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3월로, 1986년 우리나라 최초의 헤비메탈 그룹으로 데뷔한 시나위가 20주년을 맞았다. 이들은 한국 메탈의 개막 축포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비롯하여 메탈 발라드의 고전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로 한국 메탈 팬들의 DIY적 감격을 끌어냈던 1집에 이어, '한국 헤비메탈의 대표명반'으로 자리하는 < Down And Up >를 비롯, 십수 년간 멤버들을 적절히 배치시켜가며 'Farewell to love', '겨울비', '해랑사', '은퇴선언', '희망가' 등 한국 록을 선도하는 곡들을 양산해낸 그룹이다.
그룹은 '한국 록 인재양성소'의 역할도 수행했다. 사운드의 원동력인 신대철을 비롯하여 보컬리스트 임재범과 김종서 그리고 김바다, 메탈 드러밍의 명인 김민기, 시나위의 베이스 주자로 출발하여 1990년대 가요의 대표 아이콘이 된 서태지가 그들. 이들을 배출하면서 신대철의 시나위는 1995년의 5집에서 그런지 록을 과감히 도입했고, 6집에서는 모던 록 등 다양한 록 코드들을 시나위 사운드에 융화시키는 등 당대의 트렌드를 수용하는 탄력적 면모를 드러냈다.
이들은 올해 펑키(Funky)사운드와 하드 록,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시도들을 녹여낸 새 앨범 < Reason Of The Red Bugs >으로 활동전선에 복귀했다. IZM팀은 홍대역 근처에 있는 연습실에서 이 관록 있으나 언제나 새로움으로 무장한 록 그룹을 만났다.
타 매체에서 접한 자료에서 '괴팍한 천재'라는 평도 있었던 리더 신대철은 카리스마 넘쳤지만 시종일관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그룹의 이야기를 풀어갔고, 준수한 마스크의 새 멤버들인 이동엽(드럼), 이경한(베이스), 강한(보컬)은 열정적이지만 차분하고 정중히 인터뷰에 응했다.
20주년을 맞이했는데 감회가 남다를 텐데요.
(신대철) 19년 다음해나 21년 전해 같은 느낌이에요. 별 실감이 안 납니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하면 그 제서야 '그 정도 됐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시절도 많았죠?
(신대철) 어차피 차트 1위가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큰 부담감은 없었습니다. 할 만큼 했고 할 수 있는 시도도 다 해봤기에 아쉬운 점은 없습니다.
시나위는 올 4월, 4년 4개월 만의 스튜디오 앨범 < Reason Of The Red Bugs >을 공개했다. 한국 최초의 헤비메탈을 선보인 데뷔 앨범 이래 20년이 지난 현재 시나위의 음악 지향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종이다. 9집 앨범에 관한 일문일답.
타이틀곡을 '작은 날개'로 택한 것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반응을 일으키기에 시간이 필요한 타입의 곡이라 헤드라이너로는 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신대철)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시나위는 록 그룹이고 새 앨범을 듣도록 알리는 역할만 한다면 타이틀곡이 어떤 것이 선정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한곡이 아니라 앨범전체를 듣기 원했던 거죠.
(강 한) 사실 그 곡은 대철형이 선택했다기 보다는 다른 멤버들이 모두 좋아해서 우리들이 그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자고 부추긴 점도 있습니다.
(이동엽) 이번 앨범은 필업곡이 없어요. 전곡이 다 싱글 이죠.
수록곡 '모기지론'의 가사를 보면 강 한(작사)씨는 사회에 불만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웃음)
(강 한) 사실 모기지론은 드러머 이동엽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동엽)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담아내고 싶었는데, 표현이 좀 거칠었거든요. 전직 강사 출신이었던 강한씨의 탁월한 문장력으로 완성한거죠.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자금대출인 줄 알았는데 곤충 모기를 비유한 것이더군요. 모기그림까지 넣은 것은 냉소가 좀 지나친 것 아닌가요?
(이동엽) 저의 구상이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기에 넣자고 했습니다. 이 그림을 넣은 뒤 오해하는 분들은 없어졌죠.(웃음)
방송국에선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금지곡이 됐다던데....
