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rlock'의 음악적 성과는 뚜렷했다. 가요계의 질을 저하시키는 주범 소리를 듣던 게 엊그제 같던 SM이 '너무 세련된 반면 대중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만큼 회사는 지난 몇 년간 자본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일관성 있는 음악을 바탕으로 한 팀컬러 제작에 주력해왔고, 그렇게 샤이니(SHINee)와 에프엑스(f(x))가 탄생했다. < Electric Shock >(2012)와 < Sherlock >(2012)은 한 우물 파기에 대한 소기의 성과였고, 그렇게 확립된 음악적 정체성은 퍼포먼스와 캐릭터로 확장되며 타 그룹들 간의 교집합을 착실히 없애나갔다. 누구도 발 들일 수 없는 자신들만의 영역이 어느 정도 만들어진 셈이다.
이러한 결과물 속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간 유럽의 작곡가들을 꾸준히 섭외해 현지화 시켜온 기획사의 행보다. 외국 트렌드에 밝은 국내 뮤지션에 머물지 않고, 외국 뮤지션들과 접촉해 그들의 곡을 가져와 발표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인재의 풀(Pool)을 해외로 넓힌 뒤 케이팝 시장에 적합하도록 역(逆)로컬라이징의 시행착오를 거친다. 이와 함께 그러한 스타일에 최적화된 팀을 만든다. 아마 이쯤이 샤이니의 초기 기획안이 아니었나 싶다.
이는 'Sherlock' 뿐 아니라 활동 초반 이들이 발표한 싱글들이 국내 감성과 약간 엇나간 듯 하다는 반응과도 연결된다. 신작은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EP의 뼈대는 유지한 채 좀 더 흡수가 쉬운 소재로 대체했고, 이를 그룹의 캐릭터 안에서 겉돌지 않게 잘 녹여냈다. 이러한 성공적인 변화는 '샤이니라는 이름 안에서라면 충분히 팝과 케이팝, 그리고 대중간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라는 통제력과 자신감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싶다.
타이틀인 'Dream girl'을 들으면 보다 그러한 점이 명확해진다. 리듬의 박력, 그루브한 베이스라인과 펑키한 기타가 양쪽 스피커를 교차하는 와중에 터져 나오는 후렴구는 확실히 가요에 근접해 있다. 그렇게 농도가 짙진 않아도 전처럼 부담스럽지 않아 반복청취가 가능한 딱 그 정도라고 할까. 1980년대 아메리칸 팝(구체적으로 마이클 잭슨)의 기조를 따른다는 명제는 동일하면서도 보컬에 힘을 빼고 선율의 고저를 줄임으로서 '프로모션 곡'이라는 역할을 확실히 상기시켰다. 코러스 라인과 애드리브를 순차적으로 추가함으로서 동반되는 극적인 구성 역시 쉼 없이 달리기만 했던 'Sherlock'과 달리 듣는 이에게 어느 정도의 여유를 제공한다.
이어지는 'Hitchhiking'까지가 핵심을 이룬다. 전자사운드의 고공폭격이라 할 정도로 빽빽이 밀집된 소스들이 사람들의 혼을 빼놓고, 메인 멜로디에서는 코드를 한번 꼬아놓음으로서 익숙함에서 느껴지는 지루함을 상쇄시키고자 했다. 그렇게 올라간 텐션은 'Punch drunk love'에서 잠시 이성을 찾는다. 정박으로 떨어지는 복고적인 느낌의 키보드와 디스토션 루프에 멤버간의 개성이 녹아든 애교스런 팝튠은 아이돌만이 할 수 있는 것에도 능함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후반부로 흐름을 이어간다.
지난 앨범과 가장 다르다고 할 만한 점은 역시 끊김이 없는 유기적인 러닝타임이다. 물론 템포변화나 노랫말 같은 소주제들은 쉴새없이 변화하지만, 이들이 발하는 질감과 색감은 일정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킬링 트랙'의 부재를 논할 이들도 있겠지만, 감상이 반복되다 보면 수록곡 전체가 고르게 좋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긴장감을 상승시켰다가 이내 기분 좋게 이완시킨 후, 잠시 차분하게 숨 돌릴 기회를 준 다음 다시 한 번 몰아붙이는 이러한 포물선 식의 구성은 굳이 중간에 스톱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게 만든다. 밝고 가벼운 느낌의 'Girls, girls, girls'와 멤버들의 감정처리와 곡의 분위기가 가장 큰 일체화를 보이는 미디엄 템포의 '방백(Aside)' 등 각 트랙의 존재감이 확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샤이니라는 브랜드가 음악으로도 통용될 수 있음을 명확히 선포한 작품이다. 단순히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고를 떠나, 일반 아이돌 가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텍스쳐로 스타일리시한 결과물을 만들어 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일관성'의 힘은 이토록 견고하고 강력하다. 굳이 'Dream girl' 대신 다른 제목을 앨범에 걸어놓은 것은, '양산되는 아이돌 그룹 중 하나'라는 오해를 풀고 싶었던 그룹의 의지가 반영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는 결과물로 하여금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었다. 팬덤과 대중의 밸런스라는 면에서 봤을 때 지금 당장 SM을 이끄는 것은 소녀시대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샤이니가 될 것이다. 이것은 짐작이 아닌, 확신이자 예언이다.
- 수록곡 -
1. Spoiler
2. Dream girl

3. 히치하이킹(Hitchhiking)

4. Punch drunk love
5. Girls, girls, girls

6. 방백(Aside)

7. 아름다워(Beautiful)
8. 다이너마이트(Dynamite)
9. Runaw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