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가수가 아닌 그룹을 만나면 인터뷰 글의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그룹 성원 개개인의 이야기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또는 그룹답게 하나로 솎아내는 작업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그룹에게 적용되는 수사인 '4人4色' 또는 '한 지붕 다섯 가족'이라는 표현은 비단 결속력 부재나 멤버들 간의 개성의 강조를 시사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룹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지오디와 인터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질문에 대한 네 멤버-박준형, 데니안, 손호영, 김태우-의 답변이 유사했다는 사실. 같은 자리에서 물어봐 어쩔 수 없이 남의 말을 따르게 되고 그래서 이야기가 엇비슷해지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약속 날짜는 지난해 12월9일,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 홀에서 그들의 'The Last -The Beginning' 공연이 한창인 때였다. 이 공연은 지난 11월10일부터 한 달 간 뮤지컬 형식, 그것도 멤버 네 사람이 매일 돌아가며 당일 뮤지컬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분하여 펼치는 이색적 시도로 팬들의 관심을 흡수했다.
“아직 점심식사도 못해서 배가 고프니까 식당에서 만나 편하게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그리고 박준형씨는 화상으로 손을 다쳐서 조금 늦게 공연장으로 바로 온답니다.” 인터뷰를 주선한 사람을 따라가 그들을 만난 곳은 올림픽공원 인근의 한 레스토랑이었다. 이렇게 처음에는 데니안, 손호영, 김태우와 식사 자리에서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공연장의 연습실에서 각개전투 식으로 한사람씩 만나 조금은 개개의 속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김태우는 스태프들과 가벼운 카드놀이를 했고, 손호영은 팬들에게 사인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데니 안은 이날 뮤지컬의 주인공이라 리허설 중이었다. 박준형은 늦게 와 자연스럽게 독대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오디 멤버들의 응답은 식당에서나 연습실에서나 한결같았다.
특히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 '가장 맘에 드는 지오디 곡은 무엇인가' '뮤지션으로 누구를 좋아하나?'와 같은 질문에 대한 네 사람의 답변은 마치 사전에 시나리오를 짠 듯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다. 놀라운 4人1色! 그것은 지오디월드의 핵심은 결국 슈퍼스타 그룹 이전에 '인간적 공동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같이 오래 했으면, 또 얼마나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눴으면...' 거기서 빚어진 인간적 결속이, 국민그룹으로 불릴 정도의 전(全)국민적 호감을 창출해낼 수 있었던 거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김태우는 “저희 진짜 친해요.”라고 했고 손호영은 “오랫동안 붙어살아서 가족이나 같아요.”라고 했으며 데니안은 “제가 지오디의 한 멤버라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이번 공연에 앞서 발표된 그들의 7집 < The 7th Chapter-하늘 속으로 >의 속지에 박준형은 이렇게 썼다. “Danny, Hoi, Taewoo, 군에 있는 계상, 너희들은 형의 친동생들이다!!”
이번 공연(팬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으로 12월29일 앙코르 공연도 가졌다)의 무대는 어떤 위치의 객석도 멤버들을 가까이 볼 수 있도록 무대를 가로지르는 레인 식으로 꾸민 것이 특징. 멤버들의 의중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 레인에서 멤버들이 신곡 '2♡'를 노래할 때 불꽃이 솟아오르는 순간은 잊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
주요 지지층인 여중 여고생은 물론, 딸과 같이 온 어른들, 누나 손잡고 온 어린이들 등, 객석은 세대를 망라했다. 가히 국민그룹 적 풍경. 멤버들은 “우리의 생명은 공연!”이라고 흐뭇해했다. “Last라고 붙였지만 그 밑에 붙은 Beginning이란 말을 유의해서 봐주세요. 우리 해체하는 게 아니에요. 다시 돌아옵니다. god라는 이름으로 꼭 다시 돌아올 겁니다.”
지오디 7년을 정리해본다면.
(태우) 꿈에도 생각 못했던 세월이죠. 가요의 과도기적인 시기(1999년)에 앨범을 내면서 처음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죠. 저희요, 겉보기보다는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준형이형 탈퇴사건, 계약문제, 계상이형 탈퇴 등등. 앨범을 낼 때마다 큰 사건이 하나씩 동반되어 터졌으니까요.
(데니) 나쁜 일, 좋은 일 많았죠. (썰렁)
(태우) 1집에서 '어머님께'가 뜬 뒤에도 버스 지하철을 이용했어요.