(강 한) KBS와 MBC에서 방송 금지가 됐는데, 록 그룹인 저희에겐 오히려 환영이죠. 간접 홍보도 되고요. 이 곡을 아주 좋아합니다. 매번 부를 때마다 통쾌하죠.
'미인'(신대철의 아버지 신중현의 곡)을 리메이크 하셨는데요.
(신대철) '미인'은 아버지가 남긴 곡 중 하나만 꼽으라면 꼽고 싶은 곡이에요. '봄비', '님은 먼 곳에' 같은 곡도 좋아하지만 '미인'은 복제 불가능한 명곡이라 생각합니다. 발상이나, 화성 등 놀라움 그 자체죠. 이번기회에 저 나름대로 새롭게 재해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에겐 들려 드렸나요?
(신대철) (쑥스러운 듯 멋 적은 웃음을 지으며) 아니요. 자신이 없더라구요.
기사에 따르면 곡을 완성해 놓고 보컬리스트를 선발했다고 하던데, 강 한씨의 가사는 신대철씨의 컨셉에 자신의 감수성을 담아 완성한 건가요?
(신대철) 보도 자료가 좀 잘못나간 것 같습니다. 곡은 팀이 구성되고 난 다음에 썼어요. 모두 같이 한 겁니다.
가사를 보면 신대철 씨가 작사한 곡과 강 한씨가 쓴 것과는 감성의 차이가 느껴지던데요. 가령 사랑에 관한 관점을 보더라도 신대철 씨는 그리움을, 강 한씨는 극복을 노래하셨던데요.
(강 한) 아무래도 세대가 다르니까요. 표현 방식에는 차이가 있어도 궁극적인 면에서는 서로 일맥상통합니다. 받아들이는 분에 따라 다양한 해석도 가능합니다. 가령 제가 쓴 '널 원하지 않아' 같은 곡은 사랑의 극복을 담고 있지만 대철 형이 작사한 '날 잊지 말아줘'의 경우는 사실 반드시 연인들의 사랑을 담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마니아들에게 '죽은 나무'가 화두가 되고 있는 데요. 프로그레시브 록을 의도한 것인가요?
(신대철) 주로 음악 전문지에서 많이들 그렇게 질문하시더군요. 그러나 사실 특별한 방향을 잡고 작업하지 않았어요. 그냥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왔죠. 그게 시나위 창작의 묘미라고나 할까요?
IZM특집(나의 명곡 15) 때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까지 포함했을 정도로 다양한 음악을 들으신 것이, 자연스럽게 배어들어갔다고도 볼 수 있겠군요.
(신대철) 그렇죠. 사실 저는 싫어하는 음악이 없어요. 록 뿐 아니라 재즈, 최신 유행하는 가요까지 편견 없이 다양하게 들어요.
그렇군요. 얼마 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장윤정의 '어머나'를 좋아한다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는 데요.
(신대철) (웃음)사실 그 기사를 보고 좀 당황했습니다. 그때도 다양하게 듣는 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흘러나온 이야기 인데, 헤드라인이 됐더군요. 어쨌든 가리지 않고 듣는 것은 사실입니다.
리더로서 새 앨범을 팬들이 이런 식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있다면.
(신대철) 이번 앨범은 상당히 많은 시도가 담겨있습니다. 골수팬은 생소할 수도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이 앨범으로 시나위를 처음 접한다면 시나위의 원년 사운드는 전혀 짐작을 못할 정도죠. 저는 시나위의 역할을 '한국 록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이 앨범을 듣고 한국 록의 현재 위치를 짐작하길 바랐던 거죠. 사실 현재 세태를 보면 기획으로 빚은 록 앨범도 많잖아요? 외모와 스타일만을 강조하는 몇몇 록 그룹들이 현재 록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랐습니다. "록은 기획이 아니라 자기의견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표현도구"라는 것을 이번 앨범을 통해 받아들이길 기대합니다.
시나위는 신대철을 제외하곤 현재 원년 멤버는 없다. 현재 멤버는 DOA (신대철이 부활의 김태원과 백두산의 김도균과 팀을 이뤘던 프로젝트 그룹)부터 인연을 맺은 두 리듬 메이커 이동엽(드럼)과 이경한(베이스) 그리고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보컬 강 한이다.
