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여 국내 라디오 프로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을 청취자조사를 통해 선정할 경우 예나 지금이나 비틀스의 'Yesterday', 'Let it be', 아바의 'Dancing queen'과 더불어 퀸의 'Love of my life', 'Bohemian rhapsody'도 어김없이 순위의 꼭지 권에 오른다. 그래서 당연히 국내에는 퀸의 광(狂)팬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고, 또한 다수의 퀸 팬클럽들이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암약한다.
퀸 때문에 모임을 갖고 애정을 교류하는 사람들에게 막상 퀸은 어떠한 존재일까, 과연 그들은 퀸에 대한 국내 관계자들의 해석을 어떻게 평가할까 등은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보다도 퀸에 대한 정보와 해석에 있어서 정통하고 해박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IZM의 방장이자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사석에서 줄곧 “퀸 팬들을 만나야 한다!”고 되뇌곤 했다. 그들한테 도움을 받아 제대로 퀸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난 4월5일 식목일 저녁 7시, 서울 종로2가의 어느 커피숍에서 마침내 그 뜻이 실현되었다. 누구보다도 퀸 음악을 사랑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세심히 챙기는 '열혈 퀸 마니아' 네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임진모씨와 팬클럽과의 조인트는 사실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퀸 팬들과는 몇 차례 접촉을 가졌다는 임진모씨는 퀸 연합모임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호상씨와 터놓고 대화하는 친숙한 사이였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그들과 악수하며 임진모씨는 “와! 일부러 팬클럽 '얼짱'들만 선발해서 나오신 거 아닙니까?!”라며 농을 섞어 인사를 건넸다.
영국 출신의 록그룹 퀸은 1973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래 지난 1991년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에이즈로 사망하기까지 20년간 다양한 연령층을 흡수했고, 오랫동안 대중들과 함께 호흡했던 대표 팝 슈퍼스타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참석한 팬클럽 멤버들은 특정 연령층이 아닌 세대를 아울렀다.

“퀸을 두고 대중들은 삐딱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내의 팝 팬들 다수는 아티스트를 보면서 단지 음악적인 것만을 평가하지 않고 부수적인 것까지 논하려고 들죠. 그런 점들이 늘 제 마음을 아프게 하더군요. 퀸의 경우에 늘 그랬습니다. 퀸을 언급할 때마다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것이 에이즈 걸려서 사망한 그 녀석(프레디 머큐리)이 몸담은 그룹 아냐? 라며 음악을 떠나 일단은 먼저 퀸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으로 접근을 시작하더군요. 제가 인터뷰에 선뜻 나선 이유 중 가장 고려했던 점도 '퀸 바로잡기'였습니다. 퀸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그들이 아티스트였기에 가장 공정하고 중요하게 평가받아야 될 음악 이외에 불필요한 외적인 걸림돌은 올바르게 수정되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호상씨는 첫 대면부터 다부진, 그러나 공손한 어투로 퀸의 음악적 위상과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은 지금에라도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더불어 그간 방송이나 음반 해설지 등을 통해 임진모씨는 물론, 음악 관련 종사자들이 실수를 범했던 부분도 이 기회에 시정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네 사람의 언어는 진지하고 예의 넘치는 가운데에서도 퀸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했다.