(데니) 버스를 타는데 양아치로 오인된 적도 있었어요. (다시 썰렁)
(호영) 1집 때 방송국의 대기실이 모자라 우리가 대기할 곳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주목받으니까 공간이 나오더라구요.
(태우) '길' 전에 준형이형 퇴출사건이 있었죠. 4집이 끝나고 '100일 콘서트'가 있었구요.
5집은 실패였죠?
(호영) 우리가 거의 방송을 안 해서 그런 점도 있었어요.
데니만 소속이 사이더스고 나머지 멤버는 JYP(박진영) 소속이죠. 국내에서 드문 사례인데.
(데니) 처음부터 두 회사 사이를 오갔기에 그렇게 불편은 없어요.
참, 데니씨는 DJ(KBS 2FM '데니안의 키스 더 라디오')로 활약 중인데 해보니까 어떻든가요?
(데니) 원래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공연은 팬들 앞에서 하는 거고. DJ는 모르는 대중들 앞에서 하는 것이니까요.
(태우) 처음에는 웃었죠. 데니 형이 DJ를 해? 모니터도 많이 해주었는데 요즘에는 정말 잘하던데요.
(호영) 태우가 칭찬하면 진짜 잘하는 겁니다! (좌중 폭소)
전 강의에서 방송에서 지오디는 휴먼 이미지로 국민그룹이 됐다고 얘기하죠. 거기엔 '어머니님께'라는 노래로, TV '재민이의 육아일기'로 부모들한테 호응을 얻은 것이 크게 작용한다고 봐요. 부모들은 다른 힙합 그룹 CD 산다고 돈을 달라고 하면 거절하는데 지오디 앨범 산다고 하면 “걔들은 괜찮은 것 같더라”하며 용돈을 준다는 거죠. 사실 사적으로도 지오디 친구들은 인사성 바르기로도 연예계에서 유명하기도 하고. 그런 이미지는 만들어진 건가요? 본래가 그런 건지, 아니면 기획사의 전략인지 말이죠.
(호영) 우린요, 데뷔 전 연습하던 2년 동안, 거의 지하에서 붙어서 살았어요. 그 기간은 길고 고통스러웠죠. 처음에는 앨범도 안 나오는 줄 알았어요. 같이 숙식하면서 가까워지고 형제처럼 친해졌습니다.
(태우) 저희, 진짜 친해요.
(데니) 복이라고 생각해요. 맘 맞는 사람하고 일하니까 좋은 거죠.
(태우) 진심으로 가족처럼 생각하니까 우리는 와해될 수 없어요. 처음 저희의 포맷은 솔직히 말해서 H.O.T.였어요. 계상이형은 정말 웃기거든요. 짐 캐리 아니면 주성치 과예요. 그러니까 사이더스 정훈탁사장님이 '넌 문희준 역할, 데니는 누구, 준형이는 누구, 그리고 태우는 재원 역을 해라' 뭐 그런 식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되나요? 우리가 그렇게 못하니까 사장님도 모니터 후 '그냥 (너희 식으로) 해라'고 놔두었죠.
(호영) 저희가 편하게 저희들 식으로 하니까 나중 우리만의 분위기가 잡혀갔어요.
(태우) 우리의 이미지는 우리 그대로예요.
(데니) '육아일기'로 인해 그렇게 부각된 것 같습니다. 그 프로그램도 처음에는 대본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큰 라인만 잡고 우리끼리 자연스럽게 이끌어갔어요.
공연장에서 보니 국민그룹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연령층이 넓더라구요. 국민그룹이란 말 부담스럽지 않나요?
(데니) 기분 좋으면서 부담스럽죠.
(호영) 행사에서도 사회자가 '국민그룹 지오디!'하면서 소개하면 정말, 쑥스러워서 웃음이 왠지 모르게 나와요. 아직 할 일이 무지 많은데...
(태우) 얼마 전 MTV 시상식에서 후배 가수들이 저희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면서 특집을 꾸몄거든요. 정말 이상하면서도 너무 기뻤습니다.
지오디 멤버들은 대체로 불우한 가족사를 공유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어머님께'를 노래할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태우) 누구나 어머니는 중요한 존재잖아요. 정말 멤버들 집안이 매우 어려웠어요. 평상시나 녹음할 때나 어머니 생각이 났어요. 이 노래 듣고 가출 청소년이 많이 돌아왔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죠.
