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음악을 먼저 주목한 건 광고음악이었다.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가 출연한 광고에서 퍼지던 리듬감 있는 플레이의 'Piano riding'. 갖가지 샘플링과 두드리는 듯 둔중한 리듬을 타고 흐르는 2분 남짓한 연주곡은 인터넷에서 꾸준히 회자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악보를 문지르고, 피아노 뚜껑을 여닫으며 그것도 모자라 피아노를 두드리며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을 연주한 퍼포먼스는 단번에 유튜브의 화제의 동영상으로 떠오르며 유능한 '피아노 싱어 송 라이터'의 등장을 고지했다. 그러던 그가 1집 이후 단 6개월만의 작업기간만을 거쳐 2집으로 돌아왔다.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얼마 전 이즘(IZM)에서 선정한 '피아노 연주 베스트 10'에 'Night and day'가 뽑혔다고 하자 '유명한 곡들과 함께 순위에 있어서 영광이다'라는 겸손의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물론 어렸을 때 좋아했던 곡이었어요. 나중에야 프로듀서인 '퀸시존스(Quincy Jones)'를 알게 되었지만 물론 그 당시에는 당연히 마이클 잭슨을 좋아 했고요.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는 곡 중에 서정적인 건 많이 있겠지만 'Billie jean'은 왠지 특이하지 않나요?
작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요. 1집 활동 중에 창작 뮤지컬을 같이 했던 분 중에 '홍상진'이라는 형이 있었는데 새로운 아이템을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그 형한테 제가 제안 했어요. '빌리진'을 연주하고 그걸 편집해서 재밌는 걸 만들어보자고요. 동영상에서 나오는 장소는 쇼케이스를 했었던 압구정 클럽이었어요.
에코브릿지 하면 떠오르는 건 당연히 '피아노 치는 싱어 송 라이터'이다. 피아노는 언제 시작했나.
7살 때부터였어요. 어느 날 피아노가 생겼고, 학원을 다니게 되고. 사실, 학원에서 배우는 건 별로 안하고 집에서 혼자 장난치고 그런 걸 좋아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피아노 교습법이 많이 잘못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 다녀본 사람들은 많은데 커서 연주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웃음)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하셔서 올드 팝 같은 걸 하나씩 치게 됐어요. 머릿속에 1,4,5,도 개념만 가지고 치다보니깐 칠 수 있는 곡들이 많아지고, 코드에 대한 개념도 모르면서 이것저것 눌러보면서 만들어도 보고.. 그러면 부모님이 좋아하시고 그게 좋아서 또 자꾸 치게 되고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는 학원 안다니고 혼자 했어요. 중학교 때는 우연히 밥 제임스(Bob James) 비디오테이프가 생겼는데 아마 그걸 계기로 재즈 쪽에 많이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매일 알지도 못하면서 따라하다가 고등학교 때는 완전히 빠지게 되었죠.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이렇게 발달되지 않아서 자료도 많이 없었어요.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칸탈로프 아일랜드(Cantelope island)' 연주를 보면서 저렇게도 피아노로 연주 할 수 있구나를 느꼈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코드라는 개념도 생기게 된 것 같아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처음부터 이론적으로 접근 한 사람보다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요. 군대에 있을 때도 이론서 가지고 혼자 공부했었는데 “아, 내가 했던게 이런 거구나”하고 확인 하는 게 전부였죠. 그런 게 재밌었어요. 행운이라고 생각도 하고요. “c코드는 도, 미, 솔이야"이렇게 외우게 되면 갇히게 되는 것 같아요. 영어든 음악이든 '소리'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해요.

노트하나 하나가 의미 없는 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수록 음 하나하나에 신중하게 되고요. 즉 각기 다른 음들이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c코드에서 나오는 아르페지오라고 해도 도솔레미솔로 가는 것이 있을 거고 반면에 다른 식으로 진행하는 아르페지오도 있을 수 있거든요. 보이싱에 따라 c코드에서 나올 수 있는 느낌이나 뉘앙스도 전부 다른 거죠. 즉, 그것에 대한 아주 작은 차이도 내가 인식을 하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편곡적인 부분에서 불필요한 건 지양하려고 해요. 요즘은 더블링이 굉장히 많은데 외국에서는 더블링이 안 되어있는 기타 스트로크도 많이 있거든요. 한 파트 안에도 피아노, 스트링 라인이 몇 개 씩 있는데 그것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다면 상관이 없지만 그게 단순히 사운드를 채우기 위함이라면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요.
