver >였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는 아주 눈 여겨 볼만한, 그야말로 반란에 가까운 이변이 일어났다. 비틀스의 30년 후배 밴드인 라디오헤드의 앨범 < The Bends >와 < OK Computer >가 당당 2위와 4위에 오른 것이다. 비틀스의 명반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와 < Abbey Road >는 3위와 5위였다. 정상은 여전히 비틀스였으나 라디오헤드의 < The Bends >가 이 두 역사적 명반을 꺾었다는 것은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자 영국 언론들은 일제히 ‘언제나 최고였던 비틀스의 견고한 로큰롤 왕관이 라디오헤드로부터 위협 받고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제 비틀스를 넘본다

이번 조사에 나타난 라디오헤드의 급부상은 동시대에 경쟁한 브릿 록밴드와 비교했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1995년 전 영국을 휘몰아쳤던 오아시스의 <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는 21위에 머물렀고 다음 앨범 < Be Here Now >는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무려 400위 이상이 떨어져 459위로 침몰했다. 블러의 < Parklife >도 60계단이나 하락, 95위로 주저앉았고 프로디지의 < The Fat Of The Land >도 54위에서 269위로 비참하게 퇴각했으며 더 버브의 < Urban Hymns > 역시 2년 전 45위에서 200위권 바깥으로 밀려났다. 10위에서 2위로 오른 < The Bends >와 21위에서 4위로 비상한 < OK Computer >의 라디오헤드와 비교할 때 이들의 퇴조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브릿팝 대회전, 아니 서바이벌게임 승리의 축포를 쏴라!)

사람들은 이 조사 이후 곧바로 라디오헤드의 신보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어쩌면 그 조사는 라디오헤드의 새 앨범에 대한 팬들의 드높은 기대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팬들은 정말 눈이 빠지게 신작을 기다려왔다. 그 학수고대는 라디오헤드의 음악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구체적으로는 바로 4위에 오른 앨범 즉 1997년의 < OK Computer >의 높은 완성도와 대성공 때문이었다. 영미권에서만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이 기념비적 음반으로 그들은 이번에 증명되었듯 비틀스 신화를 잇는 ‘영국 현존 최고의 록 밴드’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때문에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음악으로 팬들과 평자들을 만족시켜 줄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로 등장했다. 라디오헤드는 그러나 < Kid A >로 명명된 새 앨범에서 그러한 소박한 기대에는 아랑곳없이, 아니 그것을 저주하듯 철저히 록의 형식미를 파괴해버렸다. 록 밴드 본연의 일렉트릭 기타의 강렬한 소리는 찾기 힘들고 대신 모호한 전자음과 앰비언트 사운드 그리고 소음이 뒤엉켜 있다.

사실 < OK Computer >에서도 이러한 요소가 있긴 했지만 신작은 그런 반(反)록적인 사운드를 바탕으로 자신들 특유의 어둡고 병적일 만큼 암울한 심리상태를 극으로 몰아가고 있다. 라디오헤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자주 들먹이는 어휘인 그들만의 비참주의(miserablism)가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당연히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렵다. 대중노선의 포기라고 할까.

하지만 이것을 역으로 풀어보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들만의 음악을 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으며 우리가 못할 음악은 없다"는 그들의 시위(?)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점에 동의한다면 < Kid A >는 음악상품이 아닌 ‘아티스트의 음악’을 바라는 진지한 팬들의 기대에는 충분히 답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미학적 결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라디오헤드는 이번에 비로소 새롭게 반기를 든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좀처럼 머물러 있기를 거부해왔다. 1993년의 1집 < Pablo Honey >에 수록된 시그니처 송 ‘Creep’은 분명 그들의 오늘을 있게 한 기틀이었지만 2년 뒤 낸 2집 < The Bends >에서 라디오헤드는 그 영광을 스스로 반납하는 용감한 자기부정의 면모를 드러냈다. ‘Creep’을 답습하기는커녕 오히려 새 방향을 제시해 ‘High And Dry’ ‘Fake Plastic Tree’ ‘Nice Dream’ ‘Just’ 등의 곡으로 서정성과 폭발력이 어우러진 자신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정립해냈다. 결과는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대성공이었다.

지속적인 자기변신은 2년 뒤 발표된 3집 < OK Computer >에서 절정에 달했다. 현대인의 편집증적 분열을 변종(變種)의 미학으로 형상화한 이 앨범에서 그들은 이전까지는 볼 수 없던 광범위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냈다. 소리는 한층 복잡해지고 변화무쌍해졌으며 가사는 마치 ‘해체주의 글 쓰기’처럼 난해했다. 음악집단 모두가 게릴라에게 뒤통수를 맞는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아트 록 ‘Paranoid Android’, 현기증을 일으키는 아찔한 발라드 ‘No Surprises’와 ‘Let Down’ 등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곡들이 한 앨범에 동승한 것부터가 놀라웠다.