(데니) 진영이형(박진영)은 앨범 작업 전에 멤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요. 앨범 방향도 거기서 잡혀요. 그래서 '어머님께'도 나왔습니다. 이후에도 우리와 진영이형은 충분히 대화를 가지기 때문에 어떤 노래라도 부르기 편하죠.
박준형 퇴출사건 얘기를 듣고 싶네요.
(호영) 그때가 세상의 끝인 줄 알았죠. 우리가 그때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태우) 형을 내보내느냐 아니냐 그런 것을 논한 것은 아닙니다. 준형이 형과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성'의 크기가 서로 달랐던 것뿐이에요. 넷이 정말 고민을 많이 했죠. '우리가 정말 되돌릴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의 밑거름은 팀워크라는 생각, 그 인간적인 면은 변함이 없었어요.
공연에서 소개되고 있는 뮤지컬은 네 명 각각의 스토리를 내용으로 하던데요. 어제는 박준형, 오늘은 데니안이 주인공이죠. 쉽게 할 수 있는 공연은 아니라고 봤어요. 저도 직접 관람했지만 무엇보다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가까운 게 인상적이었어요. 하이라이트인 '2♡'를 부르는 순간은 정말 좋았습니다.
(호영) 무대를 그렇게 만든 건 우리의 아이디어죠.
(데니) 콘티, 무대모양, 조명, 음향 모두 우리의 뜻대로 했습니다.
(태우) 공연의 주체가 우리인 셈이죠.
(호영) 네 명 각각의 스토리로 구성하자는 것부터 저희 기획안이에요. 누구한테 제안 받은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무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하긴 2002년 '100일 콘서트'로 시작해 '100회 콘서트'가 된 그때, 모두 소화하는데 장장 1년 반의 시간이 걸렸죠. (웃으면서) 그때 정말 '우리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했어요.
(태우) 공연 프로듀서 분이 100회 콘서트를 100가지 테마로 하겠다고 말하시더라구요. 처음에는 놀랐죠. 하지만 그냥 했어요. 정말 대본이 매일 나왔죠. 그때 정말 많이 (라이브) 실력이 는 것 같습니다.
(호영)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지오디 이즈 백(God is back!)' 공연 뒤 9월부터 이번 공연을 준비했어요. 매일 내용이 다르니 팬들이 궁금해하시더라구요. 일주일에 4일간 공연인데 매일 따로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것이었죠.
(데니) 처음에는 모험이었죠. 방송활동도 접고. '100회 콘서트'때부터 지금까지 공연이 아니라 다른 것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공연)기간 방송은 물론, CF 출연도 하지 않았죠. 우리 공연 때문에 솔직히 '돈'도 잃고 TV에도 안 비치니까 '인지도'도 잃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상의 소득을 얻었습니다.
(호영) 거의 3년 정도 텔레비전에 나오질 않았죠.
(데니) 우리가 공연의 맛을 알게 된 게 바로 소득이죠. 그 이상이 어디 있겠어요?
지오디의 전용 코드라고 할 '휴먼'의 냄새도 유지하고, 공연에 집중해온 지금까지의 행보는 누가 봐도 멋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팬들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죠.
(태우)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팬들과 저희와 상호소통 그리고 사랑이 이뤄졌다고 자부합니다. 그런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네요. 오랜 시간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우리들의 모습, 우리가 해왔던 음악은 계속될 겁니다.
(호영) 그 말에 공감해요. 환성을 지르는 누군가가 있어야 우리도 기를 받아 노래할 수 있죠. 저는 팬 아닌 가족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렇게 부르고 싶어요. 지오디가 있는 한 같이 함께 할 팬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 라스트(Last)인가요?
(호영) 지오디 준비했을 때부터 치면 9년이죠. 9년 동안 쉼없이 달려왔어요. 음악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라스트' 밑에 '비기닝'이라고 적어놓았잖아요. 얼마 전 이글스(Eagles)의 공연을 보고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그들에 비해 젊은 우리는 얼마간의 휴식 후 돌아옵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마지막이라는 거죠. 다시 돌아올 때는 새로운 모습일 겁니다.
그때 윤계상씨도 돌아올까요?
(태우) 어떤 결론이더라도 자기 의사는 존중 해줘야죠.