만 5년 만에 새 앨범을 냈는데요. 준비기간이 길어진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신대철) 무엇보다 마음에 맞는 보컬 찾는 것이 힘들었어요. 한 300명 쯤 되는 오디션을 본 끝에야 마음에 드는 보컬리스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강 한씨를 선택한 이유는?
(신대철) 오디션곡이 '크게 라디오를 켜고'였어요. 그런데, 완전 자기 곡처럼 자연스럽게 소화하더군요. 남의 것 흉내가 아니라 마치 자기 앨범에 있는 곡을 하듯이 말이에요. '바로 이 친구다' 싶었습니다.
이경한씨와 이동엽씨 두 분은 호흡을 맞춘 지 오래됐다고 들었는데요.
(이경한) DOA를 통해 시나위에 들어오기 전부터 둘이 오랜 친구입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둘이같이 여러 무대에서 활동해왔어요. 그래서 눈빛만으로도 호흡이 척척 맞죠.
다른 밴드도 있었을 텐데 특별히 시나위에 들어오고 싶은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이경한) '시나위'라는 상징성 때문이죠. 다른 그룹에서는 느낄 수없는 아우라 같은 것이 있다고 할까요? 저는 4집부터 접했는데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동엽) 저도 4집부터 접했어요. 같은 의견입니다. 시나위라는 전설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죠.
신대철이라는 대선배와 함께 작업하게 되었는데요. 주눅 들진 않았나요?
(이경한) 대철 형은 생각이 젊으세요. 굉장한 선배지만 카리스마보다는 유쾌하게 같이 하는 방식으로 팀을 이끌어 나가시는 타입이라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동엽) 우리들이 연습하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바로 느끼실 수 있으실 거예요. 아주 재밌게 연습하죠.
시나위는 강성음악을 하는 밴드인데, 파워 드러밍이 필수 요소 아닙니까? 드러머로서 시나위의 특장(特長)을 말한다면?
(이동엽) 즉흥성과 자유로움 이죠. 보통 패턴 2~3가지로 앨범하나를 채우거든요? 그런데, 이번 앨범의 그야말로 다양한 리듬라인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여러 가지 영감을 창출했습니다. 덕분에 록의 범위 내에서 매우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시나위에 오기 전엔 못해봤던 것들입니다.
이번 앨범에서 베이스의 리듬라인이 특히 돋보였습니다. 특별히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나요?
(이경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베이스주자 플리(Flea)와 나단 이스트(Nathan East, 포플레이, Fourplay등에서 활약한 재즈 베이시스트 )를 좋아합니다. 플리는 자코(Jaco Pastorius)나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에 비해 테크닉이야 밀리고, 어찌 보면 '막 연주하는 것' 같지만 넘치는 에너지는 그 누구도 못 따라간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플리'만이 할 수 있는 개성이 있어요. 나단 이스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데 드러나는 타입의 '팀플레이 형 실력자'라서 좋아합니다.
베이스와 드럼이 변화무쌍한 리듬라인을 내포한다면 보컬은 더욱 힘들었을 텐데요. 첫 작업에 대한 소회는 어떤가요?
(강 한) 노력을 많이 했지만 아쉬운 점이 많이 느껴집니다. 다양한 보컬 감수성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곡마다 보컬 트랙을 각각 조정했어요. 곡에 따라 마인드가 있다고나 할까요? '슬픔은 잊어' '모기지론'에선 제 보컬 특징인 중저음 역을 십분 살려 스트레이트 하게 밀어붙였고요. '가면' '날 잊지 말아줘'같이 그루브 함 넘치는 곡에선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같은 펑키(Funky)함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작은 날개' 같은 곡이 특히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보컬리스트로서 이번 앨범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곡은?
(강 한) '작은 날개'는 잡기 어려운 라인이 있었어요. 애절한 후렴구에 비해 가사는 아름답고……. 보컬리스트로서 애착이가는 곡을 꼽는다면 '널 원하지 않아'를 들고 싶네요.
보컬리스트 중 롤 모델로 삼았거나 닮고 싶은 아티스트를 든다면?
