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어린이들의 친구, 테디 베어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이렇게 비틀어 내다니. 실소를 금치 못할뿐더러 그 재치와 유머감각에 격정적 찬사를 보낼 만하다. 사회적 통념상 도저히 용납이 안 될 짓들을 마구 저질러댄다 싶지만 미국적 코믹코드에 접속해 보면 무난히 용납될 것이기에 문제의 소지를 삼을 필요는 없다. 다만, 미국식 코믹코드에 정확히 접속하지 못할 경우 재미를 다 챙길 수 없는 여지는 아쉽게도 공존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시절에 대한 향수로 점철돼 있다. 따라서 사운드트랙에 사용된 음악들에 대한 이해도가 결여되어서는 온전한 재미를 다 느낄 수 없다. 이야기전개 중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이 모두 1980년대의 히트 팝송이나 드라마음악들이기 때문이다. 티파니의 'I think we're alone now'부터 드라마 <전격 Z작전>과 <플래시 고든>의 주제음악, 그리고 리타 쿨리지의 007주제가와 후티 앤 더 블로우피시에 이르기까지 지난 시절, 유년기를 보낸 지금의 기성세대를 위한 노래들이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다시금 불러낸다.
하지만 단지 과거를 향수케만 하는 건 아니다. 당대의 노래들과 절묘하게 얽힌 이야기를 통해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전, 후 세대의 폭넓은 공감을 산다는 점에서 영화는 단지 코믹으로만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미국식 가족주의가 198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와 융합돼 속칭 구린 감성을 자극해 상투적이기도 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훈훈한 만족감을 공히 제공한다. 공연도 하면서 감흥을 더욱 증폭시키는데 일조한 노라 존스의 카메오출연도 세대적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고무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1980년대 중반 미국의 교외를 배경무대로 영화의 막이 열린다. 화면 앞 객석에서 서서히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당신의 주인공 존 베넷은 10대 소년이다. 이 녀석은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다른 친구의 구원자처럼 나서지만 쳐 맞고 있는 왕따에게마저 무시당할 정도로 인기와는 담쌓은 친구다. 하지만 예수성탄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아침 선물로 꼭 껴안아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테디 베어를 친구로 맞게 된다. 자기만의 새로운 친구를 맞은 기쁨도 잠시, 그날 밤 이왕이면 살아있는 곰이기를 바라는 기원이 유성이 하늘을 지나치는 순간 하늘과 통했는지,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어린 소년의 꿈 속 바람이 현실이 됐다.
하늘도 감동해 마법 같은 초자연적 힘이 작용, 소년과 곰돌이 테드는 “그 이후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란 상투적 결말을 기대했다면 완전히 빗나간 오산이다. 거기서부터 둘 사이는 상상초월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한 뒤집기적 발상으로 이야기를 발진시킨다. 살아 움직이는 곰 인형의 등장에 그야말로 난리가 난 일생일대의 사건도 다 과거지사로 지나가고 이래저래 어느덧 27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여전히 둘은 한집에 산다.
그런데 문제는 소년에서 어른으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 잡고 활동할 35세가 된 존이 아직 철부지 어린애 같다는 것과 그 이유의 절반 이상이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절친 테디 베어에게도 책임 전가된다는 것이다. 존의 크리스마스 소원으로 인해 생명력을 부여받은 곰인형 테드는 세계적인 화제로 부상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이전과 달리 여전히 귀엽지만 음담패설과 욕설이 취미이며 여자꼬시기가 특기인 백수한량이 돼버렸다.
허구한 날 거실에서 물파이프로 연신 연기를 품어대질 않나, 존의 여친 밀라 쿠니스의 로리 콜린스의 집에 거리의 여자들을 불러놓고 역겨운 게임을 하고 있질 않나, 어린 시절엔 몰라도 다 큰 어른이 된 존의 연애생활에는 그야말로 민폐덩어리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27년 지기 절친 존과 테드는 자의반타의반 서로 떨어져 지내기로 결심, 실행에 옮기지만 다혈질 테드의 19금 난봉꾼 질은 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존과 그의 애인 로리의 관계를 더 꼬이게 할 뿐이다.