(임진모) 그때 어떤 말을 했는지 대충은 기억이 나는데, 아무튼 왜곡된 사실을 방송했다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인터뷰 목적도 그렇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방송을 너무 마음 편하게 했던 거 같아요. (놀라운 표정으로) 아니, 그런데 그 방송 내용과 날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존경스럽네요. 과연 뭐가 잘못됐는지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이호상) 어느 팬클럽회원분이 제공해주신 녹음테이프를 mp3로 자료화해서 회원들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방송 진행자 김현철씨와 그날따라 유난히 즐겁게 방송을 하시더군요. 아마도 그게 주범(?)이었던 거 같습니다. 첫 번째는 퀸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Roger Taylor)가 1984년 3월 내한했을 당시, 그는 “단지 기억하기 좋아서 밴드 이름을 퀸으로 정했다”고 말했거든요. 프레디가 장엄함을 주기 위해서 퀸으로 하자고 제안했다는 기록도 있지요. 퀸이란 이름이 동성애에 따른 인식의 반영은 아니라는 거죠.
두 번째는 임진모씨께서 그날 네 명의 멤버들을 동성애와 결부시켰는데, 3집 <Sheer Heart Attack>의 앨범 재킷 사진을 성적 정체성과는 직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아마 퀸 초기에 글램 록 적인 이미지가 동성애와 관련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근거로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 사망 사실을 언급하셨는데, 한 멤버의 에이즈 사망 사실이 다른 멤버가 동성애자라는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프레디 이외에 나머지 멤버들은 에이즈와는 무관합니다. 넷째로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May)는 두 번이나 결혼한 경력이 있습니다. 물론 로저 테일러와 존 디콘(John Deacon)도 결혼했다고 퀸 관련 자료에는 분명히 나와 있고요. 멤버 가운데 존 디콘이 가장 먼저 결혼했으며 자녀가 무려 6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로저 테일러의 경우, 1989년작 <The Miracle>에 수록된 'Breakthru'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당시 새로 사귄 데비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본래 도미니크라는 여인과의 사이에 결혼없이 두 자녀를 두었는데, 둘의 사이가 벌어져 헤어지기 직전 자녀를 사생아로 만들지 않기 위해 혼인신고를 해서 결혼상태가 되지요. 데비는 그 직후에 만난 광고모델이구요. 프레디 또한 메리 오스틴과 바바라 발렌타인이라는 두 명의 여자친구를 사귀었다고 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사실 프레디는 동성애자가 아니라 양성애자였던 것이죠. 훗날 프레디로부터 런던에 위치한 자택을 비롯한 유산을 상속받았던 메리 오스틴과 결별한 사유는 프레디가 동성애 적인 면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호상씨는 퀸 팬클럽 멤버들 중에서도 강자로 알려진 인물답게 정확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그는 “매스컴들이 흔히 퀸을 두고 음악보다는 사생활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부당하다”며 “때문에 사람들은 퀸을 얘기할 때 항상 에이즈로 사망한 프레디 때문에 해체한 그룹이라고 이해한다. 퀸뿐만 아니라 조지 마이클, 엘튼 존 그밖에 동성애 전적이 있는 아티스트들은 음악을 떠나서 그런 점이 한번씩은 꼭 언급된다. 그것이 참으로 아쉽다.”고 말했다.
그가 말을 떼자 다른 세 사람도 돌아가면서 '왜 퀸은 잘못되고 오해된 부분이 많은가'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한 뒤, 잘못된 사실 전달은 나중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미디어 종사자들은 한 줄의 글에, 한마디 말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송수영)“오해는 상당부분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생활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퀸 같은 슈퍼스타 그룹도 공인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사생활은 있는 법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 점에 있어서 퀸은 너무도 부당한 인식공해에 시달린다고 생각해요.”
(정혜영)“프레디 머큐리 혼자서 십자가를 짊어진 것 같아요. 그러면서 다른 멤버에까지 그 이미지가 확대되었습니다. 신해철은 라디오프로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퀸 멤버 모두는 게이(gay)'라고 말했던 것으로 들었어요. 사실과 무관할 뿐 아니라 방송에서 한번 그렇게 나가면 듣는 청취자들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대중들은 방송 내용을 그대로 믿고 진실로 여기기 때문에 미디어 관계자들은 멘트를 할 경우, 사실에 기초해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으면 합니다.”
(이용준)“특히 우리는 유교적 전통이 있어서 공사(公私)를 뭉뚱그려서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생활과 음악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이용준)
(임진모) “과거 오프라인 시대에는 아티스트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도 없었고, 쌍방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시절이라 잘못 전달되는 부분이 많았음에도 그대로 지나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시대인 만큼 온라인을 통해서 서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이라도 시정될 사항들은 빨리 고쳐져야 나중에라도 정확한 정보의 공유가 가능하겠지요.
어쩌면 퀸에 대한 정보는 제가 여러분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팬클럽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한 아티스트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그 뮤지션에 관해선 저보다 여러 수 위죠. 전 솔직히 무지의 수준이라고 봐요. 그래서 이제 팬클럽을 만나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이 지적해주십시오. 앞으로 퀸뿐만 아니라 저는 다른 아티스트의 팬클럽도 만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수영) 어처구니없지만 가장 큰 오류 가운데 하나가 멤버간의 포지션 혼동이더라고요. 존 디콘을 드러머라고 하질 않나(임진모 <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 아니면 로저 테일러가 베이스를 연주한다고 하던가 뭐 그런 것들이요. 간혹 멤버들의 나이도 가지각색으로 쓰기도 하더군요. 멤버들 모두 학사 출신인데, 석사라고 하기도 하구요. 따지면 부지기수입니다.

