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앨범을 발표한 뮤지션에게 이런 질문은 실례라는 것을 감수하고, 어떻게 이렇게 음악 이미지에 딱 맞는 이름을 지었느냐부터 물었다. "실례 맞습니다."라는, 듣기에 따라서 조금 건방질 수 있는, 그러나 좌중을 웃게 만든 한 마디로 운을 띄우고는 몇 번을 반복했을 설명에 들어갔다. 첫 앨범을 준비하면서 직접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이름 공모를 했다고 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허밍 어반 스테레오(Humming Urban Stereo)을 골랐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가사를 쓰기 싫을 때 허밍으로 처리해도 무방할 이름 같아서" 택했다고도 한다.
2006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 Purple Drop >에서 가사를 보강한 이유는 "허밍 그거 날로 먹는 거 아냐?"라는 지적을 들어서라고 했다. 그보다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앨범에서 'Goldie'와 'Sakamoto'가 가장 좋던걸요."라고 말했을 때 그는 "그 가사를 어떻게 썼느냐 하면요."로 대답을 시작했다. 음악적 구상에 대한 질문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동문서답을 한다.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음악은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라운지, 일렉트로니카, 시부야케이 등등 사촌에 팔촌 같은 유사 장르가 세련되게 혼합된 음악은 메시지의 전달보다 스타일과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한다. 소위 샘플이라는 따 온 음악과 직접 연주하는 음악을 디지털 방식으로 섞어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이상하게 새로운' 느낌을 준다. 기존의 음원과 스타일의 기반에, 개인적인 상상력을 얹어 매혹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믹스'라는 변주의 실험 속에서 나른하게 노래하는 보컬은, 가사 전달자이기 이전에 뮤지션으로서 발견한 소리의 하나인 것 같았다.
그렇게 완성된 음악은 클럽 같은 공간성을 확보하거나 광고에 적합한 시각적 효과를 노린다. 긴 말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허밍 어반 스테레오는 '정체된 언어'를 부정한다. 안하려고 해도 자꾸 신경이 쓰이는가 보다. '날로 먹던'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보다 섬세하게 관찰해 영화, 책, 만화 등에서 모티브를 얻고, 생활과 사고방식, 다양한 경험의 총체 안에서 이야기를 완성하려고 한다. 호소력과는 무관하게 일단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후련할 것 같았다. 음악은 젤리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은 거의 육포의 질감으로 질기고 치열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그렇잖아요. 가사 없으면 앨범 안 사요. 그래서 가사를 넣을 수밖에 없는 거죠. 음악 위주의 작업을 하고 싶었고, 말보다 음악에 집중하길 원해서 1집 당시엔 가사에 별 의미를 안 뒀어요. 근데 두 번째 앨범 만들면서는 다르게 가보고 싶었어요. 가사를 열심히 썼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잘 들리지는 않는데요, 가사가 들릴 때까지 지겹게 한 번 들어보라는 의미죠."
아니 이런 심술맞은(?) 뮤지션을 보았나. 그래서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느냐 물었다. 막힘 없이 나왔다. 음악은 라운지/일렉트로니카였지만 사고는 펑크적이었고 화법은 랩 스타일의 속사포였다.
"'Simple life'는 패리스 힐튼 얘기예요. 미국에서 방영되는 < 심플 라이프 >에 나오는. 사실 진짜 생각 없는 여자 맞잖아요. 근데 그런 '돈만 많은 바보' 캐릭터를 참 절묘하게, 팔릴 만한 이미지로 만들어서 상업화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걔를 귀엽게 보잖아요. 그런 걸 비꼰 건데."
"'Sakamoto'는 동물에 관한 슬픈 이야기예요. 제가 동물 애호가예요. 뉴스만 봐도 동물 학대 사례들 진짜 많잖아요. 동물보호협회 같은 게 있어도 결국 기간 안에 주인 안 나타나면 안락사 시켜요. 그게 동물을 위한 최대한의 배려라는 건 알겠는데, 동물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사는 거지 죽는 게 아니잖아요."
혼자 사는 집에 고양이가 네 마리 (씩이나) 있다고 한다. 부모님 댁에서는 개를 키운다고 한다. 밥을 못 먹었다면서 베이글을 주문하기에 "이거 가지고 끼니가 되요?" 물었더니 동물 애호의 일환으로 '베지테리안'(채식주의자)이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그리고 (의외인데) 차인표를 좋아한다고 한다.
"사실 무슨 드라마에 나왔는지 무슨 영화를 찍었는지 잘 몰라요. 근데 연예인 외적으로 하는 일들이 적잖이 자극이 됐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실천하고 사는 사람인지 대강이나마 알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분명 이런 질문 나올 것 같아요.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 물어보실 거죠? 뜬금없는 소리 같은데,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고 싶어요. 물론 지금 하면 좀 쇼 같아 보이겠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해 나갈 생각이예요."
어떤 사람 되고 싶냐고 물어볼 생각 별로 없었다(!). 듣기에 따라서 '나는 대통령이 될래요' 같은 얘기다. 솔직한 말로, 국내 주변장르인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하면서, 그것도 인디라는 좁고 어두운 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영향력 있는 인물'을 꿈꾼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모처의 인터뷰에서 "나는 아직 음악을 즐기는 거지 예술가는 아니다."라 했던 걸 본 적이 있어 인디라는 울타리도 부정할 보헤미안 같았다. 하지만 꽤 어조가 신랄한 것이, 권력을 기대한다거나 돈을 벌고 싶다거나 하는 때묻고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겠다라는 구체적인 마스터플랜 이전에 일단 몸에 와닿는 문제를 짚고 강경하게 토해내려고 한다.