'Night and day'는 몇 달 전 이즘(IZM)이 뽑은 '피아노 연주 베스트10'에 선정될 정도로 좋다. 후크(Hook)도 있고.. 곡을 쓰는 사람으로서 전체적으로 후크를 배치할 때 고민이 될 것 같다.
저도 느낀 게 요즘 와서 오랜만에 1집 앨범을 차에서 들었어요. 그런데 되게 새로웠어요. “이 부분 되게 좋네”, “여기 잘 만들었네”라는 생각이요.(웃음)
'후크'란 건 아마 곡의 전체적인 흐름상 정해질 것 같아요. 만약 같은 상황이라면 트렌드로 봤을 때 앞으로 두는 게 더 나을 것도 같고요. 1집에 '떠나'라는 곡이 있어요. 여기에 피아노 아르페지오 리프가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이런 기본적인 틀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가사와 멜로디가 풀어져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번 '사랑을 시작하다'는 코드와 음악적인 색깔이 먼저 정해지고 멜로디가 얹어졌지만요.
그러면, 요즘 즐겨듣는 앨범이라든지 좋아하는 뮤지션, 작곡가의 음악이 있나.
작곡가 중에서는 요즘 홍성규씨 곡을 좋아해요.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코드워크나 선율이고 단순히 화성적 접근만이 잘 이뤄졌다는 게 아니라 거기다가 감성적인 부분이 잘 녹아있는 것 같아서요. 멜로디 느낌과 코드가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요. '브라운 아이드 소울'곡들 보면서 이 곡 좋다 싶은 곡들은 다 홍성규씨 곡이었어요. 대중적으로 훅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닌데.
생태통로라는 뜻의 '에코브릿지(Echo Bridge). 사회적인 의미는 자연이 훼손 되는 걸 방지한다는 뜻인데 정말 좋지 않은 음질로 음악을 접하는 지금의 오염된 음악에서의 탈출구, 원래 자연 속에 있는 음들을 작곡가를 통해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사람과 소리간의 중간 통로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이다.
에코브릿지는 2007년 데뷔작 < Leaving The Past > 이후 2008년 < Ordinarian >을 발표했다. 작업 기간으로만 보면 6개월 남짓한 시간만이 걸린 셈이다. 데뷔작에서는 'Piano riding', 'Night and day'에서의 명징한 솔로, '아침을 닮은 그대'의 블루지한 접근, 'Funny boy'에서의 재즈 취향까지 그만의 특화된 연주스타일로 귀를 사로잡았다. 재즈적인 피아노의 섬세한 터치를 가요 문법과 결합시킨 앨범은 가요계에 연주력을 갖춘 뮤지션의 갈증을 단번에 해결해 주기에 충분했다. 조금 더 자기세계를 확고히 다질 것이라는 팬들의 믿음과는 달리 이번 신작 < ordinarian >은 놀랍게도 그 중심이 피아노가 아닌 기타였다. 자연스럽게 블루지하고 소울적인 느낌 보다는 타이틀 곡'사랑을 시작하다', '로그온'에서 처럼 조금은 강하고 모던 록적인 분위기가 묻어난다.

1집을 하면서 2집에 들어있는 음악 스타일을 하고 싶어서 서둘러서 하고 싶었어요. 우물쭈물 하는 게 싫었죠. 결국은 음악적인 욕심 때문이었어요.
첫 앨범에서는 인트로부터 'Piano riding'을 내세우면서 피아노를 중심으로 자기세계를 보여준 싱어 송 라이터임을 알렸다. 그게 어떤 새로운 피아노 싱어 송 라이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는데 2집은 갑자기 'Open your string'을 연주하며 기타를 들고 등장했다.
제 과욕일 수도 있지만 1집하고 나서 기타 사운드에 빠져있었어요. 존 메이어(John Mayer) 같은 스타일이요. 뮤지션으로서 정체성이 없어진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기타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사운드에 넣어보자는 그런 단순한 생각이었고요.