#< Kid A >는 해독하기 어려운 난수표

노래 속에서 인간 감정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라디오헤드의 제1의 과업으로 보인다. 테크놀로지가 구축해 논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소외감, 미래에 대한 불안, 광기와 같은 현대인의 병리현상을 한사코 음울한 곡조로 묘사해왔다. 그들 눈에 지금의 세상은 일그러짐 그 자체이며 그들은 그 속에서 휴머니티를 복원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이번 앨범에도 그 같은 사회인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앨범 타이틀 ‘Kid A’는 최초의 복제인간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코앞에 닥친 복제인간(톰 요크는 얼마 전 웹 채팅에서 그것이 이미 만들어져있다고 주장했다)을 보는 그들의 눈은 냉소적이고 씁쓸하다. 어쩌면 이 같은 라디오헤드의 인식 패러다임은 인간소외를 우화(寓話)로 풀어낸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이들한테 인간의 윤리의식과 결부된 복제인간 문제는 당연한 화두와 쟁점일 수밖에 없다.

첫 곡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는 뭐가 제자리에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키보드 소리와 일렉트로닉 효과음이 어지럽게 떠돈다. 신비스런 소리들과 묘한 불협화음으로 시작되는 타이틀 곡 ‘Kid A’에서 톰 요크의 보컬은 복제인간을 묘사하는 듯 심하게 왜곡되어 있으며 둔중한 베이스가 곡을 주도하는 ‘National Anthem’에서는 트롬본과 색소폰이 가미되어 프리 재즈 경향마저 나타난다. 이 처음 3곡까지 기타 소리는 전혀 없다. 록밴드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록에 대한 무차별 능멸(?)’이다.

차가운 맛을 전하는 ‘How To Disappear Completely’ 그리고 살짝 테크노 비트를 취하지만 기존 팬들이 겨우 그룹의 옛 향취를 건질 수 있을 ‘Optimistic’도 포함해서 도무지 어떤 카테고리로 집어넣을 수가 없다. 앰비언트 테크노도, 모던 록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트 팝이라고 할 수도 없다. < 롤링스톤 >은 이를 ‘스페이스 록 오페라’라고 그럴듯한 말을 붙였지만 ‘라디오헤드의 새 음악’이란 말 외에는 딴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속지에는 가사도 없다. 들으려면 듣고 싫으면 말라는 식일 터인데 ‘난 여기 없어’ ‘그건 내가 아냐, 난 가서 어디서 즐기나?’ ‘너무 외로워, 너무 외로워’ ‘잠시 후 난 없어질 거야’ 등이 이리저리 퍼진 절망적 메시지의 노랫말은 마치 난수표를 해독하는 기분이다. 대중에 대한 이러한 무(無)배려는 신보에서 단 한 곡의 싱글도, 한 클립의 뮤직 비디오도 발표하지 않는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현재 신곡 가운데 ‘Optimistic’이 가장 많은 전파를 타고 있지만 그것은 라디오 측의 결정이지 라디오헤드의 선택은 아니다. 뮤직 비디오에도 상당한 메시지를 부여해왔던 터라 보통 아쉬움이 남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웅변하는 것은 비타협적 태도와 창조와 실험성으로 요약되는 아티스트의 소중한 가치들이다. 여기에 < OK Computer >의 화려한 매출 그래프를 다시 그리려고 하는 속내는 눈곱만치도 없다.

솔직히 전작으로 대성공을 창출한 뮤지션들이 받는 압박이란 엄청난 것이다. 수록곡 ‘Morning bell’을 코펜하겐에서 녹음하던 때를 기억하며 기타리스트 에드 오브리엔이 "모든 게 어둡고 추웠으며 늘 우린 택시에서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 말에 그 부담감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이 상황에서 음반산업에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모든 중심을 ‘아티스트의 자유’로 곧추세운 것이다. 그래서 획득한 이 ‘프리 드라이브’야말로 앨범의 핵심이다.

이들의 차기 작이 늦어도 내년 초입에 나온다고 한다. < OK Computer >적이고 쉬운 앨범이라는 말이 있지만 라디오헤드는 어려운 앨범 < Kid A >로 빌보드 차트 1위 데뷔 등 이미 큰 성과를 거둔 것 같다. ‘버진 올 타임 톱 앨범 1000’ 조사를 주도한 저자 콜린 라킨은 이렇게 예측했다. "2002년 조사에서는 아마 < Kid A >가 최고 앨범으로 비틀스의 < Revolver >와 겨루게 될 것이다." 비틀스매니아들한테는 큰일 날 소리겠지만 무소속(?) 팬들에게는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한번 2년 후를 지켜보자.
2000/10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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