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와 사이키델릭이 큰 물결을 이루던 1970년 초에 캐롤 킹(Carole King)의 < Tapestry >가 세상에 선을 보였다. 역사적인 명반에 등극함과 동시에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전세계적인 궐기를 도모했던 바로 그 앨범이었다. 이 한 장이 만들어낸 흐름은 여성의 경제참여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던 일본으로 흘러들어갔고, 그렇게 제이팝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아티스트인 마츠토야 유미(松任谷 由実) 와 나카지마 미유키(中島 みゆき)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인물을 너무나도 쉽게 배제하곤 한다. 앞선 두 명의 출현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충격파를 가져단 준 가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츠와 마유미라는 이름은 낯설다. 물론 1980년 '恋人よ(연인이여)'를 전국적으로 히트시키는 등 꾸준한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누구도 그를 전설이라던가 개척자라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데뷔작인 < 少女 >의 언급이 더 중요해진다. 그 당시는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던 것들을 실현시키며 '작가'로서의 여가수를 처음으로 정의한 이 작품은 일본이 줄곧 가져왔던 서구에의 동경을 현실의 한 장면으로 가져왔다. 혁신이라 불렸던 마츠토야 유미(당시는 아라이 유미)의 < ひこうき雲 >(1973)보다도 무려 1년이나 앞선 일이었다.
요시다 타쿠로(吉田 拓郎)가 정립시킨 '싱어송라이터'의 범주를 여성으로 끌고 온 것에 대한 업적으로 한정한다면 그만이 언급될리는 없다. 일본 최초의 장기해외녹음. 이것이 음악 팬들과 평단을 들뜨게 했다.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한달에 걸쳐 이뤄진 레코딩, 그리고 편곡자를 제외한 전원을 현지 스탭으로 기용한 대담함. 신인에게라고는 믿기 힘든 이런 과감한 투자는 '확신'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이 불가능했다.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 하는 건 또 있었다. 바로 참여한 이들이 면면이었다. 그래미 수상자인 존 피슈바흐(John Fischbach)를 프로듀서로 맞아들였고, 무엇보다 키보디스트의 자리에 캐롤 킹이 있었다. 그와 함께 기타엔 당시 남편이었던 찰스 라키(Charles Larkey)와 당시 꽤나 영향력 있었던 컨트리 록 밴드 니티 그리티 더티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로 잠시 활동했었던 크리스 대로우(Chris Darrow)까지. 이 별들에 둘러쌓인 정체를 알 수 없는 혹성이 과연 제 빛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과연 이츠와 마유미가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느냐 하는 걱정이 커져갔지만, 그는 모든 사람을 뮤지션 대 뮤지션으로 대하며 전체의 물길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한다. 피아노를 막 배우기 시작한 그가 캐롤 킹의 연주를 지적하고 주문을 넣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세계'를 창작의 무대로 만드는 데에 있어 쓸데없는 친절의 불필요함을 알린 인상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다.
결과물은 서양의 섬세한 연주와 비약적인 레코딩 기술을 기반으로 포크와 가요곡 사이의 과도기적 음악에 충실하고 있다. 일본 전통 민요의 음계와 1960년대의 핵심이었던 현대적 포크를 중심으로, 여기에 웅장한 오케스트라 편곡이나 디스토션 기타가 전면에 등장하는 팝적인 편곡을 시도함으로서 외국 스탭에 의한 도움을 극대화시켰다. 무엇보다 중점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그의 보컬이다.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시바타 준(柴田 淳)의 여린 감정선과 나카지마 미유키가 가진 내재적인 강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듯한 음색은 첫 해외 녹음임에도 더욱 곧게 뻗어나가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이 음반의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대담함은 '처음'이라는 단어에 너무나 어울리는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키 트랙인 '少女(소녀)'는 단출하지만 그래서 더 깊은 울림이 있다. 캐롤 킹의 강한 건반터치로 시작하는 이 곡은 철저히 팝적인 화성으로 시작하지만 1절이 시작되며 급격히 본토의 색으로 전환된다. 이후 드럼과 스트링이 절정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함께 상승하는 반주와 목소리의 볼륨이 곡이 끝난 다음에도 여운을 남긴다. '汚れ糸(더럽혀진 실)'에서는 전반부의 정갈함을 넘어 적극적인 록 사운드로의 접목을 시도했다. 중간에 등장하는 기타 솔로, 폭주하는 듯한 피아노와 하몬드 오르간의 협연은 러닝타임 내에서 가장 폭발적인 순간을 유도하며 성과에 대한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건넨다. 기교를 뺀 가창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枯葉が舞う時(고엽이 춤출 때)', 샤미센의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空を見上げる夜は(하늘을 올려다본 밤은)'과 같은 넘버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데뷔작 안의 보석들이다.
그가 닦아놓은 해외 녹음이라는 길은 1년 뒤 핫피엔도(はっぴいえんど)의 < Happy End >(1973)를 시작으로 야마시타 타츠로(山下 達郎)의 < Circus Town >(1976), 사노 모토하루(佐野 元春)의 < Visitors >(1984), 하마다 쇼고(浜田 省吾)의 < J.BOY >(1986) 등에 의해 재차 발자국이 찍혔고, 그 기술과 영향으로 하여금 일본음악 신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인물이 업적에 다소 가려져 있긴 하지만, 이처럼 그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맨 땅 끝 뿌리와도 같다.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했다고 해서 싹을 틔우려 한 그 용기까지 폄하 받을 이유는 없다. 시대를 풍미하지는 못했지만 한 시대를 만드는 데 일조한 그의 기개. 분명 후대의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사람들이 마츠토야 유미를 기억하고 나카지마 미유키를 떠올리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