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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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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006/07 | HIT : 15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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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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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가을,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최고 인기가수들(5개의 그룹과 솔로 6명)이 합동 공연과 함께 앨범을 만든다는 소식에 가요 팬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행사를 주관한 조선일보의 1면을 통해 매일같이 전해져 오던 공연 계획과 앨범의 준비 과정은 단순한 광고 이상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에서는 사실상 최초라 할 '환경 보전'을 주제로, 출연 가수들은 저마다의 자작 신곡을 한 곡씩 기증하고 직접 불렀으며, 타이틀곡 '더 늦기 전에'는 참여한 가수 전원이 함께 했다. 공연 전체가 후원사인 KBS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성황리에 개최되었고,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에 앨범 < 내일은 늦으리 >가 발표되었다.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서, 푸른 하늘, 신승훈, 이승환, 015B, N.EX.T, 윤상, 이덕진, 신성우, 서태지와 아이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팀도 있고 다들 인기 면에서는 쇠락했지만, 이 리스트는 명실상부한 당대 음악계 최고의 이름들이었다. 그들이 한데 모여, 환경을 노래한 옴니버스 앨범. 이것은 어쩌면 가요사적으로도 소중한 사료일지도 모른다.
참여 그룹의 멤버들이 앨범 연주를 100% 도맡아 수록곡들의 색깔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몇몇 일렉트로니카 넘버를 뺀 모든 곡에서 드럼을 맡은 전태관(봄여름가을겨울)과 베이스를 연주한 윤상의 음악적 포용력은 놀랍다. 프로듀서를 맡은 신해철은 자신의 메탈에 대한 애정과 팝 센스를 십분 발휘, 헤비 록 사운드와 전형적인 가요로 나눌 수 있을 앨범의 수록곡들에서 각 뮤지션들의 개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체를 잘 아우르고 있다.
앨범의 시작을 여는 타이틀 곡 '더 늦기 전에'의 멜로디도 그가 썼다. 김종진의 나직한 음성으로 시작되어 신해철의 감성어린 보컬과 윤상의 건조한 읊조림, 유영석의 맑은 목소리로 도입부가 자연스레 진행된다. 전개부에서는 신성우와 김태우(015B)의 힘 있는 음성, 이어지는 김종서의 샤우팅과 이동규(N.EX.T)의 백업으로 곡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귀에 익은 후렴부의 멜로디는, 신승훈과 이승환이 함께 부른 후에 참가자 전원의 합창으로 이어진다. 가요를 잘 듣지 않는 팝 팬들은 그 올스타 합창 방식을 '한국판 We are the world'라며 비교해댔다.
행진곡풍의 묵직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간주는 정기송의 기타 솔로에서 절정에 이른다. 2절은 1절의 전개부를 반복하는 가운데에 가수들은 더욱 더 열정적으로 노래한다. 두 번 반복되는 후렴부에는 신승훈과 이승환, 김종서의 애드립이 적재적소에 들어가 감정을 자극한다. 서태지가 특유의 앙증맞은(?) 나레이션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신승훈과 유영석은 그들다운 잘 빠진 멜로디의 발라드 '잃어버린 하늘'과 '우리가 설 이 땅'으로 앨범에 힘을 보탰다. 이승환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본 공연에서의 솔로 타임은 없었지만, 제목처럼 봄 내음 물씬한 '봄의 미소'로 무한한 싱그러움을 선사한다. 늦깎이 솔로 앨범을 통해 화려하게 오버에 입성한 김종서와 '진짜 테리우스'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이덕진과 신성우, 주목받던 세 로커가 호흡을 고른 곡 '숨 쉬고 싶어'는 그 보컬의 조합만으로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하다.
015B는 무한한 절망과 상실을 노래한 가사와 정석원이 쓴 멜로디, 김태우의 호소력 있는 보컬이 가슴을 찌르는 무반주곡 '철이를 위한 영가'로 참여했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한참 호기심을 자아내던 김태우는, 이 날 공연에서의 화려한 무대 매너와 뛰어난 노래 실력을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얼굴 없는 가수'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룹의 실세 정석원과 장호일의 얼굴도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전형적인 스래쉬(thrash)메탈 '나를 용서해주오'로 공연장과 TV를 통해 자신들을 지켜보던 팬들을 당혹하게 했다. 서태지가 시나위의 멤버인 것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런 강력한 사운드를 들고 나올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애기처럼 마냥 징징대는 서태지의 보컬을 빼면 빈틈을 찾기 어려운, 당대의 록에서는 수작이라 할 만하다. '하여가'의 음악 노선을 미리 보여주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연의 포문을 열었던 N.EX.T의 '1999'. 신해철이 오랜만에 밴드로 돌아와 발표한 앨범 < Home >처럼 록과 테크노의 절충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나중에 신해철 본인도 다소 부끄러워했을 만큼 1999년을 지나치게 절망적으로 묘사한 자극적인 가사는 지금 들으면 멋쩍지만 묵직한 몽환을 담아낸 키보드 사운드와 화려한 기타 속주, 박력 있는 디지털 비트의 조합은 지금 들어도 세련되고 강렬한 것이 사실이다. 반복되는 '나인티 나인티 나인'의 합창과 공연에서는 신해철이 직접 샤우팅으로 대체한 '악~'하는 샘플 사운드도 흡인력이 상당하다.
