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4일 올림픽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공연 시작 30분 전인 7시 30분이었다. 공연장 앞에 예상보다 적은 관객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의 인기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예정 시간을 조금 넘긴 8시 25분에 조명이 꺼지면서 난데없이 에이씨디씨(AC/DC)의 'You shook me all night long'이 흘러나오자 어느새 3층 맨 꼭대기 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자리를 채운 관객들은 광분하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노래 제목처럼 오늘 밤을 뒤흔들 준비를 마쳤다.
이번 내한공연은 미국의 스타 발굴 TV 프로그램 < 아메리칸 아이돌 > 시즌 1의 우승자 켈리 클락슨의 음악적 뿌리가 록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려주었다. 세 단락으로 구분한 이번 공연에서 그는 록의 스피릿을 담은 노래들을 강, 약, 강으로 분배해 힘을 안배했고 스피드를 조절했다.
'All I ever wanted'부터 'Ms. Independent', 'If I can't have you', 'Never again', 'Breakaway', 'I do not hook up'을 포함해 모두 8곡을 선사한 전반부는 분위기 워밍업 차원에서 낯설지만 방방 뜨는 곡들로 배치했다. 'Ms. Independent'와 'Breakaway'를 제외하곤 친숙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켈리 클락슨은 앨라니스 모리세트(Alanis Morissette)의 처연한 명곡 'That I would be good'과 2010년도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한 킹스 오브 레온(Kings Of Leon)의 'Use somebody'를 메들리로 엮는 재치를 보였지만 켈리 클락슨은 우리나라에서 이 두 곡이 유명하지 않다는 것을 몰랐다. 4집 수록곡 'If I can't have you'에서는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의 'Can't get you out of my head'를 덧붙여 관객들의 합창을 이끌어내며 노래를 공유했다.
숨을 고른 켈리 클락슨은 후반부에서 본격적으로 열기를 뿜기 시작했다. 'Because of you', 'Walk away', 'Since u been gone', 'Already gone', 'My life would suck without you'까지 현재의 켈리 클락슨을 만든 노래들로 히트 퍼레이드를 들려줬고 화이트 스트라이프스(White Stripes)의 'Seven nations army'를 정제된 사운드로 재해석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9년에 발표한 네 번째 앨범 < Already Gone >에서는 무려 9곡이나 선곡했고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2집 < Breakaway >에서는 5곡, 3집 < My December >에서는 2곡 그리고 데뷔앨범 < Thankful >에서는 그의 첫 번째 히트곡 'A moment like this'를 빼고 'Ms. Independent'만을 선택했다. 켈리 클락슨이 더 이상 '아메리칸 아이돌 우승자'라는 영광스런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대목이다.
공연 도중 비욘세(Beyonce)의 'Single ladies'의 한 소절을 부른 켈리 클락슨은 “나도 비욘세(Beyonce)의 팬이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가 부럽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이렇게 생겼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여주는 그의 배짱 넘치는 자신감과 유쾌한 너그러움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보통은 공연 시작 전에 대형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지만 이번에는 공연이 끝나고 나온 관객들이 포스터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느라 분주했고 최선을 다한 인간미 넘치는 무대 매너를 보여준 켈리 클락슨을 이야기했다. 그의 이번 내한공연은 2010년에 가장 인상적인 공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살을 좀 빼야하지 않겠냐는 짓궂은 질문에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 실력이다”라고 대답한 켈리 클락슨. 이번 공연은 그가 왜 그렇게 응대했는지에 대한 호쾌한 현답(賢答)이며 직답(直答)이다.
공연장을 찾은 소녀시대의 멤버들과 2AM의 조권이 켈리 클락슨의 무대를 보고 무엇을 얻고 돌아갔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