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넬의 음악은 다 똑같은 것 같고 너무 비슷하다”는 말을 한다. 넬의 음악은 거의 모든 곡을 보컬 김종완이 만들고 넬 멤버들이 편곡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에 다른 가수의 피쳐링도 없이 순전히 보컬 김종완의 목소리가 담기니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 그러나 노래를 듣다보면 비슷함 안에 다름이 있고 익숙함 속에 낯섦이 있다. 그것이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넬의 매력이다.
넬의 음악을 말로 표현하자면 듣는다는 말보단 음악에 취한다는, 홀린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사운드, 그 안에 쓰인 서정적인 가사와 그 이야기를 읽어주는 마력의 미성은 마치 나를 맴돌고 에워싸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듯하다.
이런 '넬스러움'의 주역. '넬'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바로 넬의 목소리, 보컬 김종완이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참 좋아한다. 특유의 숨소리 섞인 음색으로 살짝은 간지러운 목소리, 나에게만 이야기해주는 듯 속삭이는 목소리는 귀를 기울이게 하고 집중하게 한다.
|
김종완의 목소리와 더불어 넬이 지닌 '넬스러움'의 또 다른 힘은 가사이다. 넬의 음악을 듣다보면 그저 듣고 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꼭 가사집을 찾아보게 된다. 음악만 들었을 때 흘려 지나쳐버린 가사를 글로 접하는 순간은 새롭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넬로 인해 재탄생된 한 편의 시는 음악이 주는 감동에 더해져 가슴 속에 들어와 박힌다.
그 때문인지 내 이야기를 하는 듯한 그들의 읊조림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혼자서만 품고 있던 나의 마음을 알아주며 이해해주는 것 같다. 앞에서 직접적으로 “힘내라고, 이겨내라고,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해주지는 않아도 뒤에서 “너 뿐만 아니라 나도 힘들다고, 우리 모두 그렇다고” 토닥여주고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 어떤 기운찬 말보다 더욱 더 위로가 되고 위안을 받는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 니가 필요로 하는 나의 모습이 같지가 않다는 것 /
잘못된 건 아니지 않나요 / 미안할 일 아니지 않나요 /
그런데 왜 또 그렇게 자꾸 날 몰아세우는 건데 / 도대체 뭐를 더 어떻게 해 /
난 몇 마디의 말과 몇 번의 손짓에 / 또 몇 개의 표정과 흐르는 마음에 /
울고 웃는 그런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 대체 내게서 뭐를 더 바라나요 /
내가 줄 수 있는 것 그 이상을 줄 수 없음에 / 미안해야 하는 건 이제 그만 둘래요
(한계 - 3집 < Healing Process > 중에서)
유난히 내 주변에만 산소가 모자란 듯 / 숨이 막히고 미칠 듯 답답해요 /
하늘이 무너져 내려 떨궈진 내 눈물이 / 발밑에 구름 위로 흩어지네요 /
나를 떠나지 마요 나를 떠나지 마요 나를 떠나지 마요 /
그래요 나란 사람 참 힘들죠 / 고장 나 버렸단 걸 알아요 /
그래도 날 포기해 버리진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
고쳐질 수만 있다면 사실 난 아주 아름다울 테니 /
그러니 부디 놓아 버리지 말아요
(Separation Anxiety - 4집 < Separation Anxiety > 중에서)
지나가더군요 마음이 어떻든 시간은 그렇게 계속 흘러가고 /
믿기 힘들었던 받아들일 수 없던 / 그 모든 일들에 익숙해지네요 /
멍하니 있다 눈물이 흘러 누가 볼까 봐 고갤 떨구고 /
도망치듯 그 자릴 피하긴 해도 /
풀려진 신발 끈을 묶으려 주저앉다가 무너져 내려 /
순간 모든 게 멈춰 버리긴 해도 익숙해요
(Part 2 - EP < The Trace > 중에서)
넬의 음악 하나하나에 개인적인 추억이 담기고 감정이 남아 '넬'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그저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과 음악'이상으로 나를 돌아보고 기억하는 존재이다. 가만히 음악을 듣다보면 잊고 있던 사람들도 생각나고, 지나온 여러 일들도 생각나며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 되짚게 된다. 그 기억이 비록 행복하거나 기쁜 일만은 아니어도 잠시나마 그 시절을 회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