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교 교사와 신문기자로도 일했던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한데 이러한 다채로운 경력들이 그의 시적인 가사들에 녹아있는 거 같다. 사실 처음엔 기타를 취미로 즐기는 수준이었지만 동생 데이비드 노플러(David Knopfler)와 친구의 권유로 1977년 세 사람이 의기투합해 밴드를 결성했다. 바로 'Sultans of swing'과 'Money for nothing', 'Why worry'가 떠오르는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다
1978년 발매된 첫 앨범은 커다란 호응을 창출하면서 1980년대 가장 기대되는 록밴드로 평가받으며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2집, 3집 앨범은 흥행의 측면에서는 실패했고 영화감독 빌 포시스의 권유로 영화음악에 참여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이후에도 영화음악가로서도 이름을 알려졌고 다이어 스트레이츠 앨범에 실망한 팬들에게도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계속 영화음악에 심취하게 되는데 <로컬 히어로(Local Hero)>, <칼(Cal)> <프린세스 브라이드(Princess Bride)>, 그리고 그 유명한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ast Exit To Brooklyn)>의 음악을 담당해 그 가운데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애상 조 연주곡 'A love idea'는 국내 라디오에서 줄기차게 흘러나왔다.
마크 노플러는 연주 시 피크를 쓰지 않고 손가락을 사용하는 핑거주법을 사용하는 스타일로도 유명한데 그것은 아마도 체트 엣킨스(Chet Atkins)의 영향을 받은 거 같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기타리스트가 체트 엣킨스이고 공연 스케줄을 취소하면서까지 체트 엣킨스와 듀엣앨범을 작업한 일화도 있다.
그의 기타 톤이 거칠지 않고 투명하면서도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것은 바로 핑거주법에서 나온다. 피크는 플라스틱 재질이라서 소리가 딱딱하고 힘이 실리며 날카로운 반면에 손가락은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움은 없다. 또한 소리의 강약이나 느낌을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1집 수록곡이자 그의 대표작 'Sultans of swing'의 연주를 들어보면 모든 걸 느낄 수 있다.
엄지, 중지, 약지들을 동시에 쓰는 리듬 스트로크를 들어보면 피크로 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감칠 맛 나는 리듬의 느낌을 살려낸다. 솔로 연주 시에도 리드미컬한 뉘앙스의 선율은 피크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 역시도 펜타토닉 스케일에 기본을 둔 플레이어고 하모닉 마이너 스케일과 도리안 스케일을 쓰기도 하지만 연주를 풀어나가는 그의 멜로디는 본인의 작곡 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다. 피크를 쓰는 연주자는 보통 단(單)선율의 솔로가 주를 이루지만 마크 노플러는 핑거주법의 장점인 2줄 이상을 동시에 이용한 화음적인 솔로 연주를 들려준다.
그의 음악은 유럽 특유의 민속적인 정서의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어서 듣기에 부드러우면서도 때론 동양적인 느낌도 묻어나는 것도 그만의 강점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음악은 철저하게 어느 파트 하나만을 내세우기보다는 악기들의 조화와 밸런스를 중요시 한다. 그가 밴드의 훌륭한 기타리스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코 연주가 튀지 않으면서 기타가 해야 할 몫만 표현하는 것이다.
록 밴드의 핵심 기타리스트로서, 그리고 지금은 영화음악가와 솔로연주 활동가로 여전히 음유시인적인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그는 단순함의 미학과 선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뮤지션이다. 능란한 보컬이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음치에 가까운데도 감동을 주는 것은 이 단순함과 인간적 선율에 기인한다. 그래서 하드한 록이 전부였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등장이 내게는 센세이션이었던 것이다.
최첨단 음악이 판치는 현 시대와 세태에 굴하지 않고 본인의 음악을 꾸준히 펼쳐나가는 그의 장인 정신 또한 존경스럽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면 더욱 마크 노플러의 기타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것은 무기농과 같은, 자연을 닮은 그의 음악관 때문일 것이다
기타리스트 유병열 : 前 윤도현 밴드의 기타리스트, 현재 그룹 비갠 후의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
대표작 : 1999년 윤도현 밴드 < 한국 록 다시 부르기 >
최근작 : 2009년 비갠 후 < City Li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