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말한다. “밥은 오빠가 샀으니까 커피는 내가 살게”
남자가 대답한다. “아니야 밥도 내가 사고 커피도 내가 살게. 넌 아무 것도 하지 마 내가 다 해줄게.”
여기서 이 남자의 태도가 진정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쟁취본능에서 온 점수 따기형(形) 아첨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앨범으로 미루어 봤을 때) 소란이라는 이름의 이 네 남자들이 명백히 '이런 부류의 남자들'이라는 것이다. '얘기해 필요하면 다 사줄게/ 괜찮아 안 힘들어 갔다 올게'라는 말도 모자라 '혼자 있고 싶다면 사라질게/ 말만 해 원한다면 죽어줄게'라며 아예 목숨마저 내놓으려 한다. ('미쳤나봐') 21세기에 다시 핀 신파극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맙소사.'
남자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이 정도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열병에 휘감겼던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봐도 이런 가사들은 공감이 어려울뿐더러, 그렇게 해야만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세상이라면 참 각박하다 싶기도 하다. 세태를 악용할 소지도 충분하다. 영화 < 건축학개론 >에서의 재욱 선배는 그렇기에 가능한 캐릭터 아니었나. 시종 등장하는 그의 대사는 이랬다. “밥 사줄게^^”
반대로 이야기하면, 여자의 입장에서 들었을 때는 다를 수도 있다는 거다. 모르긴 몰라도 이 경우, 남자가 자신의 맘에 들게끔 노력한다는 것이 퍽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지금 네 모습이 완벽하다며 살 빼지 말라 노래하는 '살 빼지 마요'와 너를 위해 함께 아파하겠노라 말하는 '가장 따뜻한 위로'에서도 이들의 여성맞춤형 매력은 잘 드러난다. 이 그룹의 고정 팬들이 대학생,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게 조금은 이해가 간다.
소란의 < Natural >은 그래서, 듣는 이의 시선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앨범으로 들린다. 여러 호평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보통의 남자는 소란의 음악을 통해 매력보다도 불편함을 더 느끼게 되니까 말이다. 감언이설이라고 했다. 준수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달콤한 말들이 많아 진심일지 모르는 이들의 말에 자꾸만 의심이 간다. 영화 < 건축학개론 > 속으로 들어간다면, 이들은 과연 승민일까, 아니면 재욱 선배일까.
-수록곡-
1. 돌아오는 날
2. 미쳤나봐 (with 권정열 of 10cm)
3. 살 빼지 마요
4. 가장 따뜻한 위로
5. 연애의 재구성
6. 내꺼라면
7. 시간의 노래
8. 벚꽃이 내린다
9. 차라리
10. 가을목이 (acoustic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