앨범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아끼는 곡은 윤상의 '어제의 기억으로'일 것이다. 그의 주특기라고 할 다양한 키보드 사운드는 전자음악이 들려줄 수 있는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윤상의 목소리는 묵직한 디지털 비트와 풍성한 사운드의 미세한 공백을 파고든다. KBS도 유독 그가 키보드 뒤에서 고독하게 연주하던 그 순간만은, 다양한 효과로 시청자들에게 시각적 환상을 안겼다. 히트 메이커로서의 명성을 위해 잠시 미뤄둔 '윤상식 일렉트로니카'가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시켜준 곡으로, 그런 방향성은 < Part 2 >와 < Insensible >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사실 이만한 스타들이 한 데 모일 수 있던 것은, 공연과 앨범 발매를 함께 하는 한국 최초의 대형 프로젝트로서 지원과 압력을 행사한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의 힘과 KBS와 조선일보라는 메이저 언론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앨범이 명반으로 치장되는데 주저하게 되는 것은 이런 백그라운드가 암시하는 '자발성의 부족' 때문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1992년 가요계의 풍경도 읽을 수 있는 앨범이다. 우선 여자 가수가 없다. 톱클래스 가수하면 여성이 최소 4~5명은 병존하는 요즘과는 판이하다. 실제로 여가수의 부재는 당시 가요계의 화두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빅뱅이 유효하던 시점으로, 그 뒤를 이어 무더기로 튀어나온 아류 댄스그룹들은 그때까지는 아직 없었다. '아티스트 마인드'를 가진 가수와 뮤지션들이라야 오버그라운드의 톱스타로 생존할 수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첫 번째 공연과 앨범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면서, < 내일은 늦으리 >는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모이는 '대형 연례행사'로 자리 잡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수준과 가치는 두 번째 해부터 조금씩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2집의 지휘를 맡은 윤상이 준비에 한창일 때에 군 입대 문제로 잠적하면서 방향성에 상당한 혼란이 있었으며, 5인조에서 2인조로 개편하며 짧은 생명을 겨우 유지하던 잼(ZAM)의 선정은 이후 인기가수들의 합동공연 정도로 변질되는 공연의 성격을 미리 보여주는 듯 하다. 후원사 MBC(양방송사가 번갈아 행사를 맡았다)가 장발을 이유로 김종서의 공연을 내보내지 않고 게다가 녹화 방송한 것도, 이 빅 이벤트가 유명무실화되는 단초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세 번째 해에는, 김건모와 서태지와 아이들이 공연 피날레를 놓고 트러블을 보이면서, 전체 타이틀곡의 합창으로 공연이 끝난 뒤에 서태지와 아이들과 김종서의 개별 공연이 이어지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졌다. 또한 이미 2집에 실린 김종서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상실'을 재 수록한 것은 상업성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앨범의 조악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해철이 다시 중심에 복귀하면서 1995년에 발표된 공연 타이틀 곡 '붉은 바다'는 상당한 지지를 얻어냈지만, 무너져가던 기획의 본질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후 공연은 연말에 인기 틴 아이돌 그룹들이 총출동해 한판 춤사위를 벌이는 '드림 콘서트'로 변형되었다. 환경 보전이라는 메시지도 어느 순간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초유의 대형 음악이벤트로서 < 내일은 늦으리 >는 반드시 그 가치를 재평가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 중심엔 재능을 소유한 스타 뮤지션들이 쏟아낸, 앨범 수록곡들의 높은 퀄리티가 있다. 첫 공연과 앨범이라는 것이 가지는 상징성과 함께, 그에 비례하는 기획 모토의 순수성과 초심 어린 열정도 살아있다. 당대의 가요에 미약하게나마 흐르고 있던 다양성의 씨앗들과 공존의 미덕이 그립다. 언젠가 그 시원의 모토를 되찾은 < 내일은 늦으리 >가 다시 찾아오기를 기원해본다.
-수록곡-
1,더 늦기 전에(전원)
2.잃어버린 하늘(신승훈)
3.나를 용서해주오(서태지와 아이들)
4.우리가 설 이 땅(푸른 하늘)
5.봄의 미소(이승환)
6.1999(N.EX.T)
7.철이를 위한 영가(015B)
8.숨쉬고 싶어(김종서, 신성우, 이덕진)
9.어제의 기억으로(윤상)
프로듀서: 신해철
2006/07 정성하(bojang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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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정성하(bojang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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