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서 그의 등장을 기다리는 사이에 기타를 든 건장한 남성이 무대에 등장해 4곡을 부르며 오프닝 무대를 선사했다. 기타 실력을 출중했지만 노래들은 지루했고 가창력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 '차라리 기타리스트를 하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사라 바렐리스의 백 밴드에서 기타와 백 보컬을 맡고 있는 하비에르 던(Javier Dunn)이었다.
하비에르 던의 오프닝이 끝나고 다시 20여 분이 흐른 7시 55분. 실내가 어두워지며 2집 타이틀곡인 아카펠라 넘버 'Kaleidoscope heart'가 흐르자 주인공 사라 바렐리스가 밝게 웃으며 등장했다. 신난 10대 소녀처럼 앙증맞게 손을 흔들며 자신의 카메라로 관객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 바빴던 그는 곧바로 피아노에 앉아 'Uncharted'로 관객들의 흥분을 유도했다. 음반 < Kaleidoscope Heart >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 노래로 관중들은 자신들의 몸을 여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아노 위에 놓인 포도주로 간간히 입을 축이던 사라 바렐리스는 2집에 들어있는 포크 넘버 'Basket case'를 부를 땐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팬서비스도 세심하게 챙겼다. 이 곡이 끝나고 “아시아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 이렇게 많은 팬이 있는지 몰랐다. 이 노래는 서울에 있는 여러분에게 바친다.”며 1집에 들어있는 'City'를 열창했다. 기타와 건반을 연주한 필립 크로넨골드(Philip Krohnengold)의 절제된 피아노 연주와 사라 바렐리스의 고결한 분위기는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의 진정성과 맞닿아있었다.
공연 후반부에 사라 바렐리스는 자신의 음악을 조종하고 간섭하는 뮤직 비즈니스 업계를 향해 만든 'King of anything'을 부르기 전에 '* 같은 음악 장사꾼(fucking business)'에게 바친다고 소개했다. 사라는 냉소적인 이 노래의 간주 부분에서 관객을 두 파트로 나눠 코러스를 함께 부르며 'King of anything'을 흥겹게 공유했다. 관중을 압도하는 사라 바렐리스의 리드는 명확하고도 유쾌했다.
기타 피크를 던지며 들어간 그들은 앵콜 무대에서 'Let it rain'을 합주했고 사라 바렐리스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개자식(asshole)에 관한 노래”라는 멘트와 함께 잔잔한 호수 같은 'Gravity'를 불렀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노래의 감동이 동시에 전이된 'Gravity'는 즐겁고, 유쾌하고, 재미로만 기억될 수 있었던 사라 바렐리스의 공연을 감동으로 기억하게 만든 최고의 전율이자 최대의 가슴 벅참이었다.
귀가길, 홍대 거리에 붙어있는 포스터에서 다시 본 사라 바렐리스의 코는 정말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