"지금은 배우는 과정이라서 재미를 우선으로 추구하고 있어요. 일렉트로니카는 예술이기 이전에 먼저 단순하게 루핑의 미학이라는 생각을 해요. 제가 아직 유투나 블러처럼 음악 제대로 하고 메시지도 싣는 영향력 있는 뮤지션은 아니지만, 저도 소위 인디잖아요. 인디는 인디니까 예술성이 있고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고 리스너들은 그렇게 바라고 있는데 사실 바라는 것만 많아요. 결국 리스너들의 욕심이 문제 같아요. 별 생각 없이 무료 다운로드 하고 돈 상관 없이 그냥 즐기려는 거고 만든 사람 입장은 전혀 없죠. 그런 면에서 저는 일종의 희생자일 수도 있는 거예요."
소개가 너무 늦었다. 이 삐딱하고 당찬 청년은 1981년생으로 올해로 스물여섯이다. 음악을 할 때는 허밍 어반 스테레오라는 도회적인 이름을 쓴다. 예슬로우라는 친구와 함께 인스턴트 로맨틱 플로어라는 프로젝트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름은 이지린이다. 본명이고, 연못의 빛이라는 예쁜 뜻을 가졌다. 면전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는 이름과 음악으로 추리해본 바 그저 예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좋아하며 성격도 다분히 여성적일 것 같았다. 홈페이지에는 '쟤 게이 아냐?' 하는 악플이 날아오기도 한다는데 심하게 태연하게 말하기에 조금 놀랐다.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음악은 다분히 여성적인 일렉트로니카다. 여자가 어떤 음악적 자극과 흐름을 좋아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늘 여자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써요. 내가 여자라면, 혹은 여자 속을 한 번 들어갔다 나온다면 하는 걸 상상해요." 이런 남자, 많아야 한다. 그러나 음악과 현실은 다르다. "여자친구랑 자주 싸워요. 궁금하기는 한데 이해는 잘 안 되네요." 보컬도 80% 이상 여자 멤버를 쓴다. "여자 목소리를 좋아해요. 남자 목소리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만족할 만한 톤의 남자를 아직 못 만났어요."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신다고 했다. 어릴 적엔 조지 마이클, 루더 밴드로스 같은 보컬 중심의 음악을 들었고, 고교시절 록에 심취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알았고, 미국의 그런지와 영국의 브릿팝에 매료되었다. 일본의 비주얼 록도 한참 좋아했다. MTV를 처음 보던 중학교 시절부터 무언가 가슴을 치는 정체 불분명한 음악들도 있었는데,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 음악들은 이름을 찾아갔다. 일렉트로니카, 라운지, 투 스텝은 허밍 어반 스테레오 음악의 원천이 되었다.
대학시절 클래식을 했다. "10대 끝자락에서 피아노를 시작했어요. 고전파보다 낭만파를 좋아했죠. 근데 학교 가니까 다시 모짜르트랑 베토벤을 쳐야 하는 거예요. 그런 와중에 재즈에 빠져 들었고, 류이치 사카모토도 치고 빌 에반스도 치고. 그렇게 스탠더드 재즈 연주를 하다 보니 학교 공부가 재미 없었죠. 시험 때 클래식 안하고 좋아하던 것만 쳤더니 C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학교 관뒀어요." 그리고 대안을 찾았다.
스무 살이 넘어 홀로 '대중적 창작'을 시작했다. 아는 형이 집 컴퓨터에 미디 프로그램을 깔아줬다. 집에 있던 신디사이저를 연결했다. 예쁜 목소리를 갖고 있는 여자 친구(just a friend?)를 모았고, 직접 음반 제작을 해서 홍대 신촌 등지의 레코드숍을 돌면서 '팔아줍쇼'도 해보고(이를 '위탁판매'라고 한다), 레이블 파스텔을 만나 그럴 듯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노르웨이 밴드 디 사운드(D'Sound)의 보컬 시모네와 작업도 하게 됐다('Luv sauce'). 왜 타이틀 곡을 'Hawaian couple'로 정했느냐 물으니 대답은 짧막했다. "회사에서 했죠." 음악은 스머페트였으나 정신은 투덜이 스머프 같았다.
여성을 자극하는 예쁜 음악, 클럽의 공간감을 가진 리드미컬한 음악을 하지만 혼자 만들어서 그런가,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구석이 있다. "신나는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근데 사람들을 들썩이게 하는 건 잘 안 되더라구요. 클럽에선 썰렁해요." 그래서 감성적으로 어필하는 걸 목표로 삼기로 했다. "머리로 만드는 음악이 있고 가슴으로 만드는 음악이 있죠. 머리는 타이틀 곡, 그러니까 회사 그리고 대중성을 생각하는 거죠. 여기서 한 번 훅을 쳐줘야 하고 저기선 이런 멜로디가 나와야 하고 하는 거. 다른 것들은 자유롭게 감성대로 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 내가 담고 싶은 멜로디와 색깔들, 그런 게 외롭다고 들릴지도 모르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드는 거니까."
진행 : 이민희
사진 : 조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