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사진은 실제 런던 사원의 신전에 안치한 라다와 크리슈나의 신상(神像)이었다. 앨범은 이미 1969년 8월 싱글 커트되어 히트를 기록한 '하레 크리슈나 만트라'와 오케스트레이션이 동원되면서 역시 얼마 뒤 싱글로 나온 '고빈다 Govinda'를 비롯해 'Sri Ishopanishad', 'Bhaja Bhakata-Arati' 같은 산스크리트어 기도문과 찬송가를 수록했다. 음반의 프로듀서였던 조지 해리슨은 세션 아티스트로도 참여해서 기타와 하모늄, 베이스 등을 직접 연주했다. '고빈다'의 리드 보컬 야무나(Yamuna)를 비롯한 여러 크리슈나 신도들이 보컬과 플루트, 므리당감, 카르탈 등을 담당했다. 편곡은 무쿤다 고스와미(Mukunda Goswami)가 맡았다.
그 가운데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고빈다'는 프라부파다의 유훈에 따라 전세계에 있는 모든 이스콘(ISKCON) 사원에서 매일 아침마다 울려 퍼진다. 신을 친견하는 다르샨(darshan) 시간인 오전 7시 20분에 맞춰 나온다. 신전에 모인 신도와 일반 사람들은 야무나가 노래하는 이 '고빈다'를 따라 부르며 신을 맞이하고 신께 경배를 드린다. 이 앨범 녹음을 도운 뒤로 조지 해리슨은 프라부파다와 크리슈나 의식에 깊이 영향 받아 신과 < 바가바드 기타 >에 대한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곡이 솔로 데뷔앨범 < 올 씽쓰 머스트 패스 All Things Must Pass >에 실린 '마이 스위트 로드 My sweet lord'다.

그런데 주목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조지는 결혼하면서 사생활 보호를 위해 패티에게 모델 일을 그만 두라고 요구했다. 당시 패티는 말라깽이 모델의 원조 트위기(Twiggy)와 더불어 1960년대 '스윙잉 런던'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이자 톱 모델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의 말을 따랐다. 빛나는 경력 대신 리버풀의 여느 평범한 아내처럼 얌전히 남편을 내조했다. 그러나 막상 조지는 인도와 명상, 크리슈나에 심취한 이래로 본인의 내면으로만 빠져들고 있었다. 더군다나 비틀스에 큰 부담을 느끼던 그는 패티를 신경 쓰기보다는 밖에 나가 이스콘 신도들과 어울린다거나 아니면 혼자서 조용하게 마하 만트라를 외웠다.
거기에다가 이른바 '애플 스크럽(Apple Scruffs)'이라 일컬어지는 열성 여성 팬들이 조지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도 패티를 힘들게 했다. 패티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뭔가 더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판단하고 1969년 여름부터 모델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녀는 트위기와 같이 밀라노에 가서 이탈리아판 보그지의 커버사진을 촬영했고 친동생들인 제니, 폴라와는 영국판 보그지 화보를 찍었다. 하지만 동시에 요리와 뜨개질 강습, 아트 클래스까지 받아야 했다. 또 그해 겨울 조지가 선물한 니콘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법을 연마했으며 골동품 매매도 개시하는 등 매우 바쁘고 활동적으로 본인의 삶을 꾸려나갔다. 그리고 이때쯤 에릭 클랩튼이 킨폰스 집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패티 앞에 처음 등장한다.
킨폰스라는 이름의 해리슨 자택은 런던 이셔에 있는 방갈로 스타일의 단층짜리 집이었다. 조지가 1964년 7월부터 살기 시작했고 이듬해 패티 보이드가 들어와 5년 동안 같이 행복하게 살았다. 1967년에는 그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이 집의 외관을 사이키델릭 풍으로 멋지게 장식했다. 킨폰스는 비틀스의 화이트 앨범에 실린 여러 곡들이 최초로 데모 테이프에 녹음된 장소이기도 하다. 그때까지 조지 해리슨은 4트랙 오픈 릴식 녹음기(reel-to-reel tape recorder)를 갖추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는 자유롭게 음반을 녹음할 수 있도록 집안에 아예 스튜디오를 들여놓기를 원했다.
“킨폰스 집은 스튜디오를 들여놓기에는 너무 좁아요. 제겐 여러 녹음장비들이 있지만 놓을 자리조차 없습니다. … 사생활을 완벽히 보호할 평화로운 곳을 찾고 있습니다. 집에 호수가 딸려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은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니까요.” (조지 해리슨, < 데일리 익스프레스 >, 1969년 10월 11일자)
이보다 앞서 조지 해리슨이 이셔를 떠나도록 부추긴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과거 애시드 여행을 즐기던 시절 이야기다. 킨폰스 근처의 어느 학교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그곳에는 고목과 진달래, 호수가 있어서 해리슨 부부가 자주 놀러 가곤 했다. 어느 하루는 조지가 정원에 가서 나무 아래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당시 그는 약에 취한 상태였다. 그런데 곧 문 닫을 시간을 10분가량 남기고 관리인이 조지 앞에 나타나 강압적으로 말했다. “이제 그만 나가시죠.” 해리슨은 “나는 그저 나무를 보고 싶을 뿐이에요.”라며 항변해봤지만 관리인은 그를 붙잡고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조지는 이때 매우 상처 받았다. 그래서 속으로 '그래, 내가 저런 공원 하나 사고 만다.'라고 다짐했다.

