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멤버의 화음과 리듬감은 어떤 평론가가 표현한대로 '같은 DNA가 아니면 도저히 구사하지 못할' 성질의 것이었다. 어떤 때는 눈물이 돌 만큼 달콤한 하모니('How deep is your love', 'More than a woman')를 때로는 마치 칼을 능란하게 휘두르는 검객과도 같은 변화무쌍한 보컬 하모니('Stayin' alive', 'Too much heaven', 'Nights on Broadway')를 펼치며 디스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 보컬 하모니 부문의 역사적 제왕이라고 할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브라이언 윌슨도 1997년 비지스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적될 때 그들을 '영국의 1등 하모니 가족(Britain's first family of harmony)'로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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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에 로빈 깁의 청명한 비브라토와 형 배리 깁의 가성이 있었다. 디스코 시대에는 배리 깁이 팀 내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그래도 비지스 보컬의 상징은 엄연히 로빈 깁이었다. 로빈 깁은 지금의 50-60대 기성세대들한테는 오히려 더 가슴 깊이 각인된 디스코 이전의 1960년대 '비지스 팝 발라드 전성시대'를 견인했다. 음악 팬들 너도나도 아름답고 애절한 선율을 청명하게 그러나 떨림이 강한 보이스 컬러로 소화해낸 로빈 깁의 가창에 귀를 맡겼다.
국내 라디오를 점령한 'Holiday', 'Massachusetts', 'To love somebody', 'Don't forget to remember', 'I started a joke'와 같은 잊을 수 없는 비지스의 골든 레퍼토리는 배리 깁과 번갈아 했지만 주로 로빈 깁이 메인 보컬을 담당했다. 보컬 주도권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형 배리 깁과의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때 로빈 깁이 비지스 울타리를 박차고나와 홀로서기를 감행한 것도 자신('Lamplight)'이 아닌 형이 부른 것('First of may')을 타이틀곡으로 내건 것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로빈 깁은 솔로 활동을 통해서도 영국차트 2위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1969년 'Saved by the bell'과 유럽과 국내 라디오에서 환영받은 1983년 'Juliet' 등의 주옥같은 히트곡을 남겼다. 삼형제 중 그만이 전성기에 별도의 솔로활동을 했다는 것부터가 그가 비지스의 간판이었음을 일러준다. 그는 2005년 비지스의 일원이 아닌 솔로로 내한공연을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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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스는 사실상 2003년 1월12일 막내 모리스 깁이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활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로빈과 모리스는 쌍둥이로 같은 날 태어났지만 로빈이 45분 먼저 뱃속에서 나와 둘째가 되었다. 2009년 배리와 로빈은 듀엣 시스템으로 활동을 재개한다고 선언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로빈의 죽음으로 그룹 비지스의 역사는 끝이 나고 말았다. 음악학자 폴 감바치니는 비지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백인 소울 보이스 중 하나'라고 했다. 로빈 깁이 '위대한 보컬'이라는 건 50-60대의 어른들은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