이밖에도 그들이 지적한 오류 사례는 한정된 글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례들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호상씨는 인터뷰 며칠 뒤 그것을 묶어 임진모씨 개인 메일로 보냈다). 오류에 대한 내용자체를 넘어 그것들을 너무도 꼼꼼하게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그들의 자세는 감탄을 부를 만한 것이었다.
(임진모) 얘기를 좀 돌려서, 저는 이런 저런 글을 통해 펑크(punk)의 관점으로 퀸을 보수적 태도의 그룹으로 비판해왔습니다. 애정과는 별도의 제 관점에 따른 것이죠. 그 부분도 오류가 있는 겁니까? (이 질문에 이용준씨는 보수적이라는 말보다 주류 지향적이라는 어휘가 더 좋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용준) 퀸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했어요. 그보다는 대중적 성공을 고려했다고 판단됩니다. 프레디도 '우리의 음악을 정치와 결부시키지 마라'고 했으니까요. 특별한 정치의식, 사회의식을 소유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희는 퀸에 대해 '사실'을 문제 삼는 것이지, 사실에 대한 해석을 오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임진모) 1981년 음반 <The Game>을 두고 이전을 전반기, 이후를 후반기로 나누었을 때 1950, 60년대 생들은 주로 퀸의 후기 음반들에 애정을 쏟는 것 같고, 1970, 80년대 생들은 전반기 퀸 앨범들을 상당수 좋아하는 듯 한데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송수영) 꼭 그렇지는 않은 거 않아요. 그건 개인적인 취향차이라고 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1집부터 <The Game>까지의 음악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초기 드라마틱한 곡의 변화무쌍함과 꽉 짜여진 보컬 하모니에 더 깊게 감동을 받았어요.

(임진모) 팬클럽 모임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수많은 아티스트 가운데 굳이 퀸에게 집중하는 이유라고나 할까요. 다른 아티스트를 택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말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송수영씨는 이 질문을 받자 호흡을 잃어갈 정도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만은 40대 주부 아닌 갓 스무 살 여대생과 같았다)
(송수영) 사실 전 하드록 팬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록 밴드가 퀸, 딥 퍼플, 화이트 스네이크 순서죠. (웃으면서) 27년간 팝 음악 들으면서 이것저것 엄청나게 많이 들었지만 결국 나중에는 퀸으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퀸에게 집중하게 되고,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 이유는 자기들만의 색깔을 가장 잘 살린 그룹이기 때문이죠. 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한다고나 할까요. '보 랩'(Bo Rap, 이제 팬들이나 영국 언론이나 'Bohemian rhapsody'를 줄여 이렇게 말한다)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거 같아요.
또한 장르의 폭이 넓다는 게 좋아요. 하드록부터 클래식, 심포니 록까지 다양하게 소화해내는 것이 여타 그룹들보다 퀸을 가장 좋아하게 만든 이유 가운데 하나죠. 초기에는 프로그레시브와 사이키델릭 적인 요소도 있고요. 밴드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까 기타 사운드 위주로 듣게 되지만 퀸이 딴 록 밴드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하드록에서 벗어나 브리티쉬 록 아티스트가 해낼 수 있는 모든 장르를 다채롭게 소화해냈다는 점이죠.
(정혜영) 고2때 처음 퀸의 음악을 접했어요. 퀸이 해체하고도 너무 훗날에 퀸을 들었기 때문인지 저는 상대적으로 더 알려진 초기앨범들이 주로 귀에 와 닿았어요. 저는 나이가 어리고 퀸은 오래된 그룹이잖아요.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점도 전 좋아요. 모임에 나오면 새로운 사실을 아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이용준) 저는 주로 70년대 하드록과 80년대 메탈을 즐겨 듣습니다. 퀸의 음악이 매력적인 이유는 장르의 다양성 때문이죠. 곡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을 지니고 있어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았나 싶고, 저 또한 깊숙이 빠져들었던 거죠. 노래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느낌이 절 사로잡았습니다.
(이호상) 저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까지 클래식과 샹송을 즐겨 들었습니다. 퀸의 음악은 처음 접했던 것이 1993년이었는데 당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가슴을 때렸다고 할까요. 첫사랑의 추억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감동을 주는 것처럼 퀸의 음악은 이후 제 삶의 전부가 됐습니다. 제 경험 때문에라도 전 퀸을 '록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준 그룹'으로 규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퀸의 두터운 코러스 라인과 화려한 사운드가 마음에 듭니다. 특히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프레디의 탁월한 보컬 능력이죠. 그건 하늘이 내린 재능이죠.
(임진모) 그래요. 우리 때도 프레디의 보컬이 5옥타브를 넘나든다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어요. 정말 노래 잘했죠. 그의 음색은 성악하고도 유사합니다. 바이브레이션이 탁월하고 목소리에서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그 만의 색깔이 있거든요.