다만 대중들이 에코브릿지에 대한 이미지가 통일되지 못한다거나 혼돈 될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은 많이 해요. 그래서 공연에서는 건반을 중심으로 하고요. '피아노 싱어 송 라이터'로 입지를 채 굳히기도 전에 너무 일찍 시도 한 게 아닌가 고민이 되기도 해요.
음악 역사에서 피아노와 기타는 앙숙이다.(웃음) 건반과 기타간의 헤게모니 쟁탈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에코브릿지가 말하는 기타의 매력, 혹은 피아노의 힘이라고 하면 무엇일까.
피아노를 오래 치면서 피아노가 갖는 서정적이고 고운 느낌이 좋았지만 굉장히 많은 걸 표현하고 싶은데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일종의 컴플렉스 같은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피아노 치는 건 굉장히 여성적이고, 피아노는 여성의 소리이고.. 그래서 조금씩 남성적인 사운드로 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소리자체의 차이도 있겠지만 기타가 가진 남성적인 거친 스트로크의 느낌이라든가 그런 게 좋아요. 리듬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피아노는 리듬을 설명 해줘야 된다는 느낌이라면 기타는 그 자체가 리듬이죠. 거기서 매력을 느꼈고요.
그렇다면 2집은 나름대로 피아노 치는 사람이 좀 더 리듬 쪽의 감수성을 택한 것으로 보면 맞는가.
예전부터 피아노도 리듬감 있는 플레이를 좋아했어요. 리듬 쪽에 비중을 두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기타의 매력에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2집의 전체적인 컨셉은 어떻게 정했나.
전체적으로 보면 1집은 흑인음악의 색깔, 2집은 약간 백인 음악의 색깔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재즈, 블루지하고 소울한 음악들을 좋아해요. 그런데 1집이 끝나고 백인음악 스타일의 곡들이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건조한 느낌의 곡들이요. 그런 느낌을 생각하면서 구성하고 작업했어요. 스트링을 넣어도 쿼텟으로 편곡하고, 사운드도 최소한 줄이고요. 깔끔한 사운드를 원했어요.
예전같으면 아마 인트로도 2분정도 가면서 사람을 기다리게 하다가 탁 터져 나오는 그런 느낌을 즐겼다면 요즘은 기름을 많이 뺐다고 하나요? 그냥 솔직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본의 예를 든다면, 사실 일본 음악도 서양의 것인데 자기들만의 정서로 잘 녹였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아직 우리만의 뭔가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장르이고를 떠나서 우리가 표방해야 하는 것이 이도 저도 아닌 게 된 것 같고, 수박 겉핥기만 하고 있는 것 같고. 또 그게 주류가 되어버리고요. 그런 게 아쉬워요. 좋은 음악을 위해서는 밴드도 나와 줘야 하고 다양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요. 그래도 인디 쪽에서는 시부야 케이 등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저부터도 그렇고 조금 더 자연스러운 우리 음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힘들죠.
이제 2집을 발표했는데 앞으로 어떤 음악인으로서 인식되고 싶나.
좋은 음악인이요. (웃음) 장르로 표현하는 음악가가 아닌 그 사람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표현될 수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예를 들면, “드라이브 할 때는 에코브릿지 음악을 들어야지” 혹은 “술 마실때는 에코브릿지 음악이 있어야지” 하는 것처럼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대중성을 떠나서 앞으로 이런 것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장르는 무엇인가.
나중에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쪽을 해보고 싶어요. 한 5,6년 전 올드 락 밴드를 잠깐 했었어요. 그때 멤버 중에는 드럼의 신석철씨도 있었었고요. 밴드 이름은 '마이크(MIC); 였어요.(웃음) '올맨 브라더스(Allman Brothers Band)라든지 핑크 플로이드를 연주했는데 클럽에서 패드만 한 4분 깔았다가 욕먹은 적도 있고, 굉장히 재밌었던 기억이 많아요. 핑크플로이드..멋있잖아요. 듣는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연주를 직접 하는 사람들에게 전율을 주는 음악인 것 같아요. 언제 할지는 모르겠지만 꼭 해보고 싶습니다.
인터뷰:임진모
정리:조이슬
사진:서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