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성과 감각을 앞세우며 얕은 수준에서 따라부르기의 충동을 자극하는 것이 일면 상업적인 것으로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예술가의 고뇌와 진실성만을 논하며 이런 노래들을 마냥 내칠 수도 없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이 되어버린 현실에서는 그런 진지함이 도리어 음악 수용자들에게 불편함만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은 애티튜드를 논하기 보다는 우리와 잘 놀아줄 수 있는, 그러나 잘 만들어지고 잘 들리는 음악을 권하는 것이 훨씬 친절한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소녀시대의 이번 앨범을 권하는 것은 꽤 친절한 행위로 비춰질 만하다.
잘 빠진 보컬하모니로 밝고 활기차게 곡을 부르는 소녀들의 모습 앞에서 찡그린 표정을 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정을 하고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 이상 이들의 음악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희미한 전자음과 거친 록 기타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힘을 내는 '힘 내!'. 두텁게 바른 신시사이저를 뚫고나오는 시원한 보컬하모니가 듣기 좋은 '힘들어하는 연인들을 위해'. 모두 듣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곡이다. 그 행복감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 듣는 순간만큼은 확실하게 값을 한다.
소녀시대에게 아쉬움이 있다면 이들이 상품으로서의 음악을 들려준다는, 그런 종류의 낡은 푸념이 아니다. 상품으로서의 음악이라도 잘 만들어졌다면, 더군다나 듣는 이들에게 좋은 기분을 선사한다면 무턱대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그것보다는 소녀시대라는 브랜드가 갖는 설득력과 그것의 상품가치가 얼마나 오래갈 것이냐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할 시점이 왔다.
좋은 음식이라도 자꾸 먹으면 질리기 마련. 음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높은 퀄리티를 지녔더라도 항상 변화해야 살아남는다. 소녀시대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가고 싶다면 지금의 이미지를 깨뜨려야만 한다. 소녀시대라는 브랜드의 약점은 너무 깨끗하고 착하기만 하다는 데에 있다. '소녀'라는 단어를 협소하게 해석한 것은 아닐까. 풋사랑에 가슴이 떨려 말도 못하는 사춘기 소녀의 정서를 노래하는 'Gee'나 엄마 말씀 잘 듣겠다는 착한 딸의 고백 'Dear. Mom'이 단적인 예다. 소녀라고 해서 다 이렇게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닐텐데 이렇게 다림질 된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재미가 없다.
현실성이 없는 캐릭터도 그렇지만 정형화된 음악 패턴도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적당히 까칠한 록필의 기타, 신시사이저의 빈번한 사용, 또 클라이막스에서 터뜨리는 보컬하모니의 조합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랬기 때문에 'Gee'가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훨씬 빨라진 템포, 단순한 단어의 반복, 거기서 나오는 악센트, 감각적인 전자음 등. 적어도 음악적으로는 달라진 면모를 보여줬다.
아마 SM도 소녀시대라는 음악브랜드가 갖는 상품가치를 높이고 더 오래 지속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제는 현실감 있게 소녀 캐릭터를 진화시키고 음악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보일까 하는 고민을 더 깊이 해봐야만 한다. 더 이상 대중들은 판에 박힌 아이돌, 걸 그룹을 원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돌, 걸 그룹이 갖는 태생적 한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음악에 대한 확실한 주도권의 결여, 한정된 음악소비층 등의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멋있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진화하는 아이돌! 그 이율배반적이고 매혹적인 타이틀을 소녀시대가 쟁취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못 박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소녀시대가 그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힘들다. 판단이야 대중들이 하는 것이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야 그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알게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그 누구도 확답을 못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수록곡-
1. Gee

2. 힘 내! (Way to go)

3. Dear. Mom
4. Destiny
5. 힘들어하는 연인들을 위해 (Let's talk about 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