(임진모) 퀸은 그간 가요와 팝, 팝과 록의 교량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봅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편안함을 제공했다는 것은 큰 장점이죠.
(이호상) 네, 생각해보니까 그 부분이 퀸의 가장 큰 매력이군요. 그 점에 대해 저도 동감입니다. (정혜영) 대부분의 사람들은 퀸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주위에서는 제가 퀸을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놀리더라고요. 요즘 신세대 밴드들도 많은데 왜 하필 퀸 음악을 즐겨 듣느냐면서...
(임진모) 그럼 퀸을 좋아하거나 퀸에 영향 받은 국내 뮤지션들은 누가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한데요.
(이호상) 유영석이 퀸의 광적인 팬이라고 방송에서 공공연히 말했었는데요. 그가 화이트 시절에 '네모의 꿈' 같은 경우는 거의 사운드나 편곡 방식이 퀸의 곡을 모방한 수준이죠. 김종서는 라이브에서 퀸의 노래를 즐겨 불렀고, 블랙홀이 퀸의 곡을 자주 연주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싸이도 방송에서 중3때 퀸의 공연 실황 비디오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고, 플라워의 보컬이었던 고성진이 인터뷰에서 영향 받은 뮤지션으로 퀸을 언급했죠. 자우림의 이선규가 인터뷰에서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다면 퀸과 가비지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K2의 김성면이 부른 퀸메들리가 팬들 사이에서 돌고 있고, 김경호는 그의 앨범 속지에 '프레디 머큐리에게 바치는 노래'라면서 아예 퀸을 언급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신해철이 넥스트 시절 'The age of no god'라는 곡의 뮤직 비디오에 퀸의 2집 앨범 재킷을 살짝 넣었고요. 특히 신해철의 스테이지 매너가 퀸의 라이브를 보고 흉내낸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밖에도 더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일단 여기까지로 압축하겠습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호상씨는 정말 세세한 사건들까지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진정한 이 시대의 퀸 마니아였다. 퀸과 관련된 스토리는 줄줄이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대다수 음악 팬들이 몰랐던 사실까지 그는 속 시원히 밝혀주는 '퀸 소식통'이었다.
(임진모) 그럼 팬클럽의 활동 역사는 어떻게 됩니까?
(이호상) 1990년대 초반 PC통신 나우누리에서 '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최초의 팬클럽이 존재했었고, 하이텔에서는 퀸 음악 소모임 'Killer Queen'이 잠깐의 활동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유니텔과 천리안에서도 나름대로 모양새를 갖추고 모임이 있었고요. 그러다가 훗날 이들의 모임이 시들해질 즈음에 인터넷에서 새롭게 팬클럽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는데 지난 2000년에 '퀸 연합모임'이 탄생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팬클럽 운영진으로 보면 되고요.
(임진모) 나이가 가장 어린 정혜영씨는 연합모임에 나가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정혜영) 일단은 많은 분들을 알게 되어서 기쁘고요. 4년 정도 꾸준히 모임에 나가다보니까 나이 많으신 분들과 친해지는 것도 새로운 흥미 거리를 만들어주더군요.”
(임진모) 송수영씨는 83학번인데 어떻게 모임에 나갈 생각을 하셨는지요. 힘드셨을 텐데!!
(송수영) 인터넷에서 팬클럽이 가장 먼저 생긴 해가 1999년입니다. 저는 2000년에 가입했구요. 모임에 나와 보니까 퀸 팬이라면 50-60년대 생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70-80년대 생들이 많더군요. 음악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일단은 왜곡된 방향으로 그룹 퀸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아서 더 모임에 열심히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퀸에 대한 사실과 정보를 바로잡아야 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거든요.
(이호상) 80년대 중반에도 지금의 구성과 조직체계를 능가하는 팬클럽 활동이 있었답니다. 1984년 로저 테일러와 존 디콘이 방한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는데, 아쉽게도 활동은 네 차례의 정기 영상회로 끝나고 말았지요. (이 대목에서 그는 당시 팬클럽을 주도한 홍종근이라는 이름의 한 팬이 자신에게 전해준 영상콘서트 회보, 영상회 티켓, 멤버십 카드, 모임 팜플릿 회지 그리고 열쇠고리와 배지 등을 꺼내 탁자에 쭉 펼쳐놓았다. 묵은 회지에는 '87년 2월24일 파고다공원 옆 종로3가 파고다극장에서 영상회가 있다'고 써 있었다. 퀸에 대한 우리 팬들의 오랜 사랑을 말해주는 단서가 아닐 수 없었다.)
(임진모) 그럼 퀸 마니아가 뽑은 베스트 앨범과 노래를 알고 싶은데요. 각자 하나씩 언급해주세요.

