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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찰스처럼 컨트리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인물이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라이오넬 리치인데요. 그는 그룹 코모도스의 멤버로 있을 때부터 컨트리 음악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죠. 대표적인 노래가 1979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4위에 오른 'Sail on'입니다. 솔로로 독립해서는 'Stuck on you'나 1980년대 최고의 컨트리 그룹 알라바마와 함께 'Deep river woman'을 불러서 자신의 음악적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이 리치 헤이븐스보다 더 유명한 흑인 포크 싱어 송라이터가 있죠. 바로 트레이시 채프만입니다. 1988년에 발표한 'Fast car'로 조명을 받은 그의 모습을 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흑인이라는 것에 놀랐고, 남자처럼 생긴 체격 좋은 여자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죠. 왜소한 체구의 백인 남성일거라는 제 예상은 무참히 빗나간 겁니다. 이후에는 'Give me one reason' 같은 블루지한 곡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Baby can I hold you', 'Telling stories' 같은 포크 곡들을 주로 불렀죠. 포크 음악의 특성답게 리치 헤이븐스나 트레이시 채프만 모두 사회적인 내용을 노래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90년대에는 '제2의 지미 헨드릭스'라는 별명을 가진 아티스트가 등장하죠. 바로 레니 크라비츠인데요. 그는 지미 헨드릭스와 외모도 비슷했지만 기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록커임을 증명하는 인증샷이었죠. 지미 헨드릭스와 커티스 메이필드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레니 크라비츠는 'It ain't over till it's over' 외에도 'Stand by my woman', 'Fly away' 그리고 캐나다의 하드 록 밴드 게스 후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American woman' 등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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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좀 더 센 음악으로 가볼까요? 1984년, 뉴욕에서 결성된 흑인 4인조 메탈 밴드 리빙 컬러는 1988년에 발표한 데뷔앨범 < Vivid >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버논 레이드의 기타와 윌리암 칼혼의 묵직한 드럼 그리고 더그 윔비쉬의 리드미컬한 베이스에 실린 코리 글로버의 소울풀한 음색은 여타 메탈 그룹들과는 완연히 다른 펑키(Funky)한 메탈을 들려줬습니다. 이들에게 그래미 최우수 하드록 부문을 안겨준 'Cult of personality' 외에도 'Glamour boys'와 'Which way to America' 같은 곡들은 펑크(Funk) 록의 전형이죠.
1989년, 미국 조지아 주에서 결성된 4인조 랩 메탈 밴드 스턱 모조는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팀은 아니지만 이들의 앨범은 국내에 라이센스로 출시된 적이 있습니다. 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림프 비즈킷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헤비 그루브는 단연코 이들이 최고였죠. 이 팀의 보컬은 본조라는 흑인 래퍼였기 때문에 훨씬 더 랩 메탈의 진수에 가까운 음악을 들려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