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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은 주지하다시피 가창력에서 비롯되었다. 서서히 이름을 알렸던 2000년 '하루' (당시 송혜교, 송승헌의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제작부터 화제를 모았다.), 4년간의 '얼굴 없는 가수' 전략에서 탈피하게 한 노래이면서 김범수를 대표하는 곡 '보고 싶다' 그리고 이후 '가슴에 지는 태양', '슬픔 활용법',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그리고 '끝 사랑' 등의 노래는 히트여부를 떠나 외모를 잊어버리게 할 만큼 발군의 가창력을 전해주었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는 이름 석 자에 대중의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김범수는 하지만 그때까지도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중가수'의 면모를 거의 구축하지 못했다. 가창력이란 공간에서만 가련하게 존재했다. 데뷔한지 10여 년이 지나고서 빛을 보는 가수의 사례가 전에 있었던가. 대부분은 오래전에 소리 없이 무대를 떠나거나 가수가 아닌 다른 길로 일찍이 마음을 접는다.
초기 수년간은 존재감이 없었다. 하광훈이 쓴 데뷔작 '약속'은 실패하면서 바람 잘 날 없고 굴곡진 행보가 이어졌다. 데뷔 직후 4년 동안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굴 없는 가수라는 수식 아래 오디오형 가수로만 활동했다. 인터뷰 때도 사진촬영이 허락되지 않은 채 보도용으로만 배포되었다. 딱 한 번의 첫 TV 출연 후 음반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평소 외모 콤플렉스 따위는 없던 그에게 큰 상처였다.
심지어 2001년에는 '하루'를 알앤비(R&B) 장르로 전환하고 영어로 개사한 'Hello goodbye hello'가 빌보드 세일즈 차트에 51위에 오르는 기념비적인 도약에도 얼굴 없는 가수였기에 대중의 시선조차도 끌지 못했고 자축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3집의 히트곡인 '보고 싶다'로 탄력 받아 야심차게 발표한 '가슴에 지는 태양'의 4집은 성과가 미미했다. 가창력 과잉이라는 일각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후에도 드라마 < 천국의 계단 > OST로 알려진 발라드 가수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군 제대 후 2년 2개월 만에 발표한 6집을 통해 음악과 이미지의 변신을 노리고 비디오형 가수로 슬며시 자리를 잡으려 할쯤에는 그 역시도 아이돌 열풍에 휘말리게 되었다. 알만 한 사람들은 안다는 히트곡을 가졌음에도 김범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그때까지도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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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기획 상품도 더해졌다. 도도한 가사가 인상적인 민해경의 '그대 모습은 장미'는 차분한 시작으로 곧장 작업이라도 걸 듯 한 익살맞은 목소리, 후반부의 예상할 수 없는 뱃심 가득한 애드리브까지. 감미로운 목소리 속에서 여자라면 누구나 탐스럽지만 가까이하기엔 어려운 장미가 된 듯 착각 하게 한다. 유영진의 '그대의 향기'는 진심이 듬뿍 묻어나는 가사에 김범수의 나른함이 간질간질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지게 한다.
당시 나가수의 음원이 음악차트를 모조리 독식한 가운데에서도 그의 곡은 매번 상위권에 오르면서 존재감을 톡톡히 다졌다. 오직 노래로만 겨룰 수 있는 경연에서 빼어난 가창력은 물론이고, 안방까지 전해지는 서바이벌 경연의 긴장감은 특유의 예능 감으로 자연스레 풀어주었다. 나가수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이자 가수 이외의 인간적인 김범수는 어떤 남자일지 궁금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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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노래쟁이다. 음악분야에서 빼어난 목소리는 외모를 '업'해준다. 냉혹한 외모지상주의자라고 할지라도 “그가 갑자기 잘생겨져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쭈뼛쭈뼛 거리는 것을 찾을 수 없는 자세는 뭐니 뭐니 해도 남자는 자신감이라는 진리를 확실히 알려준다. '근자감'이 아니면서 어딘가 끌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남자는 재미가 없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곁에 없으면 찾게 되는 버라이어티한 남자가 김범수다.
이제 아무도 그를 얼굴 없는 가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신 스스로를 '비주얼 가수'라고 부른다. 위풍당당이다. 노래를 알리기 위해 예전처럼 얼굴을 숨길 필요가 없다. 음반 판매만 조용히 하라며 나무랄 사람도 없다. 오히려 김범수는 자체를 드러내야만 더 인기를 끄는 비주얼 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