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는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이후 복고 소울을 대표하는 여성 싱어로, 데뷔와 동시에 올해 최고의 신인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날카롭지만 향이 깊은 목소리는 센 울림과 품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스웨이드(Suede)의 버나드 버틀러(Bernard Butler)가 프로듀싱한 데뷔 앨범 < Rockferry >는 'Mercy', 'Warwick avenue' 같은 히트곡들을 연속 배출하며 평단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인터뷰와 번역은 유니버설 뮤직 측에서 수고해주셨습니다. 국내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좋은 인터뷰 자료를 제공해주신 유니버설 뮤직 측에 감사 말씀 드립니다. -편집자-
음... 긴장을 좀 하긴 했어요.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관객들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멋진 일본 관객들 덕분에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재미있었지만, 분명히 긴장하긴 했어요.
춤 실력이 보통이 아니시던데, 춤 연습을 따로 하세요? 아니면 그냥 음악에 맞춰 움직이시는 건가요?
아마도 난 최악의 댄서 중 한 명일 거에요. (웃음) 춤은 정말 젬병이거든요. 아마 그래서 제 춤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았을까요? 음악의 일부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9인치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는 건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죠. 스스로 춤을 잘 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칭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래된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고 들었어요. 고향에는 레코드 가게조차 없었다고..
저는 인구가 겨우 2천명에 불과한 외딴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주변에 현대적인 유행을 따르는 경향이 없었고, 외딴 곳이었기 때문에 첨단 문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하는 도시였죠. 스타벅스는커녕 레코드 가게나 쇼핑 몰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가족은 항상 라디오로 오래된 음악을 듣곤 했어요. 부모님이 1950년대에 태어나셔서 그 분들이 영향을 받은 50-60년대 음악을 들을 수 있었죠. 영국에는 < BBC Radio 2 >라는 멋진 방송국이 있어서 전 시대에 걸친 음악을 모두 들을 수가 있어요. 4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두루 들을 수 있고 저녁 시간엔 60년대 음악을 틀어주곤 해서 전 시대 음악을 모두 들어볼 수 있습니다. 그게 제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죠.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어요?
전 방거(Bangor)라는 곳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는 내가 태어났던 멋진 병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쇼핑센터가 되어 있더군요. 더 이상 그 병원이 없어서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저기서 내가 태어났었는데..'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지곤 해요. 그리고 내가 자라난 네핀(Nefyn)은 그곳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인데, 길도 험하고 가면 갈수록 사람 보기가 힘든 마을이에요. 바닷가 근처에서 살았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18살인가 19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는데 난 내가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내가 외딴 곳에서 어렵게 자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거든요.
그런 삶의 방식이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잘 모르겠어요. 전 40-50년대 음악에서 60년대의 모타운 음악까지 두루 들었고, 이 음악들은 진실하고 우아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요.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 정성을 다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40년대의 음악을 생각해보면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죠. 그러다가 60년대를 거치며 인종 차별 같은 문제가 불거지며 음악은 좀 더 긴장감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블루스와 소울 음악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시대야말로 사람들은 음악에 더 진실했고, 그들의 음악은 자유로움을 표출하던 시기라고 생각해요. 자유로움을 표출하기 위해서 노래를 썼으니까요. 요즘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요. 시간은 정신없이 흐르고 새로운 음반과 유행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내리죠. 그러니 지나간 음악들을 들으면 그들이 얼마나 여유 있고 로맨틱한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아마 그래서 제가 그 시대의 음악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20대가 될 때까지 CD를 사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24살이지요. 레코드 가게도 없었고 돈도 없었죠. 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처음으로 가져본 음반은 마빈 게이(Marvin Gaye)의 < What's Goin' On? > 앨범이었어요. 내 친구가 그 음반을 저에게 주고 함께 듣는데 'Save the children'을 빨리 감아 들으면서 낄낄거리는 거에요. 그러니 이 앨범에 대한 시작은 제 멍청한 친구 덕분에 평범하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음반을 집으로 가져와서 몇 주를 그냥 내버려뒀던 것 같아요. 처음 들었을 때는 좋은 줄도 몰랐고 전부터 들어왔던 음악들에 비해 악기 연주가 너무 세서 이해하기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 앨범과는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게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데 아직까지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남아있습니다.
2004년에 스웨이드(Suede)의 버나드 버틀러(Bernard Butler)를 알게 되어 함께 작업을 해왔는데, 록 기타리스트와 함께 소울 음악을 만든 당신의 경험이 참 재미있다고 여겨지네요. 그와 함께 작업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버나드와 많은 노래를 함께 만들었어요. 4곡 정도를 함께 쓴 것 같은데, 또 다른 4곡은 지미 호가트(Jimmy Hogarth), 에그 화이트(Eg White)와 함께 만들었죠. 그리고 나머지 두 곡은 앨범 작업의 막바지에 만난 스티브 브루커(Steve Brooker)와 만든 노래들이에요. 버나드와는 'Warwick avenue' 같은 곡을 같이 쓰지는 않았지만 'Serious'와 같은 노래를 쓸 수 있었어요. 당신의 말마따나 록 기타리스트와 함께 소울 음악을 만든 거죠. 하지만 동시에 그는 매우 블루지한 연주를 하는 연주자에요. 그와 'Honey & syrup', 'Rockferry'를 만들었는데, 우리는 함께 굉장히 소울풀한 음악을 창조해낼 수 있었어요. 그와의 작업은 굉장히 즐겁고 쉬웠어요. 그저 테이블 위에 앉아서 함께 연주를 하며 노래를 쓰곤 했으니까요. 서로 소통해가면서 하는 작업이었고, 버나드는 무엇이든지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아티스트였습니다.
