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만으로도 '나 메탈 좀 들었다'는 음악 팬들의 가슴을 흥분케 하는 밴드리스트가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이 바닥 레전드 밴드들의 의미 없는 나열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애니메탈 USA'라는 생소한 그룹의 멤버들이 거쳐 온 밴드의 이력, 무심코 앨범에 손을 뻗었다가는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으니 미리 알아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놀라운 점은 메탈 올스타들이 한 데 뭉쳤다는 사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잠시 곡목을 훑어보면 이들이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마'라는 부사를 혼잣말로 되뇌었을지 모르겠지만, 흥미롭게도 그 예상이 틀리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다. 이들은 드래곤볼의 주제곡과 세일러문의 오프닝을 헤비메탈로 바꿔 부르는 리메이크 전문 밴드다. '애니메탈'이라는 생소한 그룹 이름이 납득이 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게다가 데뷔작품을 내고 일 년이 채 안 되어 선보이는 두 번째 앨범이다. 프로젝트 그룹임에도 그저 그런 일회성 프로젝트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에서 이것은 적어도 메탈 팬들에게만큼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헤비니스의 영웅들이 사고를 쳤다는 느낌도 있기는 하다. 이런 성격의 결과물이라면 '정말?'을 넘어 '도대체 왜?!'라는 반응도 어색하지 않으니까. (누군가 그랬다. '덕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이런 상황에 백 퍼센트 부합하는 말 같다.)
주동자는 (라우드니스와 잉베이 맘스틴 밴드를 거쳐 간 것으로 유명한) 보컬 마이크 베세라였다고 한다. 일본의 음악세계를 탐험하던 중에 2006년에 해산을 고했던 프로젝트 밴드 애니메탈을 발견하고 그것이 존재할 수 있음에 -그리고 그만큼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결국 동료 뮤지션들을 끌어 모아 '그럼 우리도 한 번 해보자'라고 의기투합하게 되었다고. 마이크 베세라도 놀랍지만, 연락을 받고 모인 다른 멤버들도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긴 마찬가지다.
크리스 임펠리테리의 편곡을 손수 거친 음악은 역시 북구의 파워메탈을 닮아있다. 큐티하니와 세일러문, 요술공주 셀리와 같은 어쩔 수 없는 멜로디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메들리로 묶어서 뺀 것이겠지만- 애니메이션 마니아가 아닌 경우 대부분 원곡이 애니메이션 주제가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상당부분을 탈바꿈시켰다. 덕분에 애니메이션 송과 헤비메탈 사이의 간극 또한 최소화된 형상이다. 멜로디를 중시하는 유러피언 파워메탈이 종종 만화 주제가에 비견되던 것을 상기해본다면 이러한 편곡은 최적의 선택으로 보인다.
헤비메탈과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어찌 보면 전혀 상관없는 두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 모두 관심을 갖고 있어야 손이 가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국내에서 많은 수요를 창출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앨범이 일본의 다양한 음악 시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창이 되어준다는 점이다. 어느 산업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수요가 있어야 공급 또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결국 일본의 다양한 취향이 헤비메탈의 영웅들을 열도의 스테이지로 불러들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를 노린 콘셉트이기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마냥 재미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번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수식이 붙고는 하지만, 이런 결과물 앞에서는 그 체감이 더하게 느껴진다.
비록 헤비메탈의 팬은 아닐지라도,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왔다면 수록된 애니메이션들 중 어느 하나라도 추억을 가진 이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때문에 선입견만 제하고 듣는다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앨범이다. 입으로는 '피식'하면서도, 어느새 익숙한 멜로디에 고개를 끄떡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추억을 자극하는 화끈한 헤비메탈, 애니메탈USA와 함께라면 가능한 이야기이다.
-수록곡-
1. 터치 (애니메이션 `터치` OP)
2. Cat`s Eye (애니메이션 `캣츠❤아이` OP)

3. 히어로 메들리 (데블맨 곡 / 렛츠 고 라이더 킥 / 싸워라! 가면 라이더 V3 / 비밀전대 고렌쟈 / 울트라세븐 곡)
4. 드래곤볼 메들리 (Cha-la head-cha-la / We gotta power)

5. 은하철도999 (영화판 `은하철도999` 주제가)
6. 위아 (We are)! (애니메이션 `One Piece` OP)

7. 양보할 수 없는 소원 (애니메이션 `마법기사 레이어스` OP)

8. 여자 애니메이션 메들리 (큐티하니 / 어택 No.1 테마 / 문라이트 전설 / 비밀의 앗코짱 / 요술공주 세리)
9.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주제가) 10. JAM Project 메들리 (Vanguard / Maxon / Skill )
11. Give Lee Give Lee 록 리 (Extended Ver.) (애니메탈 USA×카게야마 히로노부) (TV도쿄계 애니메이션 `NARUTO-나루토- SD 록 리의 청춘 풀파워 닌자전` 오프닝 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