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그룹이 제시해 왔던 함수식은 풀이방법의 명확함과는 달리 접근방식이 생소해 큰 파급력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물론 이러한 노선은 소녀시대라는 보험을 매개로 한 의도된 실험이었지만, 실적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뚜렷한 한방이 요구되던 시점이었다. 10곡이라는 부피로 인한 부담 역시 모험 일로를 향한 여정을 막아섰다. 가시적인 성과를 위한 감상난이도 하락은 이러한 점에서 예측 가능했다.
타이틀 '피노키오(Danger)'를 보면 전체적인 조감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성과를 위시한 탓에 몰개성의 덫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걷어내고 다행히 그동안 쌓아왔던 캐릭터를 잘 담아냈다. 좋은 곡들로 차근차근 상승세를 밟다가 'Triangle'로 최악의 선택을 했던 동방신기의 예를 비추어 보면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하다. 다소 강한 일렉트로니카 성 비트에 날카롭게 신경을 긁는 기타소리가 오감을 자극하며, 드디어 '들리는 멜로디'를 탑재해 냈다는 것이 눈에 띄는 변화점이다.
'Nu ABO'의 방향성을 잇는 '빙그르(Sweet Witches)'는 흔히 만날 수 없는 재미있는 트랙이다. 하나의 키보드 루프와 빠른 템포의 비트, 이펙트를 건 보컬 톤의 조합으로 일관된 흐름을 유지한다. '빙그르'라는 소절만 반복으로 생겨날 뻔했던 지루함은 적재적소의 악기배치로 자연스레 상쇄시켰다. 서서히 빠져들게 만드는 불친절한 '나쁜 여자'의 매력을 완성시키는 키포인트 트랙이라 할 만하다.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오는 변화구도 체감할 수 있다. 자신들만의 물기를 살짝 빼 건조시킨 레트로 팝 '아이(Love)'는 감소된 개성만큼 확실한 흡입력을 갖추었다. 감각이 절정에 오른 한재호, 김승수 콤비의 솜씨는 카라든 티아라든 상관없이 누가 불러도 일정 퀄리티를 유지하는 '스탠더드 팝'으로 귀결되는 인상을 준다. '가장 꽂히는' 선율을 갖추었음에도 단지 수록곡으로서만 활용한 선택은 정규작이기에 부릴 수 있는 호기이다.
이처럼 정체성과 트렌드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시도와 노력은 러닝타임을 관통한다. 명징한 어쿠스틱 사운드만으로 페퍼톤스(Peppertones)의 손길이 들어갔음을 감지할 수 있는 'Stand up' 역시 인디 아티스트와의 합작이라는 의미 외에도 프로모션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좋은 곡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에서 풀 렝스(Full length)의 장점이 다시 한 번 살아난다. 다만 구색 맞추기 용 발라드인 'Beautiful goodbye'와 'So into U' 대신 전작에 실려 있었던 'Mr. boogie', 'Ice cream'이 들어갔다면 더욱 완벽한 콘셉트 앨범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 가지 문제 삼을 만한 것이 메시지 전달의 측면이다. 사운드에 무게중심을 지나치게 둔 탓에 문장으로서의 인식이 어렵다. 각 글자가 분해되어 소리 위를 부유하는 느낌이랄까. 노랫말이 가질 수 있는 운율이나 억양이 가지는 측면을 너무 간과한 느낌이다. 10대들의 언어를 가감 없이 삽입하는 것 역시 좋게 보기는 힘들다. '이야기'조차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른 세대의 박탈감으로 이어져 스스로 한계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소속사의 누구처럼 '오 오 오 오 오빠를 사랑해'까진 아니더라도 좀 더 쉽게 풀어갈 필요성이 분명해 보인다.
비교적 자신들의 이미지가 선명하다는 것, 무엇보다 '음악적인 기대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자 경쟁력이다. 싱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앨범'에 대한 극진한 대접이 그룹의 첫 번째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써내려 갈 수 있게 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에스엠(SM)이란 두 글자를 미워하려해도 미워할 수가 없다. 필시 애증(愛憎)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 수록곡 -
1. 피노키오(Danger)

2. 빙그르(Sweet witches)

3. Dangerous
4. Beautiful goodbye
5. Gangsta boy
6. 아이(Love)

7. Stand up
8. My style

9. So into U
10. Lollipop(feat. SHIN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