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8시를 가리키자 공연장의 불은 꺼지고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영상이 상영되었다. 레코드판에서 멈춘 스크린이 걷히자 거대한 레코드판 무대가 위용을 자랑한다. 무대에 대한 탐복을 끝내기도 전에 이문세가 '옛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까만색 판 부분은 실제로 돌면서 바이올린과 첼로 등 연주자를 빙그르 돌게 만들었다. 무대나 조명같은 비주얼도 뛰어났지만 음향적인 부분도 탁월했다. 이문세의 고음과 안정된 연주는 잡음 없이 높게 비상하며 여러층을 누볐다. 등장 후 3곡을 연달아 부르고 나서야, 드디어 그가 말을 열었다.
위트 있으면서도 적재적소의 멘트. 그는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달변가였다. 친절하게도 자신의 공연을 즐기는 방법을 선서의 형식으로 알려주었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관객의 긴장을 풀자, 객석에 앉은 수천만의 사람들은 '깊은 밤을 날아서', '조조할인', '알 수 없는 인생'에 이르러 모두 일어나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덩달아 가수는 청중들에게 간단한 율동을 가르쳐주며 같이 하도록 유도했다. 옆 사람과 손뼉을 마주치는 이 동작은 중년의 친구들에게는 천진한 웃음을, 연인들에게는 긴밀한 사랑을, 부부에게는 어색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닭살을 선사했다. 이런 관객들의 어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장관이었다.
“이영훈씨를 만난 건 제 인생에서 가장 값진 행운이었습니다”
그의 공연은 단순한 히트곡 메들리가 아니라 다채로운 구성으로 꾸며졌다. 그 중에 하나는 이문세의 수다로 지난 이력을 짚어보는 것이었다. 1983년 가수 데뷔에 얽힌 비화와 자료화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CBS 어린이 프로그램 '달려라 중계차'로 데뷔한 에피소드와 라디오DJ 이종환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그리고 이어 정중한 표정으로 2008년 고인이 된 작곡가 이영훈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사랑이 지나가면', '시를 위한 시', '소녀', '가을이 오면'을 연달아 불렸다.
그는 오랫동안 공연을 한 베테랑답게 관객과 호흡하는 데 능수능란했다. 관객의 마음을 읽어 공감을 이끌어내며, 관객을 단순히 노래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춤추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공연 중간에는 관객시상식을 진행하며 '나는 항상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붉은 노을은 함께 만드는 것이다'라는 인식을 깊게 새기며 큰 호응을 이끌었다. 이어 진행된 공연 후반부는 뮤지컬의 한 장면 같은 웅장한 무대와 연기로 몰입을 높였다.
개인적으로 10년 전에도 이문세의 공연을 간 적이 있다. 그 때와 셋리스트는 그다지 바뀌지 않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음악적 방식과 공연 연출력은 몇 발자국이나 진보했다. 만약 그가 '그 땐 그랬지' 식의 단순한 향수만 자극했다면 단명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문세의 '붉은 노을'은 명곡의 불변성과 기획적인 도전을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 특히 아티스트의 매진(邁進)이 빛날 때 비로소 관객은 감동하며, 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