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연민 그러나 기대를 품고 도착한 공연장 안. 어느덧 15000석 규모의 공연장은 관객들로 가득 찼고 저녁 7시를 10분 정도 넘긴 시간, 오프닝 트랙인 'For the lovers'를 시작으로 < Nothing But Love World Tour in Seoul >의 두 번째 공연이 막을 올렸다.
심플한 원피스를 차려입은 휘트니가 앨범 < I Look To You >의 수록곡인 업 템포 트랙 'For the lovers'와 'Nothin' but love'를 부르자 관객들도 서서히 그녀의 노래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곡을 마치고 한국어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그녀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발라드 'I didn't know my own strength'가 이어졌지만 예상대로 목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My love is your love'와 'If I told you that', 'It's not right but it's okay' 등 < My Love Is Your Love > 시절의 히트곡들을 부르면서도 중저음은 그런대로 무난히 소화했으나 고음은 때때로 갈라졌고 막힌 듯 답답하게 들렸다. 하지만 놀라운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무엇보다 열정적으로 곡에 몰입하는 그녀의 모습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며 공연의 분위기는 한층 뜨겁게 달아올랐다.

6곡을 연달아 부르고 퇴장하자 그녀의 친오빠 게리 휴스턴(Gary Houston)이 'For the love of you'를 열창했고 무대 중앙에 설치된 스크린에선 서울 올림픽의 미국 주제가 'One moment in time'과 함께 그녀의 한창때를 기록한 비디오가 이어졌다. 'One moment in time' 속 밀도 높은 고음의 에너지가 무대에 울려 퍼지는 순간, 방황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루며 대중 앞에 선 그녀의 모습이 대비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비디오가 끝나고 백 보컬에 의해 구현된 'Queen of the night'를 들으면서도 아쉬움은 여전했다.

잠시 뒤 의상을 바꿔 입은 휘트니가 다시 무대에 섰다. 4인조 어쿠스틱 밴드에 둘러싸여 데뷔 25주년을 언급하던 그녀는 클래식 레퍼토리인 'Saving all my love for you'와 'Greatest love of all', 'All at once'를 메들리로 선보였다. 계속해서 'I learned from the best'를 부르고 난 후 가스펠 'I love the lord'에 다다르자 감정은 극에 달했다. 굴곡진 인생이 떠오르는 듯 울먹이며 곡을 이어가던 그녀를 향해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성을 보냈고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며 목소리만으로 'Wanna be startin' somethin''과 'The way you make me feel', 'Missing you'를 부르자 공연장에는 사뭇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연출 되었다.

드디어 공연의 하이라이트. 휘트니의 시그니처 송인 'I will always love you'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의 환호는 극에 달했다. 허스키해진 목소리 탓에 실크 같은 그녀의 목소리는 찾을 수 없었고, 고음에서의 파워도 예전만 못했으나 관중들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한 박수로 그녀를 위로했다. 이곡을 끝으로 퇴장한 휘트니는 이어 최신곡인 'Million dollar bill'을 앙코르로 열창했고, 대망의 휘트니 휴스턴 내한공연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분명 휘트니의 브랜드라고 할 가창력 측면에선 함량미달이라고 할 무대였다. 약물과 사생활 트러블에 의해 상한 목소리는 예전의 영화를 재현하기엔 역부족이었고 몇몇 관객들은 '전성기 휘트니에 대한 애정 간직'을 내걸며 도중에 자리를 뜨기도 했다. 분명 휘트니만의 자랑이었던 집중도 높은 시원한 고음(일명 사이다 보컬!)은 자취를 감췄으며, 때때로 목소리가 갈라지는 등 보컬 면에서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절창의 휘트니와 현재의 휘트니가 공존하고 있다. 다시금 돌아와 무대에 자리할 수 있음이 그 누구보다도 고맙고 다행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는 동안에도 전설로 남은 추억 속의 압도적인 휘트니는 그녀 자신 그리고 우리들 앞에 때때로 찾아와 인사를 건넨다. 잔인하면서도 더없이 강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