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팝송을 들으면서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흑인음악을 하는 백인은 많은데, 왜 백인음악을 하는 흑인들은 적을까? 하는 것이었죠. 흑인음악을 하는 백인 가수들을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명칭까지 만들어주면서 칭송하지만 왜 백인음악을 하는 흑인 뮤지션들에겐 아무런 호칭이 없을까요? 그래서 이번 하나씩 하나씩에서는 이 억울함과 울분을 위무해주기 위해 백인음악을 한 흑인 뮤지션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소개해야 할 사람은 레이 찰스입니다. 레이 찰스는 소울을 대표하는 가수지만 행크 스노우의 'Move on', 돈 깁슨의 'I can't stop loving you', 행크 윌리암스의 'Your cheating heart' 같은 컨트리 곡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불렀죠. 이 곡들이 수록된 앨범 타이틀은 아예 < Modern Sounds In Country And Western Music >으로 붙여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레이 찰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컨트리 노래를 가스펠과 소울이 충만한 스타일로 불러 흑인과 백인들에게 충격을 줬지만 이것이 바로 대중음악 진화의 시작이었죠.
레이 찰스처럼 컨트리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인물이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라이오넬 리치인데요. 그는 그룹 코모도스의 멤버로 있을 때부터 컨트리 음악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죠. 대표적인 노래가 1979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4위에 오른 'Sail on'입니다. 솔로로 독립해서는 'Stuck on you'나 1980년대 최고의 컨트리 그룹 알라바마와 함께 'Deep river woman'을 불러서 자신의 음악적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컨트리뿐만 아니라 포크 음악을 시도한 흑인 아티스트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리치 헤이븐스라는 기타리스트 겸 가수인데요. 1960년대 중반부터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에서 활동한 그의 히트곡은 1971년에 빌보드 16위까지 오른 비틀즈의 커버 곡 'Here comes the sun' 밖에 없지만 그의 깊은 보컬과 단호한 기타 연주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그래서 1969년에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가장 먼저 무대에 서는 영광을 차지했던 것 같습니다.
이 리치 헤이븐스보다 더 유명한 흑인 포크 싱어 송라이터가 있죠. 바로 트레이시 채프만입니다. 1988년에 발표한 'Fast car'로 조명을 받은 그의 모습을 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흑인이라는 것에 놀랐고, 남자처럼 생긴 체격 좋은 여자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죠. 왜소한 체구의 백인 남성일거라는 제 예상은 무참히 빗나간 겁니다. 이후에는 'Give me one reason' 같은 블루지한 곡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Baby can I hold you', 'Telling stories' 같은 포크 곡들을 주로 불렀죠. 포크 음악의 특성답게 리치 헤이븐스나 트레이시 채프만 모두 사회적인 내용을 노래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제부턴 록 진영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분야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여러분들이 짐작하시는 대로 지미 헨드릭스입니다. 물론 지미 헨드릭스를 블루스 뮤지션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하드록과 헤비메탈에 영향을 준 면에서도 그는 분명히 록 진영뿐만 아니라 일렉트릭기타에서도 중요한 인물이죠. 'Purple haze'와 'Foxy lady' 같은 명 리프만 들어도 지미 헨드릭스가 록계에 끼친 영향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990년대에는 '제2의 지미 헨드릭스'라는 별명을 가진 아티스트가 등장하죠. 바로 레니 크라비츠인데요. 그는 지미 헨드릭스와 외모도 비슷했지만 기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록커임을 증명하는 인증샷이었죠. 지미 헨드릭스와 커티스 메이필드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레니 크라비츠는 'It ain't over till it's over' 외에도 'Stand by my woman', 'Fly away' 그리고 캐나다의 하드 록 밴드 게스 후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American woman' 등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1990년대 룻츠 록의 붐에 일조한 4인조 밴드 후티 & 더 블로우피시는 록과 팝, 컨트리, 포크, 블루스 같은 여러 스타일의 음악을 편하게 주조해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는데요. 이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보컬리스트의 음색이 상당히 인상적이죠? 그가 바로 데리어스 러커라는 흑인인데요. 그의 깊이 우려낸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슬프게 들리는데요. 이들의 'Let her cry'나 'Time' 같은 곡들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좀 더 센 음악으로 가볼까요? 1984년, 뉴욕에서 결성된 흑인 4인조 메탈 밴드 리빙 컬러는 1988년에 발표한 데뷔앨범 < Vivid >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버논 레이드의 기타와 윌리암 칼혼의 묵직한 드럼 그리고 더그 윔비쉬의 리드미컬한 베이스에 실린 코리 글로버의 소울풀한 음색은 여타 메탈 그룹들과는 완연히 다른 펑키(Funky)한 메탈을 들려줬습니다. 이들에게 그래미 최우수 하드록 부문을 안겨준 'Cult of personality' 외에도 'Glamour boys'와 'Which way to America' 같은 곡들은 펑크(Funk) 록의 전형이죠.
1984년, 브라질에서 결성된 세풀투라는 쓰래시 메탈과 데스 메탈의 가교 역할을 한 밴드인데요. 이 팀의 중심은 보컬리스트 막스 카발레라와 기타리스트 이고르 카발레라였습니다. 막스 카발레라가 1997년에 탈퇴해 소울플라이를 결성하자 데릭 그린이라는 새로운 목소리를 영입했는데요. 그가 바로 흑인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록페스티벌을 위해 내한했을 때 데릭 그린의 노래를 직접 들었는데요. 흑인이 부른 'Roots bloody roots'의 그로울링도 들을만했답니다.
1989년, 미국 조지아 주에서 결성된 4인조 랩 메탈 밴드 스턱 모조는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팀은 아니지만 이들의 앨범은 국내에 라이센스로 출시된 적이 있습니다. 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림프 비즈킷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헤비 그루브는 단연코 이들이 최고였죠. 이 팀의 보컬은 본조라는 흑인 래퍼였기 때문에 훨씬 더 랩 메탈의 진수에 가까운 음악을 들려줬습니다.
영국의 4인조 밴드 스컹크 애이넌시의 역사는 1994년부터 시작됩니다. 펑크와 메탈, 인디 록을 축으로 하는 이들의 음악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 시대와 맞물려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냈죠. 그룹의 보컬은 스킨이라는 예명을 쓰는 민머리 흑인 여성인데요. 예전에 'Ive seen that face before'를 부른 그레이스 존스를 연상시키는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베이스 연주자 카스도 흑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