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포크의 매력을 전한 인간적인 공연”
* 일시: 4월 4일 월요일 오후 8시
* 장소: 충무아트홀
초특급 해외 아티스트들의 버라이어티 쇼와 비교하자면 수잔 베가의 공연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대략 8백 명 정도가 수용 가능한 소규모 공연장에서 화려한 세션 군단의 도움 없이 소박한 언플러그드 무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데뷔 초반 그 청초했던 숙녀가 어느새 원숙한 중년 여성이 돼서 등장한 수잔 베가. 그녀는 어쿠스틱 기타를 직접 치면서 노래했고, 그 옆에 서서 달콤하게 베이스를 퉁긴 세션 주자는 전반적으로 소리를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그 둘 외에 무대에는 오직 몇 개의 자그마한 앰프와 스피커가 전부였다.
잔잔한 포크 공연이었다. 악기라곤 통기타와 베이스가 전부다 보니 대충 분위기는 짐작이 갈 것이다. 저녁 식사를 포만감 넘치게 하고 왔을 관객들은 공연 내내 졸음을 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스탠딩이 아닌 지정 좌석에서 다소곳하게 관람하는 정적인 공연이기에 엉덩이가 마치 답답함을 호소하는 듯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포크 공연의 특징을 간파할 줄 알아야 된다는 점이다. 만약 누군가가 신나는 공연이 아니라고 무턱대고 “공연 별론데!”라고 말한다면 클래식 공연장에서 힙합 공연을 요구하는 격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수잔 베가의 공연은 그녀의 음악이 말해주듯 감성 포크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자리였다. 거기에는 요란스럽게 공연장을 진동시키는 드럼이나 기타 사운드는 불필요하다. 포크는 이야기 음악이다. 가수의 목소리에 의해 전달되는 노랫말에 관객들은 차분히 귀 기울여야 한다. 때문에 다채로운 악기 연주는 포크의 지향점에 반하는 장식거리에 불과하다. 이번 무대에서 90분간 라이브를 선사한 수잔 베가가 단 한 명의 베이시스트와 동행한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노래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수잔 베가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절대 빠트리지 않는다. 음악 경력 20년이란 세월에서 드러나듯 라이브를 통해 관객들과 교감하기를 꺼리지 않는 탓이다. 이날 역시 그랬다. 자신의 아주 오랜 옛날 이야기를 거침없이 꺼내놓았고, 몇몇 곡에서는 첫 사랑의 추억을 살포시 들춰내기도 했다. 그 와중에 'Luka', 'Tom's diner', 'Rosemary' 등의 곡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때'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린 터라 이날 주 연령층인 3, 40대 관객들이 거의 객석을 가득 매웠다.
지난해와 올 초에 각각 대형 경기장에서 공연을 가졌던 엘튼 존과 스팅의 내한 공연 분위기와는 달라도 정말 달랐다. 그들 두 스타가 정해진 레퍼토리에만 충실한 채, 객석을 향해 그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은 것에 비한다면 수잔 베가는 정말 '수다쟁이'라는 인상마저 강하게 심어줬다.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을 곧바로 부르지 않고, 그 곡에 얽힌 사연을 마치 소녀의 감성으로 얘기한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내 노래 어때요?” “이 곡은, 음.. 뭐 이런 곡이에요”라며, 끊임없이 객석과 커뮤니케이션하기에 바빠 보였다.
공연은 감성 포크가 뭔지를 일깨웠지만, 무엇보다 공연을 빛내준 건 맑고 깨끗한 소리를 전한 조촐한 장비와 시스템이었다. 오죽했으면 통기타와 베이스, 수잔의 목소리만으로도 공연장 전체가 꽉 차는 듯한 느낌을 주었을까. 뭐든 많이 준비하고 값비싸다고 해서 제값을 해내는 건 아니다. 게다가 앙코르는 두 번씩이나 달갑게 받아주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관객 한 사람이 'Calypso'라고 크게 외치니까 그 곡을 즉석해서 부르는 등 신청곡까지 받는 여유를 보여줬다. 이는 큰 공연장에서는 가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소극장처럼 조그마한 공연만의 특혜이자 매력이랄까.
우리는 늘 대형 스타들의 거창한 공연만 기다릴 뿐이지, 무명 가수들의 작은 공연에는 별로 시선을 두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작을수록 아기자기한 맛은 그 기쁨을 배가시킨다. 수잔 베가의 공연이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직접 그 가수와 팬들이 대화를 나누고, 이래저래 참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적인 공연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감성 포크의 맛을 두 번 다시 만나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수잔 베가의 공연은 분명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