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의 발라드 모음집 <His Ballad 2>가 나왔다. '침묵의 기록'을 타이틀 곡으로 밀고 1997년 발표했던 <His Ballad>의 연장선상에 있는 음반이다(절판되었으나 이번에 <His Ballad 1>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재출시했다). 그 해의 <His Ballad> 이후 현재까지 6년 동안 내놓은 결과물은 다섯 개. 꽤나 부지런한 움직임이었지만 정규 음반이 더 적다. 단순히 음반의 형식만을 생각한다면 도전에 주춤하는 음악적 퇴행이라던가, 안전한 판매 수입만을 생각하는 안일함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겠다.

기획 음반의 형태가 단순히 판매를 보장하는 히트곡의 나열이었다면 그는 너무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라이브(<무적전설>(1999)), 씨리즈물(<His Ballad 1, 2>(1997, 2003)), 장르 대전환(<Serious Day>(2002)) 등 종목도 다양해 중범죄라 봐도 무리는 없다. 이쯤 되면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제는 심리전이다! 네 장이나 할애했고, 매 음반마다 색다른 편곡과 빵빵한 부클릿으로 소비를 만족스럽게 만들어 왔다. 그렇다면 그는, 묵은 곡들에 새로운 옷을 입히고픈 남다른(그리고 엄청난!) 욕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규호가 작곡한 '꽃', '아무말도'를 비롯해 총 네 개의 신곡을 포함하고 있는 이번 음반은 발라드 전문가수 이승환의 저력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알짜배기 히트 발라드 모음집이다. '세 가지 소원', '그대가 그대를', 내게', '당부', '그대는 모릅니다' 등 <His Ballad 1>에 담지 못했던 이승환의 대표곡들이 총 동원되었다. 속지에 적혀있는 '이 앨범을 자랑스런 팬 여러분께 드립니다'라는 선언에서 드러나듯 적당히 팬을 의식한 흔적도 느낄 수 있다. 기대에 부응하며 새 편곡으로 갱생한 열두 곡은 여전히 따라다니는 귀여운 수식을 떠올리게 한다.

<His Ballad 2>로 만나는 이승환은 아직도 아름다운 발라드를 부르는 '어린 왕자'요 사랑스러운 소년이다. 1집 수록곡이었던 '가을 흔적',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등 머나 먼 1989년의 추억을 일깨우며 이승환의 연륜을 상기시키지만 띠동갑 뻘의 여자친구를 사귀는 마흔 즈음의 아저씨라 말하기 미안해질 만큼, 올해로 음악인생 14주년을 맞는 베테랑임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젊고, 순수하고, 맑아 보인다. 10여년 이후에 새로 깨어난 곡들은 분명 전보다 세련미를 뽐내지만 노래와 함께 숨쉬는 이승환은 여전히 청춘이다.

음반 발표 이후 가졌던 한 인터뷰에서 그는 “1백 퍼센트 순수였어요. 미래도 없었고, 현실도 없었어요. 정말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었으니까. 지금은 80퍼센트쯤 순수해요. 그리고 10퍼센트는 현실을, 나머지 10퍼센트는 미래를 생각하죠.”라고 말한 바 있다. 20퍼센트쯤은 순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노화요, 추세에 부응하는 현실 감각이라고 생각해 두자. 그리고, [His Ballad 2]를 통해 남은 80퍼센트의 젊음과 순수를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