퀸의 곡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보 랩'입니다. 그 곡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데요. 그 곡을 뽑지 않는다는 것 또한 어떻게 보면 저한테 아이러니입니다. 그만큼 '보 랩'은 제가 퀸의 음악에 몰입하는데 절대적이었죠.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2집 <Queen Ⅱ>을 꼽습니다.

(송수영) 가장 좋아하는 앨범과 곡을 대라는 그런 질문이 사실 맘에 들지 않습니다. 전 1집부터 <The Game>까지의 퀸 음악은 다 좋아합니다. (조금 비겁하다고 하자 웃으며) 너무 힘든데 굳이 하나만 선택하라면 4집 <A Night At The Opera>라고 말하고 싶네요. 저 또한 곡으로는 '보 랩'을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혜영) 전 가장 좋아하는 곡이 'Somebody to love'입니다. 클래시컬하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코러스도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2집입니다.

80년대 퀸의 팬이었다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기한 각종 희귀한 자료들을 보면서 임진모씨는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진정한 퀸 팬이었나 보군요. 저도 학창시절에는 누구보다 퀸을 좋아하긴 했지만 누가 이렇게 하라 해도 못할 겁니다. 그 분의 대단한 열정이 부럽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구요. 전 조금 죄스런 기분이네요.”(그러면서 임진모씨는 사진도 조금 죄인처럼 찍어달라는 요구를 해서 좌중을 웃겼다)

현재에도 끊임없이 애정을 쏟고 있는 그들과의 자리였기에 퀸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150분간 열띤 토론과 120분 '음주대화'로 이어졌다. 술자리에서는 퀸에 대한 얘기가 더 풍부하게 펼쳐졌다. 임진모씨는 이호상씨에게 퀸에 관한 단행본 평전을 출간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퀸의 음악은 5-60년대에 태어난 중년뿐만 아니라 7-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젊은 세대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미음(美音) 그 자체다. 때문에 나이와 시대를 초월해서 변함없이 그들이 팝 인구에 회자되는 것임이 이번 자리를 통해 확인되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에미넴, 비욘세, 저스틴 팀벌레이크 등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지만 지금도 레코드 매장에서는 퀸의 음반들이 신세대 스타들과의 경쟁에서 꿋꿋이 스테디셀러를 기록할 만큼 잘 팔린다.
1991년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의 사망은 퀸과의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의 히트 레퍼토리들은 90년대를 지나 지금에도 꾸준히 대중들의 가슴속을 흔들어놓는다. 라디오와 TV에서 그들의 음악이 흘러나오면 팬들의 가슴 한 구석에는 애절한 메아리가 응얼거린다. 비틀스와 아바처럼, 시대가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퀸의 존재와 음악이다. 비록 이제는 신보를 공연을 볼 수 없지만, 넷의 열정이 고스란히 스며든 멋진 연주와 환상적인 보컬은 무궁한 생을 거듭할 것이다. 이날 팬클럽의 경이로운 애정을 빚어낸 원천도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