영국 차트 정상에 올랐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Mercy'와 'Warwick avenue'로 라디오 방송 차트 정상에 오르며 올해 최고의 아티스트임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런 성공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요? 처음부터 이러한 반응을 기대하셨습니까?
전혀 기대하지 못했어요. 영국에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기대하지 않았죠. 전 인구가 2천명 밖에 안 되는 북 웨일즈의 작은 마을 출신이에요. 그러니 영국에서의 히트만으로도 충분히 큰일을 해낸 거죠. 그러니 그 이상의 것은 볼 수 없었던 게 당연해요. 여행을 겨우 세 번 해봤을 정도로 경험도 없었고, 한국에도 아직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예상치도 않게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빠른 히트를 기록한 것은 제게 굉장히 감격적인 일입니다.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당신이 들려주는 소울 음악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사랑을 받고 있는데, 왜 '소울' 음악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나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라도 있습니까?
난 내가 소울이 아닌 다른 음악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울은 내 마음으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동시에 소울 음악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말해서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소울 음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의미에요. 1940년대나 1920년대의 소울 음악은 흑인들의 음악이라는 정의를 분명히 내릴 수가 있었지만, 요즘은 그저 어디에나 존재하는 음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직 소울 음악의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내가 다른 음악을 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내겐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니까요.
'Mercy'도 참 좋아하는데, 이 곡은 영화 <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 OST에도 수록되었잖아요. 텔레비전 시리즈를 보는 것을 좋아하세요? 영화를 보셨다면, 어떤 버전이 더 좋던가요?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봤는데 굉장히 재밌더군요. 영화는 현대적이고, 여성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사운드트랙에 제 노래가 들어간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텔레비전은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고, 라디오를 많이 들어요. 좋은 와인을 준비하고 친구들을 초대한 후 라디오를 틀어놓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거죠. 라디오를 듣는 것이 다소 구식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전 그게 좋아요.
영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버전이 바로 제 의도대로 만들어진 뮤직 비디오입니다. 미국에서 발표한 것은 그저 재미로 만들어 본 거에요. 다르게 한 번 만들어보자는 의미 밖에 없었죠. 영국에서 만든 비디오가 제 의도대로 만든 버전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노던 소울(Northern Soul)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노던 소울은 댄스 스텝 같은 것인데, 북 잉글랜드에서 처음 시작해서 60-70년대 미국의 소울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지금 노던 소울은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면 멋진 영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거에요. 미국에서 발표한 버전은 그저 공연하는 모습을 담은 거에요. 미국 시장에서 뭔가 다른 것을 필요로 했고, 결국 두 가지 모두 방송을 타고 있으니 다다익선인 셈이죠.
'Mercy'가 한국의 TV 광고에 쓰였는데 알고 계셨나요?
아뇨. 어떤 종류의 광고였나요?
아주 멋진 텔레비전 광고였는데, 'Mercy'가 매우 강렬하게 사용되었죠.
정말 몰랐어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광고에 사용되었냐는 점이에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광고에 사용된다면 문제가 있는 거겠죠. 텔레비전이나 의류 광고처럼 해를 끼치지 않는 상품이라면 괜찮지만, 몸에 해로운 음식 같은 것에 사용되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겠죠. 패스트푸드 광고에 사용되었다고 했다면 '이럴 수가…' 라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좋은 광고에 삽입되었다니 기쁘네요.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어떤 곡인가요?
음..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없어요. 각각의 노래가 다른 분위기를 담고 있잖아요. 이를테면 옷장에 옷이 가득 있는데, 거기에 있는 옷들 모두가 다 너무 좋아서 특별히 좋아하는 옷은 없는 거라고 할까요?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제게 앨범에 수록된 각각의 노래는 모두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티스트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목표라고요? 저의 아티스트로서의 목표라면 음악에만 집중하는 음악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쇼 비즈니스의 달콤한 맛을 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니까요. 값비싼 가방과 옷을 몸에 치감고 순간을 즐긴다고 할지라도 물질적인 것은 오래 가지 못해요. 그리고 음악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항상 양질의 노래만을 만들고 싶어요. 수준 이하의 노래는 발표조차 하지 않을 거에요. 완벽한 만듦새의 곡들로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어제의 완벽한 무대를 보고 한국 팬들이 당신의 공연을 꼭 봐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에 올 계획은 없으신지요?
그러고 싶어요. 한국에 꼭 가서 노래하고 싶어요. 아마 내년쯤 스케줄 상의 여유가 좀 생기면 '우리 한국에 가서 공연해요~' 라고 말할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에요. 너무 빡빡해서 하루를 쉬는 것조차 힘드니까요. 하지만 꼭 계획을 세워서 2009년에는 가능하게 만들어 볼게요.
인터뷰 및 번역 : 김지웅(유니버설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