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녀가 포크 그룹 해바라기에서 활동을 시작해 김영미, 이광조, 이정선, 이주호 등과 함께 노래를 불렀을 때에는 그녀의 보컬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1970년대에 내놓은 그녀의 솔로 앨범 두 장 역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영애는 한동안 연극 배우로 활동하며 가수 생활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에 담겨 있는 삶에 대한 원숙한 시선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그녀의 스케일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1985년까지 6년간의 공백, 하지만 스스로 노래를 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1986년 다시 솔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한영애의 음악은 완전히 달라졌다. 첫 앨범에서 블루스적인 질감을 폭발시킨 '건널 수 없는 강'은 한영애를 주목하게 만들었고, 1988년에 참여한 신촌블루스의 1집은 한영애를 한국의 대표적인 블루스 보컬로 각인시켰다. 그리고 송홍섭의 프로듀싱으로 만든 한영애의 두 번째 앨범은 여러 싱어송라이터들의 곡들을 록 음악 어법으로 조율하며 한영애의 음악적 역량을 폭발시켰다. 서늘하고 슬픈 곡과 일상적인 곡, 선언이 빛나는 곡을 가리지 않고 한영애는 모든 노래를 사무치게 만들었다. 탁성의 거친 보컬임에도 존재감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세션들의 명연주를 리드하는 보컬의 힘은 한영애표 음악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한영애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음반은 결국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명반이 되었다. 이 앨범으로 한영애는 당시 한국의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는 여성 뮤지션으로 공인되었다.
1995년에 출시된 4집 < 불어오라 바람아 >와 2003년에 내놓은 < Behind Time > 역시 한영애의 음악 역량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좀 더 어쿠스틱하고 성숙한 사운드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 < 불어오라 바람아 >는 한영애가 이병우와 함께 작사 작곡에 도전했다는 점에서도 한영애의 성장을 증거한다. 반면 테크노 음악을 시도한 4집 < 난.다 >에 이어 발표한 5집 < Behind Time >은 젊은 창작집단 '복숭아'와 함께 한국의 옛 가요를 리메이크하면서 기존의 명곡들을 과감하게 재해석했다. 옛 노래에 깃든 신파적 처연함을 때로는 더욱 증폭시키고, 때로는 색다르게 변주하면서 한영애는 정해진 노래의 틀 안에 갇히지 않고 다만 노래의 본질만을 생생하게 뽑아낼 줄 아는 노래꾼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게다가 그녀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아우라가 있다. 샤먼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 노래 안에 혼을 담고, 듣는 이를 뒤흔들어버리는 그녀의 보컬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만큼 힘이 세다. 그러나 그녀의 보컬에 감응하게 되는 것은 단지 강한 고음을 내지르기 때문이 아니다. 노래 안에 담긴 감성의 스케일을 허허롭게 재현해내는 탁월함과 자유로움이야말로 한영애를 여느 보컬과 구별 짓는 이유이다.
애써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노래를 내던지듯 피워 올리는 그녀의 노래는 주문이다. 대지를 껴안고 하늘을 노래하는 여신이 여기에 있다. 이국의 여신이 아니라 바로 이 땅의 여신이다. 온 기쁨과 온 슬픔이 그녀의 노래로 피고 진다. 서러워도 좋고, 무심해도 좋고, 끓어올라도 좋다. 이 노래처럼 흘러갈 수만 있다면.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 : bandobyu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