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 < Romantic 겨울 > 역시 김진표의 행보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충분히 새로운 구성이다. 데뷔 15년 만에 내놓는 첫 번째 미니 앨범이고, 사랑을 주제로 잡은 콘셉트 앨범이며, 계절의 특수를 노린 시즌 앨범이기도 하다. 다른 뮤지션들은 이미 한 번쯤 시도했을법한 익숙한 방식이지만, 매서운 사회 비판과 성찰을 가사에 담아냈던 그의 긴 커리어와 섞이니 이 또한 변화로 다가온다.
확실히 < Romantic 겨울 >은 대중적이다. 사랑이 테마란 것도 그렇지만, 이별의 애절함을 풀어낸 '아직 못다한 이야기'만큼 은유적 비유도 많지 않고, '붕가붕가'만큼 노골적이지도 않다. 대중가요에서 친숙히 접할 수 있는 애정 표현이 존재하며 일렉트로닉 사운드도 능숙히 사용됐다. 작곡 참여 리스트도 MC몽의 '서커스'를 썼던 김건우, 아이비(Ivy)의 'Touch me'를 만든 싸이(Psy)와 유건형, 듀스(Deux)의 이현도 등 막강하다.
음악적으로 현재의 인기 스타일을 흡수한 것이 어색하진 않지만, 중심을 잡기는 조금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에서 느린 박자에 젖어든 이는 호란이며, 소몰이 창법으로 곡이 장악되는 '로맨틱 겨울'의 주연은 김진호다. 유리와 김창렬이 피처링한 '왜 이래'에서도 외부 인사의 호흡이 더 세 보인다. 샛별과의 호흡이 자연스러운 '집 앞이야'를 제외하면 주인공 김진표의 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유행에도 어울리는 모습보다 도리어 유행에 의지하려는 인상이라고 할까.
앨범마다 공격적인 자세를 뿌려왔던 지금까지의 행보와는 다르다고 할까. 결혼 후에 만든 앨범 < Galanty Show >도 이런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최근 인터뷰에서 “더는 신곡만으로 이루어진 풀 앨범은 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그의 심정을 살펴봤을 때, 빠르게 변하는 음원 시장에서 공들여 나온 작품들이 응당한 대우를 못 받는 현실에 상처가 큰 듯하다.
김진표라고 대중적 음악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기에 앨범의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이것 또한 그가 처음 시도한 결과물 아닌가. 이런 도전이 지금껏 개척해놓은 방향과 견주었을 때 적지 않은 편차를 드러내 아쉬울 뿐이다.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는 선을 넘어, 주류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래퍼의 음악적 고뇌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려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앨범에 대한 고민보단 시장에 대한 고민을 더 한 것 같다.
-수록곡-
1. 집 앞이야 (Feat. 샛별) (작사: 김진표 / 작곡: MasterKey / 편곡: MasterKey, 라이머)

2. 어떻게 해야 하나요 (Feat. 호란 of Clazziquai) (김진표 / D.O / D.O, Donnie J)
3. 로맨틱 겨울 (Feat. 김진호 of SG Wannabe) (김진표, 싸이 / 싸이, 유건형 / 유건형)
4. 왜 이래 (Feat. 김창렬, 유리 of Cool, Bizniz) (김진표 / MasterKey, 라이머 / MasterKey)
5. 친구야 (With 이적, 김동률, 류시원, 김원준, 김조한, 싸이, 길) (김진표 / 김건우 / 김건우, 송기홍)
6. Romantic 겨울 (Alpen gondola mix) (Feat. 김진호 of SG Wannabe) (김진표, 싸이 / 싸이, 유건형 / 유건형)
프로듀서: 김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