텔레비전 만화영화의 아이콘 세스 맥팔레인은 실사영화 데뷔작품인 이 영화에서도 감독, 각본, 제작은 물론 주인공 테드의 목소리연기까지 도맡아 자신의 역량을 한껏 과시했다. <심슨가족>과 쌍벽을 이루는 미국성인애니메이션 <패밀리 가이>의 제작자로 유명한 세스는 <패밀리 가이>의 장녀 메그 그리핀 역을 맡아 13년째 함께 해온 밀라 쿠니스를 포함해 <파이터>에서 호연을 보여준 마크 월버그, 그리고 노라 존스, 라이언 레이놀즈, 샘 J 존스, 패트릭 스튜어트를 카메오로 출연시켜 복고적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사실적 재미를 배가시켰다.
적잖이 유치한 상황극이 연달아 펼쳐지지만 사실성을 강화해 공감대를 확고히 한 설정은 실로 기막히다. <19곰 테드>는 지금까지 개봉된 영화들 중에 가장 유쾌한 영화 중 하나임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터무니없게 우스꽝스런 물리적 폭력과 역겨운 유머, 그리고 설전들이 난무하지만 사랑과 우정, 그리고 관용이라는 주제를 진정으로 흐뭇한 이야기로 균형감 있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당연한 흥행성과를 거둬들였다. 북미 2억1천7백4십만 달러를 포함, 4억 달러 이상의 세계적 흥행수익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세스 맥팔레인은 24세 최연소제작자로 데뷔한 기록적 역량과 더불어 음악적으로도 능통한 만능연예인의 재능을 여기서도 발휘했다. 2002년 <패밀리 가이>로 에미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력의 소유자로서 이전 자신의 쇼에서도 그랬듯 <스타워즈>, <전격 Z작전>, <제국의 종말> 등 TV나 극장영화의 주제음악으로 쓰인 영화음악들을 익살스럽게 사용하는 기지를 재 가용했으며, 쇼를 위해 공동 작업했던 작곡가 삼인방 조엘 맥닐리(Joel McNeely), 론 존스(Ron Jones) 그리고 월터 머피(Walter Murphy) 중 월터 머피와 다시금 의기투합했다.
맥팔레인은 또한 빅 밴드 재즈, 스윙 그리고 딘 마틴과 프랭크 시나트라와 같은 스탠더드 팝 명가수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표한 뮤지션으로서 2010년엔 론 존스 편곡, 조엘 맥닐리 지휘의 독집 < Music is Better than Words >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앨범으로 그는 54회 그래미시상식에서 다른 두 개 부문과 더불어 최우수전통팝앨범(Best Traditional Pop Vocal Album)부문 수상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담 <19곰 테드>에 쓰인 음악이 죄다 이 영화에 적합하단 말인가? 글쎄, 어쨌든 스코어는 언급했다시피 맥팔레인의 고정 작곡가 중 한 명인 월터 머피의 몫이 됐다. 혹자는 1976년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에 나타난 그의 이색적인 디스코 히트 'A fifth of Beethoven'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동년도 예상외의 차트성적을 거두기도 했기에 더욱 그렇다. 그는 그 이후 대체로 영화계에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2006년 맥팔레인과 합작하기 전, 그 대신에 <커미시>(The Commish)와 <뱀파이어 해결사>(Buffy the Vampire Slayer)와 같은 텔레비전 시리즈물들을 위해 작업해왔다.
사실, <19곰 테드> 이전 머피의 가장 최근 극영화는 2002년 개봉한 <체인징 하트>(Changing Hearts)였다. 그가 다작을 하는 작곡가가 아님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모든 기정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이번 스코어에 대한 그 어떤 선입견도 불필요하다. 모든 좋은 코미디스코어들처럼 머피의 스코어는 완전히 직설적이고 아주 신나고 재미있게 익살스러운 장면들을 반주하고, 훈훈하고 너그러운 오케스트라와 함께 매력적이고 잘 들리며 감정을 동시에 자극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낸다.