참, 호영씨와 태우씨의 군 문제는요?
(호영) 군 입대 관련 소식은 조금은 언론이 만든 점도 있어요. 지오디 해체라는 말도 그렇고. 지금 (군 입대) 절차를 밟고 있어요. 그것이 당분간 라스트에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죠.
우선은 쉬고 싶다는 것이 라스트로 붙인 가장 큰 이유군요.
(태우) 그래요. 업그레이드 될 시간, 쉴 시간이 필요한 거죠.
(데니) 국내 가수들은 이런 저런 일로 너무 바빠요. 무엇이든 다해야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수명이 짧아지죠. 우리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가수를 위하지 않아요. 전 정말 이런 말 하고 싶어요. '가수는 노래만 할 수 있게 해 달라!'구요. (이 말을 할 때 좌중 이곳저곳에서 '멋져!'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호영) 나중 몇 명의 팬을 모아놓고라도, 클럽에서라도 공연을 하는 게 저희의 꿈이에요.
만난 김에 그것을 묻고 싶었어요. 그간 늘 멤버들 중 호영씨가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았죠. 공연에서도 보니 호영씨가 노래하는 순간이나 동작을 하게 되면 객석의 함성이 가장 커요. 다른 멤버들 솔직히 기분 나쁘지는 않던가요?
(데니) 질투 시샘은 전혀 없습니다. 다들 나름대로 팬이 있구요, 다른 멤버의 팬이라도 결국은 지오디의 팬이죠. 호영이 인기 많은 것도 좋고, 춤을 추면서 노래 부르는 태우의 모습을 뒤에서 보면 뿌듯해요.
(태우) 하나도 안 나빠요. 인기의 높낮이 차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팬마다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것뿐이죠. CF에서 컷 배당이 달라도 돈은 다 똑같으니 상관없어요. (전원 폭소)
(호영, 약간은 얼굴이 벌개져서) 저는 약간 부담스러워요.
다음은 자리를 공연장으로 옮겨서 가진 개별 인터뷰 내용이다.
<손호영>
지오디 최고의 순간은?
우선 '길'로 방송 3사에서 전부 대상을 받았을 때요. 가요에서도 처음이라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구요.
음악적 우상은 누군가요?
가창력은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 목소리는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 음악 프로듀서로는 박진영형이죠.
가장 애착이 가는 지오디 곡은?
여러 곡이 있지만 저는 '어머님께'를 꼽겠어요. 지오디를 있게 해준, 팬들이 지오디를 알게 해준 곡이죠. 정말 어머니 같은 곡이죠.
<김태우>
지오디 최고의 순간은?
1집 마스터링된 CD를 받았을 때요. 98년에 홍수가 우리들의 일산 숙소가 물에 잠겼거든요. 그래서 여관에서 2달 동안 있었죠. 그때 받았는데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또 3집 내고 일주일 되던 날이요. 음반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100만장이 넘었다'는 거였죠. 타고 가던 밴에서 난리가 났어요. 마지막으로 100회 콘서트 마지막 날도 빼놓을 수 없구요.
음악적 우상은?
전 가창에 욕심이 많아요. 보컬은 제임스 인그램(James Ingram)처럼 하고 싶고, 음악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최고죠. 국내에선 이승철입니다. 모두 중 최고의 보컬이죠. 프로듀서로는 박진영형이요.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작사는 시인과도 같다고 할까요. 어렸을 때는 남들처럼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를 좋아했지만 절 가수가 되게끔 만든 곡은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였어요. '저렇게 노래하는 것도 되는구나!' 하고 일대 충격을 받았죠.
가장 애착이 가는 지오디 곡은?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3집에 수록된 '촛불 하나'를 꼽겠습니다. 가스펠의 맛이 있고 관중과 하나가 되는 곡이죠. 팬을 통합시키는 힘이 있죠.
태우씨는 음악적 욕심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음악에 대해서는 이따가 준형이형과 얘기하세요. 전 형한테 음악 많이 배웠어요. 지금은 음악이 뭔지 알아가고 싶어요. 좋아하는 소울도 그렇고, 음악의 기본이라 할 록에도 관심 있어요.
