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상부상조하며 서로의 커리어에 힘을 실어주었던 윤종신과 조정치, 하림의 프로젝트는 기시감은 있을지언정 진부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본래부터 어덜트 컨템포러리의 성향을 가지고 있던 세 명의 뮤지션은 특기를 잘 살려 키치와 복고의 중간점을 잘 찾아내 발굴, 복원시켰다. 무엇보다 같은 노선인 탓에 매몰될 수 있는 개성을 조화시킨 영리함이 돋보인다. 하림이 전반적인 조타수를 잡고, 윤종신과 조정치가 철저히 조력자로 분하며 월권 대신 조화의 기지를 택한 것이 유효타로 직결되었다.
특히나 간만에 듣는 하림의 보컬은 그 반가움을 더한다. 2분 20초가 되어서야 느긋하게 템포를 높이며 후렴구를 들려주는 '퇴근길'은 15년 전에 구입했다는 키보드의 멋스러움이 더해져 직장인들의 애환을 달래며, '출발'에서는 하몬드 오르간의 미세한 진동과 함께 터져 나오는 '내게로 와'라는 외침이 묵혀 두었던 '떠남'에 대한 열망을 뿌리칠 수 없게 만든다. 자극적인 것들에 묻혀 잊고 있던 수수한 내면의 목소리는 그렇게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너랑 왔던'은 이질적인 첫인상을 준다. 전체 콘셉트 측면에서 보자면 적합하더라도, 갑작스런 윤종신 식 발라드의 출현은 흐름을 끊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코디언과 조정치가 실력을 발휘한 일렉 기타와의 앙상블을 외면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소절마다 미세한 편곡의 변화를 줌으로서 감상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신선함을 배가시켰다. '볼매(볼수록 매력있다)'가 아닌 '들매(들을수록 매력있다)'라고 하면 어울리는 표현일까.
자신만의 언어가 실종된 시점에서 이들은 여전히 고유한 어법을 간직하고 있다. 다들 '여행의 설레임'만을 이야기할 때 '여행 후의 휴식'을 이야기하고, '이별의 아픔'만을 직설적으로 이야기 할 때 '모르는 번호'라는 소재로 헤어짐의 상처를 풀어나가는 식이다. 진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에게는 이처럼 전문작가들이 절대로 따라할 수 없는 매력과 세계관이 분명 존재한다. '노랫말'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음악가들에게 울리는 일련의 경종이다.
복고를 추구했지만 대놓고 촌스럽지는 않다. 물론 그 밸런스의 모양이 아직 완벽하지는 않은 탓에 세세하게 보면 따로 노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낡았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을 가져다 고급스럽게 살리는 동시에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삶의 발견을 통한 공감대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바로 우리들이 알면서도 몰랐던 것들의 재발견이다.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다가 끝낸 후 '나 좀 멋있지'하며 씩 웃는 슈트 입은 신사, 이것이 위트와 품위를 동시에 지킨 신치림의 정체이다.
- 수록곡 -
1. 퇴근길

2. 당신이 떠나지 못하는이유
3. 출발

4. 너랑 왔던

5. 모르는 번호
6. 올래올래
7. 마지막 노래
8. 굿나잇
9. 배낭여행자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