(강 한) 저는 제 나이또래에 비해(그는 1979년생이다.) 비교적 Old한 취향입니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딥 퍼플(Deep Purple)을 롤 모델로 삼았죠. 딥 퍼플의 데이비드 커버데일(David Coverdale)을 특히 좋아합니다. 첫 감동이었죠. 롤 모델은 계속 찾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에스 지 워너비(SG Wanna Be)나 조성모처럼 전혀 다른 음악을 하는 보컬리스트도 참고합니다.
20년간 기수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팀 구성이 많이 바뀌었는데요. 현재 시나위의 장점이라면?
(신대철) 지금 팀과 2~3년 정도 활동 했는데, 무엇보다 멤버들이 밴드음악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거죠. 이번 팀원들은 어느 기수 때보다도 착하고 열의에 넘칩니다.
20년간의 기간 동안 시나위는 록 이라는 기본 전제하에 다양한 변신을 시도했다.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한국 록의 산증인 신대철에게 들었다.
적지 않은 활동기간을 가졌는데요. 헤비메탈에서 얼터너티브 록, 핌프 록등 그사이 음악 판도가 많이 바뀌었지 않습니까? 변화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왔나요?
(신대철)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했죠. 저는 "대중들이 원하는 걸 한다."는 주의에요.
그런 생각이 잘 반영된 앨범이 꼽는다면 어떤 앨범이 될까요?
(신대철) 데뷔 앨범과 2집만 봐도 그렇죠. 헤비메탈은 당시 최신 유행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조악한 면도 있지만 앨범에 건전가요를 의무적으로 한곡씩 넣어야 하는 시대였고, 당시 록 시장의 저변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앨범이었어요. 당시로서는 과감한 시도였습니다. 그래서 인지 제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후배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더군요. NEXT의 신해철 씨가 1987년 FM 프로그램인 < 황인용의 영팝스 >에서 시나위가 첫 방송되는 것을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룹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나위 앨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이 있다면?
(신대철) 사실은 모두 아쉬운 감정이 앞섭니다. 심지어는 작업한지 얼마 안 되는 9집조차도 마치고 나니 아쉬운 점이 느껴지네요. 2장을 꼽는 다면 2집과 6집을 꼽고 싶어요. 2집의 경우 레코딩 기법을 비롯하여 나름대로 첨단 기법을 동원했고 생소한 시도도 많이 했습니다. 6집은 해보고 싶은 것을 잘 융화시킨 기억이나 애착이 갑니다.
6집의 경우 '은퇴선언'이란 곡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신대철) 가사 내용이 당시 있었던 서태지 은퇴를 풍자한 것이 아니냐고 해서 서태지 팬들로부터 엄청난 항의와 공격을 받았죠. 누구를 겨냥했다기보다는 당시 가요계의 풍토를 꼬집은 내용이었는데, 그런 점에서 그도 배제됐다고는 볼 수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 공교롭게도 몇 년 후에 가사 대로 된(서태지의 복귀를 뜻함) 셈이어서 주위에서 "돗자리 깔아라!"는 말도 들었습니다.(전원폭소) 그 앨범은 잘 만들었다기보다는 기법이 참신한 앨범이었습니다. 모던 록 등 당시의 트렌드를 시나위 사운드에 녹여냈죠. 참 그리고 맘에 드는 앨범으로 1장을 더 뽑는 다면 이번 9집도 넣고 싶어요. 다양한 시도가 녹아들었죠. 발표한지 얼마 안돼 판단하긴 좀 어렵지만......., 9집은 몇 년이 지나서 보다 객관적인 위치에서면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시나위를 거쳐 간 스타들도 많았는데요. 굵직굵직한 히트 곡들을 남긴 보컬리스트 들인 임재범과 김종서를 비롯하여 김민기(국내 헤비메탈 대표 드럼주자 중 하나로 포크가수 김민기와는 동명이인)와 서태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한다면 시나위의 영원한 리더 신대철씨는 오히려 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셈인데요.
(신대철)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 성격이 원래 낙천적이에요. 무엇보다 음악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죠. 야구로 치면 5회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9회말은 아직 오지 않았죠. 누차 강조하지만 부와 명성만이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솔직히 속상한 감정이 들었던 때도 있었죠. 그러나 돈을 벌려면 우리나라에선 록 보다는 장사를 하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어차피 차트 1위가 목표는 아니었으니까......., 과장된 비유라 생각하지만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재즈계의 전설)가 행복한 인생을 산건 아니잖아요.
