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녀를 일찍이 주시했던 팝 마니아들에게 이미 예정된 결과처럼 받아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인생의 최전성기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이해할 수 없는 괴행으로 타블로이드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폭력적인 성향과 음주, 약물중독이었다. 전 남편인 블레이크 필더 시빌과의 부부싸움 직후에 유혈이 낭자한 몰골의 사진이 지면을 통해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만취한 상태로 무대에 오른 나머지 가사를 잊어버린 탓에 야유를 받으며 공연이 중단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정작 상을 받아야 할 주인공이 약물소지 등의 전력 때문에 미국에 입국할 수 없어 이원 생중계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그녀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방탕의 늪으로 급속도로 빠지게 된 장면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하지만 역시 짧은 생으로 운명을 다한 과거의 팝 레전드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상당 부분 와인하우스와 겹쳐지는 교집합을 발견하게 된다.
와인하우스는 자신의 외모를 경멸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흉물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트레이드 마크로 불릴 만큼 짙은 화장, 높게 솟아오른 머리, 각종 형상과 글자로 온몸을 도배한 문신 등은 원래의 수수했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지나칠 정도의 과시적인 꾸밈과 언행으로 대변되는 자기애의 결여는 흡사 블루스 디바였던 제니스 조플린을 연상케 했다.
1970년, 역시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제니스 조플린 또한 일생 동안 심각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학창시절부터 못생긴 외모 때문에 놀림을 당했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사정은 달리지지 않았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캠퍼스 내의 최고 추남'으로 뽑혔을 정도로 씻지 못할 굴욕을 이어온 것이다.
1970년대를 전후해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젊은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은 전부 약물에 손을 댔다는 사실이다. 제니스 조플린을 비롯해서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 록 그룹 도어스의 리드보컬인 짐 모리슨, 각각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이른바 '3J의 죽음'이라고 명명한 록 아이콘들은 모두 헤로인을 신봉한 음악가들이었다. 당시 음악의 트렌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세운 사이키델릭 록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환각 상태의 감흥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금단의 열매에 탐닉할 수밖에 없었다.
시대가 20세기의 끄트머리에 접어들게 되면서 유명 아티스트들의 고민은 더욱 가중된다. 매스미디어가 끊임없이 아티스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음악보다는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사생활에 관한 접근으로 아티스트의 정체성까지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아티스트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와인하우스 역시 유난히 파파라치의 플래시 세례에 피해를 받은 희생양 중에 하나였다. 이번에 영국을 발칵 뒤집은 뉴스오브더월드의 도청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국 타블로이드지의 취재관행은 극성맞기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축구 선수와 가수, 영화배우 등 이른바 셀러브리티라고 불리는 연예인들은 집중 공격 대상이다. 술에 취해 길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는 그녀가 훌륭한 먹잇감이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는 곳마다 따라붙는 시선에 격분하여 때로는 파파라치와 거친 몸싸움을 벌였지만, 이 역시도 누군가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순식간에 퍼져나가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미디어는 그녀를 사고뭉치의 이미지로 고착화시켰고, 여기에 불만을 품은 그녀는 분노에 가득 찬 행동을 벌이는 악순환이 지속된 것이다.
영국 경찰이 아직까지 사인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얼마든지 열려 있는 상태다. 실제로 자신의 재능을 만개하지 못하고 불의의 사건으로 사망한 사례도 많다. 광팬에 의해서 살해당한 비틀스의 존 레논이나, 자신이 속한 파벌의 반대세력에 의해서 총격을 당해 목숨을 잃은 두 래퍼,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처럼 타살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폭력적인 행동은 자기방어의 또 다른 형태로 봐야 할 것이기 때문에 원한을 살 만한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트위터 등을 통해서 진심으로 죽음을 애도하던 수많은 메시지가 이를 증명한다.
그동안 터져나온 구설수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이라면 그녀의 죽음 원인이 약물 과용과 폭음, 과도한 흡연 등이라 단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명세와 동시에 감수해야 했던 사생활 침해, 근 6년 동안 전작에 필적할 만한 앨범을 발표해야 한다는 중압감, 순탄하지 못했던 결혼생활 뒤의 우울증 등의 비극적인 결합이 있었다. 여기에 신변잡기식의 기사로 일관한 저급 저널리즘과 은근히 사고를 바라고 있던 대중의 호기심이 막을 수도 있었던 말로를 부채질했다. 잇따른 연예인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녀의 죽음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려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1년 8월 9일자 주간경향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