스코어의 전반부는 오로지 상냥한 재즈연주곡으로 구성되었다. 존과 테드 간의 속편한 단짝친구관계를 포착해낸 사운드다. 빅밴드 편곡에 따른 곡들은 귀에 쏙 들어오는 경쾌한 곡조로 기분을 환하게 해주는 작용을 한다. 빌리 메이(Billy May)와 넬슨 리들(Nelson Riddle)과 같은 명 편곡가들에게 크게 빚을 지고 있다. 스네어 하이해트 심벌을 브러시로 쓸어내는 반주, 그리고 뜯어서 내는 베이스연주의 그루브 등의 연주방식이 그 방증.
'The power of wishes'에서 처음으로 들리는 메인테마는 명랑한 느낌의 상박에 느긋한 선율이 대니 엘프먼을 다소 연상케 한다. 기발하고 마법적으로 황홀한 사운드질감으로 전염성이 강하다. 이는 곧 존과 테드를 위한 제2의 우정테마로 바뀐다. 지시악절로 쓰인 'Thunder buddies for life'에서 처음으로 들리고, 재즈적이고 매우 즐거운 'John&Lori at work/a walk in the park'의 후반부에서 나타난다. 자아 성찰적이면서 감성을 자극하는 'Magical wish'과 라운지 놈팡이 스타일의 'Rex's party'와 같은 후반부 큐들도 걸출하다.
하지만 'Ted is captured'서부터 스코어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다. 레이더스 행진곡에 완벽히 준하는 존 윌리엄스 풍의 관현악 액션음악이 매우 뛰어난 기량으로 모방되어 나온다. 지오바니 리비시가 연기한 곰 유괴범과 그의 응석받이 아들의 인물됨을 반영한 오싹한 분위기가 뜻밖의 부차적인 줄거리로 영화의 이야기에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존에게서 테드를 영원히 갈취하려 드는 악당으로 나온다. 우정테마의 대단한 서스펜스 변주와 경쾌하게 현을 타고 연주되는 불협화음이 'Ted is captured'를 지배한다.
한편 'The car chase/fenway pursuit', 'Climbing the tower/she's your thunder buddy now' 그리고 'Saving Ted'와 같은 장면지시악절들은 진정 아주 신나고 눈부신 스트링의 질주, 동일성부를 반복해내는 음형의 스네어 드럼, 울렁이는 팀파니사운드, 영웅적인 브라스 팡파르, 그리고 그 외의 관현악협주에 의한 음들로 조화롭게 구성되었다. 존 윌리엄스의 <슈퍼맨>과 대니 엘프먼의 암울하면서도 익살 넘치는 곡조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장면에 조응하는 반주음악이다. 오케스트라의 파워를 적절히 활용해 영화를 더욱 흥미진진하고 호감가게 만든 머피의 음악성에 곡의 질적 우수성과 더불어 특히 찬사를 보내 마땅한 이유를 연계되는 이 곡들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감정적 자극이 절정에 달하는 장면에 쓰인 지시악절 'Lori's wish'는 매우 진심어린 곡조로 관객들의 심정을 불러낸다. 향기로운 낭만적 풍의 'The proposal/the wedding'으로 전환되고 'The power of wishes'에서 단짝친구의 우정테마를 대위법으로 더욱 완벽하게 나타내기 전, 감동적인 현과 애도하는 피아노 반주가 돌연 신파조의 감상적인 대단원을 장식한다. 머피는 '종영인물자막'을 위해 쓴 마지막 조곡에서 모든 메인테마들을 개괄적으로 번갈아 소개함으로써 스코어를 멋지게 마무리한다.
머피의 탁월한 스코어에 덧붙여, 사운드트랙에 실린 노래들은 원숙미를 더한다. 영화의 주제가와 같은 'Everybody needs a best friend'는 머피와 맥팔레인이 쓴 곡. 스코어에서 순환되는 우정테마를 토대로 쓴 노래는 대단히 기품 있는 빅밴드 오케스트라 반주를 받아 노라 존스가 관능적인 음성으로 소화했다. 내년 아카데미시상식 주제가부문후보에 강력 추천할 만하다. 퀸 팬들에게는 “플래시! 아아! 우주의 구세주”를 영화에 농담거리로 반복해서 사용해 재치를 더하는 'Flash theme'에 반가운 탄성을 지르게 될 것이다. <웨인즈 월드>에 준하는 코믹감동의 또 다른 표본이랄까.
