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는 폐결핵으로 숨쉬기조차 버거워 녹음할 당시, 끊고 다시 부르고 끊고를 반복하다가 무려 5개월이 걸려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녹음 시간 측면에서 최장시간 기록을 보유한 곡일 테지만 그것보다 이 곡에 주어져야 할 의미 있는 타이틀은 '세상에서 가장 애처로운 노래'가 아닐까 한다. 곡 전체를 휘감은 그 비감(悲感)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퍼져 차마 듣기가 어렵다.
김정호는 결국 2년 후인 1985년 11월,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만 서른세 살 젊은 나이의 요절(1952년생)이었다. 그는 꺼져가는 생명을, 생의 끝자락을 오로지 음악 혼으로 불살랐다. 생의 후반부에 국악을 재발견, 아쟁과 꽹과리를 두들기며 국악을 접목하려는 의지로 마지막 앨범 < 님 >을 발표했다.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도 이 유작 앨범의 수록곡이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던 임창제와 이수영의 듀엣 '어니언스'의 '편지' 이전의 모든 히트곡들이 처음 알려진 바와 달리 임창제가 아닌 김정호가 작사 작곡했다는 점이었다. 즉 '사랑의 진실'에서부터 '작은 새', '외기러기', '저 별과 달을' 등이 실은 김정호의 오선지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그 무렵 김정호와 임창제는 음악동반자였다. 두 사람 합의 하에 먼저 임창제 작사 작곡으로 발표하고 히트가 되면 그 때 가서 '김정호가 쓴 곡들!'이라고 깜짝 공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임창제는 약속대로 이 사실을 방송을 통해 밝혔고 이어 김정호의 솔로 데뷔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름 모를 소녀' 이후 김정호의 활동은 날개를 달았다. 1974년에 발표한 또 하나 김정호의 대표곡 '하얀 나비'는 다시 한 번 김정호의 빼어난 감수성을 못 박으면서 흥행에 있어서도 대박의 재현이었다.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독특한 표현영역으로 세상을 움켜쥔 듯 했지만 김정호의 인기 퍼레이드는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가요계 최고 반열에 우뚝 올라선 것도 잠시, 1975년 대한민국 음악 판을 뒤엎은 대마초파동은 그에게 가혹한 형벌로 작용했다. 대마초파동에 연루되어 일체의 공식적 음악활동이 금지되면서 더 이상 음악적 비전을 더 피울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음악적 감금 아니 사망선고였다.
가수가 음반을 내지 못하고 무대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견딜 수 없는 생활 곤란으로 직결된다. 1977년에 '이름 모를 소녀'의 주인공 이영희씨와 결혼했지만 열두 번씩이나 이사를 다녔을 만큼 살림은 바닥을 향했다. 그런 정신적 좌절과 경제적 고통보다 더욱 그를 포박한 것은 지병에서 발전한 폐결핵이었다.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그래도 그는 계속 노래를 불렀으며 종전과 다른 새로운 음악패턴을 찾아내려고 몸부림을 쳤다.
1980년 대마초 활동 금지에서 풀려나 재기를 꿈꾸며 만든 앨범 < 인생 >은 결코 부활의 발판이 되지를 못했다. 전성기에 맥이 끊겼으니 다시 그것을 이어붙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3년 뒤의 유작 < 님 >과 함께 이 시기에 발표한 곡들인 '나그네', '세월 그것은 바람', '님',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 '지난겨울엔'은 여전히 애청자들이 많았다.
명곡 '세월 그것은 바람'의 노랫말은 김정호의 삶에 대한 상반된 시선을 잘 드러낸다. 생의 의지와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않지만 그 곁에는 전혀 다른 성질의 무상과 회한이 똬리를 틀고 있다. '아 봄 여름 가을 겨울 가고/ 꽃이 피는 봄이 다시 오면/ 아 나는 나는 나는 꽃을 피우리/ 아름다운 마음속에.../ 세월 그것은 바람/ 한번 가면은 다시 오질 않네/ 바람 저 부는 바람/ 우리 손으론 잡을 수가 없네...'
그는 바람 따라 가는 구름처럼 인생을 살았고 오로지 음악에 이상과 희망을 펼쳤다. 생의 촛불이 꺼져가는 마지막까지 음악과 동행했다. 후대의 음악인들은 그의 천재성이 드리워진 음악 자체에도 주목해야 하지만 음악에 불사른 그의 영혼 또한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오랜 동안 김정호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