(이경한) 대철 형은 3,40년 뒤에도 음악을 하고 있을 사람이에요. 한 세대가 더 지난다면 결국 승리자는 대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철 형이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이동엽) 저는 한 세대 뒤가 아닌 지금의 평가도 대철 형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와 명성만이 평가의 기준은 아니잖아요?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이죠.
(이경한과 강 한) 동의 합니다.
(이동엽) 무엇보다 대철형과 시나위는 누구보다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죠. (신대철은 어색한데 기분은 좋다고 했다)
멤버들이 리더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군요. 같이 활동하면서 어떤 점이 특히 좋았나요?
(이동엽) 다 좋았죠. 드럼도 다채롭게, 기분을 살려서 녹음했죠. 가령 '날 잊지 말아줘' 같은 곡은 바운스를 한껏 살렸고, '죽은 나무' 같은 경우는 실제 연주를 보신다면 치는 모습자체가 다릅니다. 색다른 표현을 위한 의도적인 효과죠. 시나위 아니면 할 수 없는 시도를 많이 했어요.
향후 공연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20주년 공연도 해야 하지 않나요?
김일겸(매니저) : 우선 7월에 있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대규모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고요, 부산 록 페스티벌(8월), 쌈싸페(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10월)등에서 공연할 겁니다.
월드컵 때문에 본격적인 공연은 가을로 미뤘습니다. 20주년 공연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선유도의 야외무대에서 펼칠까 합니다.
공연의 주 레파토리는?
(이경한) < 메가 히트 시나위 > 메들리가 되겠죠.
(이동엽) 마지막은 '크게 라디오를 켜고' 일거고요. (웃음)
마지막으로 음악 인생에 깊게 영향을 미쳤던 앨범을 1장씩만 뽑아주시죠.
(신대철) 앨범 하나를 든다면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 Electric Ladyland >입니다. 천재 중의 천재가 빚어낸 걸작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있었기에 레드 제플린 등 1970년대 하드 록의 르네상스가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엽) 워낙 영향을 받은 앨범이 많아 선택이 어려운데, 한 장의 앨범을 뽑는다면 레드 제플린의 < Coda >를 들고 싶네요. 드럼 배우기에 교과서 같은 앨범입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중 < By The Way >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시절 라이브 실황을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록 음악을 알게 해줬던 메탈리카(Metallica)의 앨범도 빼놓을 수 없죠. 다른 앨범도 좋지만 드럼을 시작한 이유가 된 'One'이 수록된 < And Justice For All...>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경한) 저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 Greatest Hits Vol. 1,2 >고요. 마니아들은 모음집을 싫어하지만 명곡들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어서 좋아요. 몇 년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저에게 교본 같은 앨범입니다. 펑키리듬의 교과서라고나 할까요. 근작 앨범< A Time To Love >도 좋아합니다. 특히 빗방울이 살결에 닿는 느낌을 노래했다는 'Passionate raindrops'를 듣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강 한) 가장 깊이 들었던 앨범은 딥 퍼플의, 좀 의외겠지만, < Stormbringer >입니다.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앨범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이상적으로 표출됐다고나 할까요? 이것에 비하면 그가 딥 퍼플에서 남긴 첫 작품인 < Burn >은 긴장해서인지 어색함이 느껴집니다. 반면 가사 때문에 좋아한 앨범은 위저(Weezer)의 < Green Album >이에요. 처음엔 가볍다는 느낌이었어요. 드럼도 퍽퍽하고 사운드도 거칠고, 그런 데 가사가 마음에 들어 듣다보니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가 됐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좋더군요.
인터뷰 장소로 향하기전 잠시 매니저와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홍보에 도움이 되더라도 더빙(부분 더빙일지라도)이 포함되는 장소에서는 절대 공연을 하지 않는 다고 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순수하고 여전히 초심을 잃지 않은 일면이다. 이런 순수한 고집이야 말로 시나위를 한국 록의 역사에서 활활 타오르지만 금방 사그라지는 반짝 로커가 아닌, 은은한 광채를 발산하며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그룹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이들의 새로운 20주년을 록 팬들이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뷰 진행: 임진모(메인), 윤석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