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였던 두 커플이 이혼하고 난 뒤 1982년 해산했지만 인기가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바의 히트송으로 엮은 뮤지컬 '맘마미아'가 199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되면서 다시 한 번 지구촌을 뒤흔드는 열풍이 불었다. 뮤지컬 '맘마미아'는 아바를 모르던 신세대들한테도 아바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공연되면서 지금까지도 뮤지컬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올 여름 또 한 차례 거대한 아바 열풍이 찾아 왔다. 이번은 뮤지컬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영화 '맘마미아'에는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아만다 세이프라이드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영화 사운드트랙 앨범도 잘 팔리고, 1975년에 발표된 노래 '맘마미아(Mamma mia)'가 33년 만에 영국 싱글차트에 재진입하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옛날 노래가 지금 차트에 다시 명함을 내미는 일은 좀처럼 없다.
아바가 활동하던 시절을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나 어른들이나 공히 갖는 궁금증이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흘러간 가수 아바의 노래가 이토록 오랜 인기를 누리는 걸까. 마침 미국의 일간지 'USA 투데이'가 아바 열기를 분석하면서 아바가 살아 있는 전설이 된 7가지 요인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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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음향기술 수준과 곡의 질감 또한 30년이 더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낡게 들리지 않는다. 아바 음악을 주조해낸 두 남자 멤버 베니(Benny)와 비욘(Bjorn)은 그 당시 '세월에 부패하지 않는 사운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아바의 음악은 세련된 동시에 경쾌한 사운드로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드라이브할 때 아바의 노래를 틀어보면 즉각 알 수 있다.
두 번째 요인은 이미지. 아바는 음악만이 아니라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부문, 즉 비주얼 측면에도 신경을 썼다. 아그네사와 프리다는 여자로서는 훤칠한 키에 빼어난 몸매의 소유자였으며 앨범 커버를 찍을 때는 물론, 공연무대에서 늘 세련되고 예쁜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선보였다. 세 번째로는 전 국민이 아바 팬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거론되었다. 호주인들은 1977년 너무 멀어서 오지 않는 나라에 와서 순회공연을 해준 아바의 성의에 무조건 몰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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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아바의 고국 스웨덴 사람들은 아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옛날 아바가 활동할 때도 스웨덴은 자국의 상징인 볼보자동차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려준 그들을 우상으로 여기기도 했지만 그들이 너무나 상업적이라는 점을 우려한 비판 세력도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티 집단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말끔히 정리되었다.
여섯 번째 요인은 바로 아바를 바라보는 스웨덴의 이러한 정서 변화였다. 하긴 어떤 나라 사람들도 아바의 노래 '워털루(Waterloo)', '맘마미아', '춤의 여왕', '페르난도(Fernando)', '내겐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 등을 줄줄이 꿰니 스웨덴 사람들이 국위 선양에 이바지한 아바의 존재에 자긍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은 뮤지컬과 이번 영화의 효과가 꼽혔다. 아바의 음악으로 뮤지컬과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다른 아티스트들은 쉬 누릴 수 없는 강점이다.
'USA 투데이'가 지적한 일곱 가지 요인 모두 일리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음악과 이미지다. 음악이 좋지 않다면, 이미지가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다른 요인들이 많아도 소용이 없다. 이것은 지금의 신세대 가수들도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아바는 무엇보다 음악을 잘 만들고, 이어서 시대와 소통하는 이미지를 간직해야 사랑을 받는다는 점을 후대에 일깨운다. 지금도 가수들의 역할 모델이 되고 있기에 그들은 살아 있는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