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와 고교(경희고) 때까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히트 팝송이 전부였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팝송을 거의 듣지 않지만 그 시절 청년들에게 향수할 대중문화의 으뜸은 팝송이었다. 청년과 기성세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팝송을 들었고 불렀다. 당시 최고 인기 팝가수가 탐 존스(Tom Jones)였는데, 고교 시절 한 친구가 그의 'Green green grass of home(고향의 푸른 잔디)'를 기타 치며 부르는데 너무 멋져 보여 나도 나중에는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대학시절 가정형편상 나는 집에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돈이 없어서 음반도 살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전축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주요 음악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순전 고교 동창으로 지금은 회사원인 김태명 덕분이다. 집이 잘 살았던 그는 상당히 많은 음반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 날 때마다 그 친구 집에 음악 들으러 갔다.
거기서 제스로 툴(Jethro Tull), 산타나(Santana),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등을 비롯해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다. 더욱이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록의 르네상스기인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중반의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난 지금도 그 시절의 음악을 그 당시에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환상적인 음악을 듣는 것은 좋으나 막상 음악을 하면서는 비참해졌다. 귀는 레드 제플린인데 실제 연주는 동네밴드였기 때문이다. 이 괴리감이 날 괴롭혔다. 그 콤플렉스가 너무도 커 나중에 그룹 송골매 시절, 가장 추구했던 것은 '어떻게든 연주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몇 차례 이뤄진 밴드의 개편도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이제 음악을 그만두고 생각해보니 연주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더라. 그러나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난 상기했듯 활주로와 송골매 밴드 시절 연주력 중심의 접근을 한 영향으로 정규보다는 라이브 앨범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의 1975년 두장짜리 라이브 앨범 < Caught In The Act >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 밴드는 스튜디오 것보다 라이브를 더 잘한 것 같다. 유라이어 힙(Uriah Heep)도 라이브 앨범이 더 낫다. 1973년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11분55초짜리의 곡 'July morning'은 전율을 일으킨다. 이 라이브를 듣고 정규 곡을 들으면 시시할 정도.


이것만을 들어라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비틀스(Beatles)다. 아이돌 밴드로 출발해서 아티스트 반열에 오른 그들은 록은 물론 모든 장르의 음악을 했다. 초보자나 지망생들은 우선 이들의 히트 곡부터 들어서 음악에 길이 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1973년에 나온 각각 2장 짜리인 비틀스의 레드 앨범 < The Beatles/1962-1966 >과 블루 앨범 < The Beatles/1967-1970 >을 추천한다. 디스크자키를 하면서 세월이 가면 갈수록 비틀스의 광대한 흡수력을 절감한다.


음악분야의 종사자들은 뮤지션이나 평론가나 마케팅담당자나 나 같은 디스크자키나 한 가지 기본적 공통조건이 있다. 그것은 음악을 많이 들으라는 것이다. 음악을 들어 공력을 다지지 않으면 막상 음악을 하게 되더라도 진부하고 지루한 음악이 된다고 본다. 난 요즘 후배 아티스트들이 다들 잘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높은 점수는 독창성에 준다. IZM 5주년을 축하하며 모든 방문객들이 음악의 즐거움, 그 청취의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란다.
인터뷰, 정리 임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