루이스 캐럴처럼 기인(奇人)이었던 크리스프는 집 안에 정원과 호수는 물론, 땅속으로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환상적인 동굴과 배 타고 지날 수 있는 강을 팠다. 또 2만 톤의 자갈을 동원해서 30미터 높이의 알프스 마터호른산 미니어처도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 원더랜드에서 가장 조지 해리슨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단연 정원이었다. 정원 가꾸기의 권위자 프랭크 크리스프 경이 파종한 수많은 희귀종 꽃들과 희귀나무들이 넓은 정원에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었다. 정원을 특히 좋아했던 조지에게 수천종의 꽃과 나무들로 뒤덮인 이곳은 천국과 같았다. 그렇게 해서 조지와 패티는 5년 동안 살던 킨폰스를 떠나 프라이어 파크로 이주한다.

해리슨 부부는 1970년 1월 14일, 집을 구입하자마자 집안과 정원 복원 작업에 돌입했다. 조지는 가장 먼저 특대 크기의 비슈누 그림을 벽난로 위에 붙였다. 그리고는 집안에 16트랙을 갖춘 최신식의 레코딩 스튜디오를 들여놓았다. 조지 해리슨은 향후 이 프라이어 파크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솔로 앨범을 녹음했다.
“애비 로드 EMI 스튜디오 시절 늘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일할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이제 더 이상 팬들을 피해 도망가지 않아도 됐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프라이어 파크 스튜디오 헨리-온-템즈(F.P.S.H.O.T.)는 제가 음악을 창작하는 데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녹음하는 동안 안식을 취할 수 있었던 최초의 장소였거든요.” (조지 해리슨)
1970년 3월 마침내 프라이어 파크로 이사한 조지와 패티 부부는 집 안에서 느긋하고 태평한 시간을 보냈다. 여름이면 정원에 나가 햇볕을 쬔다던지 에릭 클랩튼이나 링고 스타 같은 친구들을 초대해 사적인 콘서트를 벌였다. 저택 내에는 스튜디오뿐 아니라 크리슈나 사원을 차려놓고 그곳에서 정신적 안정을 구했다. 또 이때부터 그는 열정적으로 정원을 가꿨다. 조지의 두 형들인 피터와 해리 해리슨을 불러들여 정원 관리를 전담토록 했다. 그 자신도 재스민, 목련, 오크나무, 가시나무 등 자연이 주신 선물을 만끽하며 정성껏 정원을 돌봤다.

1970년 2월 18일 저녁에는 조지 해리슨이 프로듀서로 나선 가운데 링고 스타의 솔로 데뷔 싱글 'It don't come easy'의 레코딩 세션이 열렸다. 조지는 프로듀서로서 세션을 총괄하면서 기타 연주를 녹음했다. 세션 피아니스트 중에는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앤 영의 스테판 스틸스도 있었다. 링고 스타 작곡이라고 표기된 이 노래는 1971년 4월 싱글로 출시되어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차트 4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이어 링고 스타는 1971년 8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렸던 사상 초유의 록 자선공연 < 콘서트 포 방글라데시 >에서 'It don't come easy'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It don't come easy'의 작곡자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다. 지난 8년 동안 'Don't pass me by'처럼 단순한 노래 밖에 쓰지 못했던 링고 스타가 별안간에 어떻게 이런 완벽한 구성의 작품을 쓸 수 있었겠는가, 라는 의문이다. 그에 대한 해답은 다음의 유튜브 링크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4p5yzdCa2GE 조지 해리슨이 리드 보컬리스트로 나서 녹음한 'It don't come easy'의 데모 버전이다. 크레딧에는 링고 스타의 단독작곡으로 나오지만 그의 또 다른 대표곡 'Photograph'와 마찬가지로 'It don't come easy'는 사실상 해리슨이 쓴 노래이거나 최소한 조지와 링고 두 사람의 공동작품으로 보인다. 얼마 뒤 조지는 다시 링고 스타의 후속곡 'Back off boogaloo'를 프로듀싱했다.
1970년 4월말 조지 해리슨은 브로드웨이에 개장한 애플의 새 사무소를 체크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미국 뉴욕에 갔다. 5월 1일에는 밥 딜런과 뉴욕의 컬럼비아 스튜디오에서 딜런의 차기작 < New Morning > 세션 작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때 'If not for you'라는 딜런 작곡의 노래를 녹음했으나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 New Morning >에는 실리지 않았다. 이 곡을 좋아했던 해리슨은 얼마 뒤 혼자서 따로 커버해 솔로 음반 < 올 씽스 머스트 패스 >에 수록했다. 그리고 얼마 후 런던으로 돌아온 조지 해리슨은 1970년 5월 말부터 데뷔앨범 작업을 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