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동·서양의 문화의 충돌과 어울림이 용광로 안에 녹아들어 탄생한 그리스 최초의 대중음악이 바로 '렘베티카(Rembetika)'이다. 렘베티카의 탄생 배경에는 1923년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체결된 로잔 조약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그리스는 '대(大) 그리스'를 꿈꾸며 터키령의 소아시아를 점령했는데, 로잔 조약의 체결로 그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소아시아를 터키에 내주게 되었고, 그 곳에 살던 200만명의 그리스인과 그리스에 살던 80만명의 터키인들이 강제 교환된 것이다.

192,30년대 초기 렘베티카 음악은 부주키 또는 소형 부주키라 불리는 바글라마(Baglama)를 연주하며 외설적인 연애담이나 약물, 섹스 등 자극적인 내용을 테마로 노래를 불렀다. 이런 렘베티카의 초기 양식을 확립한 인물은 마르코스 밤바카리스(Markos Vambakaris). 피레우스의 뒷골목 건달 출신인 마르코스 밤바카리스는 독학으로 부주키 연주를 익힌 후 1930년까지 항구 도시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하류 인생들의 사운드트랙이었던 렘베티카는 1940년대 바실리스 찌짜니스(Vassilis Tsitsanis)에 의해 그리스의 '대중 음악'으로 승격되었다. '렘베티카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실리스 찌짜니스는 어두운 옷을 입고 있었던 렘베티카를 밝고 화사하게 꾸며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탈바꿈시켰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가사의 주를 이뤘고, 서양의 하모니와 멜로디를 대폭 수용해서 부드럽고 친근하게 만들었다.

군부 독재가 막을 내린 후 렘베티카는 새로운 물결에 동참했다. 전통보다는 '현대'를 택했다. 그리스적인 서정미와 선율들을 간직하면서도 전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팝'으로 변화한 것이다. 바로 '라이코(Laiko)'의 등장이었다. 요르고스 달라라스(Georges Dalaras)는 그리스의 팝, 즉 라이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그는 기타와 부주키를 동시에 연주하고, 전통 선율을 현대적으로 프로듀싱하며 그리스 음악에 힘찬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렘베티카를 추억의 음악으로 생각했던 그리스 젊은이들에게도 라이코 음악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요르고스 달라라스의 등장 이후에도 현재까지 하리스 알렉시우(Haris Alexoiu), 안나 비씨(Anna Vissi), 사키스 로우바스(Sakis Rouvas) 같은 인기 가수들을 계속 나오며 라이코 음악은 전성기를 계속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