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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이다. 1962년에 일본에 공연차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약 50년을 기다린 끝에 한국에 처음 오게 되었는데 매우 기쁘다. 또한 나를 환영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한국어로) 고마워요! 예쁘다!
국악 공연을 본 소감은 어땠나.
황홀하고 대단했다. 춤과 노래의 역동성이 어떻게 보면 두 형제인 것같이 아프리카 음악과 매우 닮아있었다. 국악이 한의 정서가 많이 담겨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막상 들어보니 즐거운 음악이었다.
어떤 공연이 인상 깊었나.
어느 하나를 고를 수 없을 정도로 전부 완벽한 무대였다. 특히 판소리에서 여성이 노래하는 느낌이나 선창과 후창(call and response)의 요소들은 미시시피 블루스를 연상케 했다. 한국의 혼(soul)이 충만한 무대였다. 도시 이름이 서울(Seoul)이라서 그런가. (웃음)
음악 작업을 할 때 가장 고려하는 부분이 어떤지.
나는 어린 시절을 대공황 시기에 시카고에서 보냈다. 아버지께서는 지역 갱단인 존스 보이스(Jones Boys)를 위해서 목수 일을 했다. 따라서 10여 년 동안 시카고에서 본 것은 시체, 돈, 총, 갱이었다. 어린아이들은 보통 주위 환경을 통해 보는 것에 따라 꿈을 키우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쫓겨나다시피 워싱턴으로 이사했을 때의 일이다. 동네 친구들과 상점에 몰래 들어가 아이스크림이나 파이를 훔쳐 먹다가 각자 여러 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내가 들어간 방에 놓여 있었던 것은 피아노가 있었다. 그냥 문을 닫고 나오려던 찰나에 신(神)에게서 피아노를 한 번 만져보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고 건반에 손을 대자마자 온 몸으로 음악이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음악은 앞으로 내 인생의 전부가 되리라 느꼈다. 트롬본 등의 악기를 거치며 결국에는 트럼펫 연주자로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해서 레이 찰스(Ray Charles)와 나이트클럽에서 연주를 했다.
에너지의 근원이 있다면.
(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며) 신이 주신 것이다. 덧붙여서 사랑이라고 답할 수 있다. 평생 사랑하고 웃고 베푸는 삶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 죽는 날까지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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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어려운 질문이지만 상당히 심오한 질문이다. 음악이 여러 가지 방면으로 나아가고 있어서 쉽게 대답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이 재능을 주어서 새로운 음을 창조하지 않는 이상 12음계 안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를 해야 한다. 재창조를 하는 과정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은 여러 음악의 기초, 근원, 뿌리가 된 음악가들의 작품을 많이 들어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음악을 하는 젊은 아티스트들도, 래퍼들도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등의 음악을 알아야 한다. 힙합은 비밥을 이해해야 한다. 과거의 최고의 것들을 모아서 현재와 융합해서 다양한 음악을 믹싱하는 것이 재창조다. 멜로디를 효과적으로 융합한 본 썩스 앤 하모니(Bone Thugs-N-Harmony)가 있지 않았나. 결론은 12가지 음계로 끝없이 재창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열정적으로 추진하는 이슈 중 또 하나는 불법 복제 문제이다. 현재 음반 산업은 딜레마에 놓여있다. 음반사의 존재조차 위협을 받는 수준이다. 복제를 차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서 젊은 음악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한다. 중국은 불법음원 복제 빈도가 99퍼센트라고 하는데 어린 뮤지션들에게는 매우 불평등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아이튠즈든 스마트폰이든 갖가지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자라나는 뮤지션들에게 꿈을 주어야한다.
한국 아티스트와 같이 협업할 생각은 있는가.
