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트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서 한국의 관객 매너에 익히 들었으며, 이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이에 화답하려는 분주한 사전 작업은 시작 전부터 있었다. 공연 도중에 펼쳐질 이벤트는 스크립트의 팬클럽 회원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광적이며, 열정적인 도리(?)를 위해서 몇 가지 소품이 지급되었다. 과연 어떤 모습의 장관을 펼칠지 내심 기대했다.
1400여 명의 팬들은 홀의 구석구석을 채우며 밴드를 기다렸다. 우선 무대 위 드럼 세팅부터 여타의 밴드와는 달랐다. 보통 드럼 세트는 무대 정중앙 맨 뒤에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세션 멤버의 악기와 앰프는 상대적으로 뒤쪽에 자리했고, 스크립트의 멤버인 글렌 파워(Glen Power)의 드럼이 앞쪽에 배치된 모습이었다.
'Science & faith'는 이들의 연주력과 함께 화려한 연출이 이어졌다. 이때 느껴진 것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굵직하다는 것이었다. 공연 전, '관객의 성비율'에 대한 인터뷰 질문에서 대니가 답한 대로 남녀 비율은 '50대 50'이었다. 말쑥한 외모에 쉽게들 들리는 이른바 '이지리스닝의 음악'을 연주하는 그들이기에 여성 팬의 비율이 높지 않을까 했지만, 예상은 어긋났다. 오히려 남성 팬들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The man who can't be moved'는 모든 소절을 따라 부르는 팬들을 위해 모든 연주를 멈추고 오로지 대니와 관객의 목소리만으로 공연장을 메우기도 했다. 어수룩한 발음의 “씨아(?)랑해요”, “찌애(?)미있어요?”라는 멘트는 역시 재미있는 팬서비스였다.
마크가 술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분 술 좋아하시나요? 누군가 한국은 아시아의 아일랜드라고 하던데요. 우리는 아일랜드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술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말이에요. 한국의 위스키(소주) 끝내주던데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서 “혹시 여기에서 술 마시고 전 여자 친구나 전 남자 친구에게 전화 한 사람 있어요?”라는 멘트에 이어, 대니는 “내가 전 애인에게 노래해 주겠다”며 어느 팬의 전화기를 전해 받았다. 관객과 함께 통화 속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넸고, 'Nothing'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통화는 노래가 이어지는 내내 끊어지지 않았다. 분명 하나의 커플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이벤트로 남겨졌을 것이다. 이 곡 도중에는 한국 팬들이 준비한 종이비행기가 공연장을 수놓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멤버들은 다시금 나타냈다. 첫 번째 앙코르 'You won't feel a thing'에 이어서 'Hall of fame'이 울려 퍼졌다. 팬들이 준비한 금박과 휴지를 흩날리며, 콘서트 막바지의 분위기를 한껏 더 고조시켰다.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모두에게 존재하는 '명예의 전당'은 말 그대로 우리가 모두 챔피언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이는 이날 현장을 찾은 모두에게 닿는 듯했다. “다시 돌아오겠다!”라는 작별 인사가 아쉽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공연을 금세 또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연은 만족 '그 이상'이었다.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면 짧았던 공연 시간이랄까. 그렇지만 스크립트라는 밴드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제대로 놀 줄 아는 밴드라는 것 또한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첫 내한 공연은 '스크립트 맛보기'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더 짙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거대한 문화 행사로 자리 잡은 '여름 록 페스티벌'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현장에 있었을 공연 관계자들은 이 밴드를 모셔오기 위해 고심하지 않을까 한다. 대기실에서 그리고 공연장에서 만난 밴드 멤버 3명은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지만 함께 했을 때 특별함이 더했다. 스크립트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즐기고 있었고,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팬들과 함께했다. 그들의 감성적이고, 낙천적인 에너지는 건강한 밴드의 모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