어찌되었든 당분간 라스트입니다. 지금까지의 지오디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댄스가수고 아이돌(idol)가수였지만 7년 동안 괜찮은 길을 걸어왔다고 봐요. 더러 '너희가 무슨 실력이 있느냐?' '육아일기로 뜬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죠.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들어주었죠. 우리는 또한 가수의 본질을 캐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구요. 그리고 공연계에 나름의 많은 것을 남겼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또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박준형>
(김태우와 얘기를 마친 순간 뒤늦게 도착했다. 얘기대로 화상 때문에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한국말이 서투를 것이라는 선입관과 달리 화술이 의외로 유창했다.)
지오디 최고의 순간은?
1집 CD를 받았을 때요. 그때 우리는 여관에서 있었는데 매니저가 와서 우리 사진, 우리 노래가 담긴 포스터와 CD를 보여주었을 때 그동안 마음고생, 몸 고생 했던 것이 다 풀리고 보람이 느껴졌죠. '길'로 방송 3사에서 대상을 받은 것보다도 그때가 최고였어요. 미국에서 와서 성공 못하고 가면 안 된다는 각오 아래 죽기 살기로 버텼거든요.
태우씨가 그러는데 준형씨는 엄청난 음악광이라고 하던데.
형 때문에 록을 들었어요. TV가 없어도, 차에 히터가 없어도 음악 없이는 못 살았죠. 음악은 정말 파워풀한 것이에요. 어릴 적에는 퀸(Queen), 보스톤(Boston), 이글스(Eagles) 그러다가 제임스 인그램을 좋아했어요. TV 프로그램 <소울 트레인>, 딕 클락(Dick Clark)이 진행한 <아메리칸 밴드스탠드>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81년 퀸 공연입니다. 신문 돌려 돈을 모아가지고 갔는데 캘리포니아 어바인 메도우스에서 한 '플레이 더 게임(Play The Game)' 콘서트였죠. 아직도 그 셔츠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나간 지오디 세월을 돌이켜본다면?
우린 쉬운 적이 없었어요. Never ever smooth, always rough road!! 늘 긴장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너처럼 변하지 않은 애는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전 쉽지 않았다는 것이 그간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Life is school이니까요.
퇴출 사건은 어떻게 기억하나요.
불편했죠. 어려웠을 때는 일상 때 같이 하던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죠. 그래서 잘 극복했습니다. (지오디) 애들 잘못은 아니죠. 만약 같은 상황이 된다면 더 많이 이해하게 되겠죠. 전 데니, 계상, 호영, 태우를 친동생들로 여기고 살았어요. 7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가장 애착이 가는 지오디 곡은?
'어머님께'죠. 고생했던 시절이 생각나서. 그 곡은 알려진 대로 나의 실제 스토리죠. 그것도 있지만 이 앨범에 제일 많이 시간을 들였고 신경도 엄청 썼습니다. 처음 한국말로 랩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발음에 신경 쓰면서 랩만 일주일 연습했어요. 이래저래 잊을 수 없습니다. 가사가 잘 전달되어서 성공한 것 같아요. 가출했던 애들이 집에 돌아왔다는 내용의 팬레터를 받은 것도 기쁨이었죠.
라스트 공연을 하는 현재의 심정은?
지쳤기 때문에 먼저 조금 쉰 뒤 정리하고 싶어요. 혼자 활동하기는 싫습니다. 모델이나 연기도 하고 싶기는 하지만, 음악활동을 하면 꼭 지오디로 하고 싶습니다.
<데니안>
지오디 최고의 순간은
전 2개 꼽겠어요. 방송 3사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그리고 100회 콘서트 마지막 날이요. 그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드디어 해냈구나!' 내 자신이 지오디가 자랑스러웠어요. 팬들도 너무 고마웠죠. 마이크도 고맙고 조명도 고마웠어요.
음악적 우상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고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무대에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전 어릴 적 쑥스러워 하는 성격이었거든요. 제 성격을 아니까 '난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내 방 문 잠그곤 혼자 춤추고 랩하고 했죠.
가장 애착이 가는 지오디 곡은?
저희 노래 다 좋아하지만 한 곡을 고르라면 '거짓말'이죠. 일단 지오디 색깔, 대중이 원하는 색깔이 잘 조화되었다고 생각해요. 고급스럽지만 편하고 따라 부를 수도 있고. 가장 많이 팔리기도 했죠.
앞으로 계획은
일단 DJ는 계속할 것 같구요. 음악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진영이 형과 같은 프로듀서를 하고 싶습니다. 욕심이 많죠. 그래도 전 100% 지오디로 돌아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