후티 앤 더 블로우피시의 'Only wanna be with you'는 모음들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음을 보여준 테드의 재치를 분명히 보여준다. <007 옥토퍼시>의 주제가 'All time high'는 로리를 되찾으려는 월버그가 민망한 오케스트라반주에 따라 부른 무대 위 퍼포먼스로 참사를 맞는다. 티파니의 'I think we're alone now', 1987년 11월7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빌보드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당시 차트 1위 싱글을 낸 최연소여가수가 된 티파니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음흉한 몸짓을 하는 곰 유괴범 지오바니 리비시의 장면에 사용돼 의외의 충격을 가한다.
<19곰 테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화의 음악적인 면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느냐에 있다고 본다. 이 영화와 같이 과장된 행동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영화들은 통상적으로 이처럼 좋은 스코어를 만나기 어렵다. 머피와 맥팔레인 콤비의 위대한 증거에는 이들이 영화를 위해 정말 쓰고자 했던 인상적인 음악이 수반되었다. 전혀 획기적이지는 않다.
사실 존 데브니나 앨런 실베스트리 그리고 데이비드 뉴먼과 같은 작곡가들이 밥줄을 위해 스코어를 써왔던 것에 견줘 상투적인 면이 다분한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면이다. 하지만 이 스코어는 빅 밴드 재즈의 고상한 재래식 낭만과 코믹, 그리고 다정다감한 할리우드 영화음악형식미를 추구하는 이들이 변함없이 공존한다는 측면에서 이런 타입의 스코어들 중 가장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수록곡-
01 Everybody Needs a Best Friend 모두들 최고의 친구를 필요로 해 (월터 머피, 세스 맥파레인, 노라 존스 작사/작곡, 노라 존스 노래)
02 The Power of Wishes 소원의 힘
03 Thunder Buddies for Life 평생지기 천둥 친구들
04 John & Lori at Work/A Walk in the Park 존과 로리 일하는 중/공원을 거닐다
05 Magical Wish 황홀한 소망
06 Rex's Party (Everybody Needs a Best Friend) 렉스의 파티(모두가 최고의 친구를 필요로 해)
07 The Breakup 결별
08 Never Be Scared of Thunder Again 다시는 절대 천둥을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
09 Ted is Captured 테드 억류되다
10 The Car Chase/Fenway Pursuit 자동차 추격/펜웨이 추적
11 Climbing the Tower/She's Your Thunder Buddy Now 탑 위로 타고 올라가다/그녀는 이제 너의 천둥친구야
12 Saving Ted/Lori's Wish 테드를 구하다/로리의 소망
13 The Proposal/The Wedding 청혼/결혼
14 End Titles 종영인물자막
15 Flash's Theme 플래시 테마음악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그리고 존 디콘 작사/작곡, 퀸 노래/연주)
16 Sin 죄악 (데프니 쿠(Daphne Khoo) 곡, 데프니(Daphne) 연주)
17 Only Wanna Be With You 오직 너만을 원해 (마크 브라이언, 딘 펠버, 다리우스 러커 그리고 짐 소넨필드 작사/작곡, 후티 앤 더 블로우피시 노래/연주)
18 Come Away With Me 나와 멀리 떠나요 (노라 존스 곡/연주)
19 All Time High 사상최고치 (존 베리와 팀 라이스 곡, 리타 쿨리지 가창)
20 I Think We're Alone Now 우린 이제 혼자라고 생각해 (리치 코델 곡, 티파니 가창)
21 Thunder Buddies [BONUS] 천둥 친구들 (마크 월버그와 세스 맥파레인 가창)
작곡 및 지휘: 월터 머피(Walter Murphy).
관현악편곡: 토드 쉐이덴버거(Todd Sheidenberger).
편집: 스탠 존스(Stan Jones)와 모이라 마퀴스(Moira Marquis).
앨범제작: 월터 머피(Walter Murphy)와 세스 맥파레인(Seth MacFar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