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솥밥을 먹으며 음악을 한다는 것은 지향점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서로 원하는 바가 틀어지거나 빗나가면 견고하던 철옹성은 한 순간에 모래성으로 바뀐다. 그래서 한 테두리에서 동고동락하며 호흡을 맞추기란 꽤나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다. 내부 정치에 실패하고 잭 드 라 로차(Zack De La Rocha)를 떠나보낸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과 역시 멤버들간의 불화로 인해 1997년 시애틀에 묘비명을 세웠던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이 만났다. 오디오슬레이브라는 묘한 밴드명으로 이번에 셀프타이틀 데뷔 음반을 발표한 그들은 과연 실패를 딛고 서로를 위로하며 일어설 수 있을까?
진실 혹은 거짓
루머는 사실이었다. 2000년 10월 잭 드 라 로차가 탈퇴 한 후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이하 RATM)의 새 보컬리스트로 크리스 코넬이 내정되었다는 풍문이 입으로, 웹으로 전해지며 지구촌을 들썩였을 때 대부분의 음악 팬들은 '설마'라는 머리말을 달았다. 격렬한 무대 매너, 쉴새 없이 쏟아내는 래핑으로 RATM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잭 드 라 로차의 선동 이미지에서 시애틀에서 어둠의 제왕으로 추앙 받던 크리스 코넬의 습한 이미지로의 이전이 도저히 상상이 안간 것이다. 또한 1990년대 음악 트렌드의 양대 축이었던 그런지와 하드코어의 조합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런 숱한 의문들과 의혹들은 2001년 5월 크리스 코넬이 톰 모렐로를 비롯한 RATM의 나머지 멤버들과 함께 활동하기로 공식 발표하면서 일단락 됐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올해 여름 발매를 목표로 음반 작업과 리허설 작업을 충실히 해오던 오디오슬레이브는 지난 3월 크리스 코넬이 탈퇴하면서 좌초위기에 몰렸었다. 오지 오스본의 전미 투어 [오지페스트 2002]에서 그들이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한다는 발표가 나온 지 사흘만에 터져 나온 사건이어서 다른 멤버들과 뉴 사운드에 한껏 기대를 했던 팬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여기에 온라인 상으로 밴드가 작업해왔던 데모 음반이 유출되면서 크리스 코넬의 탈퇴가 가져온 여진은 길고도 컸다. 하지만 지난 가을 초 크리스 코넬이 다시 극적으로 복귀하면서 오디오슬레이브의 데뷔 음반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드디어 이번에 그 베일을 대중들 앞에서 벗었다. 이는 그들의 길고도 길었던 2년 간의 암초밭길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디오슬레이브가 추구하는 사운드가 기존의 RATM 음악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취할 거라는 것은 이미 크리스 코넬이 보컬리스트로 확정되는 순간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크리스 코넬이 잭 드 라 로차처럼 펑크 그루브 오버액션을 펼치기는 힘들기에 하드코어가 아닌 다른 음악 길로 나아갈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일단 오프닝 곡이자 첫 싱글로 발표되어 현재 모던 록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Cochise'만을 들어봐도 그 예상은 적중한다. 톰 모렐로의 사이언스 기타와 크리스 코넬의 멜로디 섞인 보컬로 시작되는 곡은 전형적인 얼터너티브 메탈이다. 톰 모렐로, 팀 커머포드(Tim Commerford, 베이스), 브래드 윌크(Brad Wilk, 드럼)로 이어지는 사운드 패턴은 헤비 록의 액기스를 응축하고 있고, 크리스 코넬의 보컬은 여전히 사운드가든에서 보여줬던 음울하고 냉소적인 보컬을 품고 있다.
묵직한 헤비 기타 리프가 주도하는 'Show me how to live', 'Gasoline', 'Set it up' 등 같은 트랙들도 같은 맥락에서 언급될 수 있다. 특히 톰 모렐로의 아름다운 기타 선율과 크리스 코넬의 멜랑콜리 보이스가 압권인 'Like a stone'이나 달콤한 발라드 넘버 'I am the highway'는 크리스 코넬이 있었기에 가능한 곡들이다. RATM 시절의 톰 모렐로를 생각하면 일대 혁신이다.
메시지 측면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의 이야기를 담아낸 첫 싱글 'Cochise'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인적인 고뇌와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Bring 'em back alive'는 수 백만 장의 음반을 팔아치운 록 스타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느낌을 담아낸 곡이고, 'What you are'는 과거의 로맨스에 대해 자조 섞인 한탄을 하는 노래이다. 모두 크리스 코넬의 개인적인 느낌을 담아냈다. 'Getaway', 'I am the highway' 역시 그러하다.
오디오슬레이브는 RATM이나 사운드가든의 어느 한 쪽만을 편들지 않고, 적절한 중도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카테고리에 있던 크리스 코넬과 톰 모렐로가 한 지붕으로 옮겨오면서 얻을 수 있었던 최상의 결과물일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후유증 내지 아쉬움도 남는다. 1990년대의 지미 헨드릭스를 자처했던 톰 모렐로의 실험적인 기타 테크닉은 음반의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리프가 주를 이루는 헤비 록과는 어딘지 모르게 맞지 않는 듯 하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올해 록계 최대의 이슈인 오디오슬레이브. 2년 전부터 팬들의 관심은 그들에게로 향하고 있었고, 현재도 그 열기는 식지 않고 활활 타오르고 있다. 2년 전 단순히 거물 록 스타들의 집합체라는 지명도에 의한 화제 집중에서, 현재 그들이 완성해낸 음악에 대한 궁금증으로 테마가 옮겨가고 있는 것뿐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주제는 어떻게 그룹 살림을 꾸려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록곡-
01 Cochise
02 Show Me How To Live
03 Gasoline
04 What You Are
05 Like A Stone
06 Set It Off
07 Shadow Of The Sun
08 I Am The Highway
09 Exploder
10 Hypnotize
11 Bring Em Back Alive
12 Light My Way
13 Getaway Car
14 The Last Remaining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