분명히 있다. 문제는 시간이고 충분히 논의하고 싶다. 다양한 한국 문화를 접해보면서 그 생각이 확고해졌다. 한국 음악에 깊이 동화되었다. 결국에 음악은 혼을 담는 것이고 인간의 감정이 실린 반응물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음악과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같은 것이다. 결국에 삶의 모든 것은 사랑과 열정의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음악을 시작했을 당시 같이 활동한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돈과 명에 때문에 음악을 한 경우가 없었다. 비밥을 한 동료뮤지션들이 요절했지만 우리는 음악에 혁명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는 너무 급진적이어서 대중과의 교감이 떨어지고 청중을 잃는 결과를 불러왔지만 그 이유는 일반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즐기는 기쁨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혁신적인 아티스트들의 열매가 있었던 까닭에 이제 미국에서 재즈는 클래식으로 인식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린 뮤지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전설적인 뮤지션들과 작업을 했지만 음악적인 훈련을 받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음악활동은 감성과 지능이 동시에 필요한 작업이다. 좌뇌와 우뇌가 다 필요하다. 반드시 장인정신을 가지고 기본기를 충분히 다져 놓아야한다. 자신은 피아노도 치지 못하면서 세션 연주자에게 연주가 마음에 안 든다고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 혼을 담아야 하는 것이 음악이지만 그 기반에는 과학적인 지식을 겸비해 놓아야 한다. 나 역시도 이사람 저사람 음악을 들으면서 나의 개성을 찾았고 그것을 발견한 후에 자신감 있게 내 음악을 펼쳐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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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 Light Up The Night >앨범을 끝으로, 브라더슨 존슨 자체가 해체하여 외국으로 떠났기에 찾을 수가 없었다. 형제 사이가 꽤나 안 좋았던 것 같다. 희소식을 전달하자면 오는 9월 7일 헐리우드 볼(Hollywood Bowl)에서 브라더스 존슨과 공연을 함께 할 예정이다. 이들이 나의 밴드 멤버로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서로 각별한 존재다. 루이스(Louis Johnson)는 마이클 잭슨의 < Thriller >에서 같이 작업을 하기도 했다.
재즈, 힙합, 팝, 록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다. 앤디 윌리암스와 프랭크 시내트라와도 작업을 했다. 하지만 컨트리 앤 웨스턴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 내가 다루지 않은 장르는 하나도 없다. 내슈빌(Nashville)에 스무 번 이상 가면서 작업을 한 앨범도 있고 컨트리 하우스 밴드도 있었다. 컨트리 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14살 대 레이 찰스를 처음 만나 우정을 키워오면서 모든 장르를 그와 같이 했고 나중 윌리 넬슨(Willie Nelson)과도 같이 했다. 열두 개의 음을 쓸 수 있는 작업은 모두 한 셈이다.
모든 음악을 매만진 프로듀서였는데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나는 아직 꿈이 많다. 지금도 세계에서 5분마다 10번씩 전화가 온다. 앞으로 베이징, 상하이, 칸도 갈 것이고 모로코 국왕의 초청으로 중동 가수들과 'Tomorrow (A better you, better me)'의 아랍버전을 제작할 예정이다. 즉 전 세계의 단결과 유대관계에 기여를 하고 싶다. 분명히 이 자리에서 나는 죽을 때까지 음악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은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겠다. 내가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은 찾아서 하겠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리듬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젊은 음악가와 작업을 할 계획인데, 그 중에는 아주 어린 에밀리 베어(Emily Bear, 2001년생)도 포함되어있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다면.
1940년에 음악을 시작했지만 1955년까지 프로듀싱 전반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작곡, 편곡, 오케스트레이션에만 집중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플로리다에서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가 자신의 레코드를 들려 줬는데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버금가는 알토 색소폰 플레이어였다. 디렉터에 전화해서 이 연주를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는데 들어볼 필요도 없이 엔지니어를 불러 바로 녹음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목요일에 전화를 걸어 화요일에 녹음을 한 것이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재즈만 하다가 1963년에 로큰롤 음악에도 손을 대게 되었는데 그것이 여가수 레슬리 고어(Lesley Gore)의 히트곡인 'It's my party'였다. 당시에 내가 부회장이었던 관계로 히트곡에 대해서 많은 지불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은 프로듀서라고 많이 돈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웃음) 마이클 잭슨은 대단한 엔터테이너 가수이자 댄서여서 모든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기반이 있었기에 훌륭한 음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음악적인 영감을 어디서 받는지 궁금하다.
영감의 원천은 삶 자체다.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먼저 마음껏 살아보는(Live your life) 법을 직접 배우라는 것이다. 내 음악을 뛰어넘는 인간은 될 수 없다. 내가 느끼고 듣고 경험하는 것에서 음악이 나온다. 삶을 살아가며 웃고 사랑하게 베푸는 총체적인 경험을 통해서 원천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음악을 매일 듣다보니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고 이런 풍토가 음악을 위험에 빠트린 것 같다. 최근에는 뮤지션들이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데 빠져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뮤지션이 음악에는 집중하지 않고 향수, 주류 사업에 혈안이 되어있다. 제이 지(Jay-Z), 디디(Diddy),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그렇다. 뮤지션은 맡은 분야에서 꾸준히 공부를 하며 음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정말 특별한 곳이다. 조만간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드리겠다.
정리 : 편집장 홍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