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로서의 투철한 마인드가 워낙 유명한지라 박주원의 인터뷰를 앞두고 긴장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냉철할 것 같았던 그는 오히려 시종일관 유쾌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박주원은 인터뷰 내내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면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밝은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덕분에 이 지면을 통해 솔직하고도 긴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었다.
잘 모르겠어요. 반응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졌어요. 1집 때는 데뷔 앨범이니까 주변 반응이 당연히 궁금했죠. 이곳저곳 찾아도 보고 뭔가 비판을 받으면 당황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2집 때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1집과 비교를 하니까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고요. 그랬는데 이번에는 앨범 작업부터 공연까지 뒤를 돌아볼 새가 없이 진행됐어요. 그러다보니 저 스스로도 반응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것 같고요.
연주자로서 이 만큼 조명을 받는 뮤지션도 드문 것 같다.
이루마 같은 분들도 있는데...(웃음) 저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조명 받지 못하는 동료 음악가들을 위해 열심히 하고자 하는 책임감 같은 건 있어요. 저 스스로도 아직 자리를 못 잡았으니 많은 것을 해줄 능력은 없지만 대중들에게 많이 소개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래 축구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긴 했는데 이번처럼 축구에 대한 소재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음반은 처음인 것 같다. 어떤 이유가 있는지.
캡틴이 꼭 축구를 내세운 제목은 아니에요. '캡틴 No.7'이라는 제목이 박지성 선수를 의미하기는 하지만 그 곡보다 앨범의 제목이 더 먼저 나오기도 했고요.
이번 앨범에서는 특히나 보컬을 배제하고 기타 속주에 앨범의 포인트가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한 의도가 있는지.
특별한 의도는 없어요. 저번 앨범 때도 보컬 곡을 두 곡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보통 곡을 만들고 난 뒤 느낌을 따라서 보컬을 정하고 스타일을 정하는 편이예요. 원래 뭘 해야겠다는 의도나 이유를 가지고 하면 잘 안 되더라고요. 즉흥적으로 원하는 방향을 따라가는 게 결과도 가장 좋아요.
'카발'이나 '명암'처럼 OST 곡들을 편곡할 때 주안점에 둔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OST 곡들은 영상과 같이 나오다보니 곡이 묻히기가 쉬워요. 특히 '카발'과 '명암'은 그렇게 잊히기에는 뭔가 아쉬운 곡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렇다고 곡을 그대로 다시 실을 수는 없으니 편곡을 거쳐서 실은 거예요. 그러던 과정에서 '카발'은 원곡보다 화려하게 편곡되었고 '명암'은 보다 단출하게 실렸어요.
'Just the way you are'는 원래 클럽 공연시절 자주 연주하던 곡이었어요. 언젠가는 한 번 실어야지 하다가 지금이 된 거죠. 'Temple of the king'은 기타리스트 12명이 뭉쳐서 만든 '십이지신'이라는 유닛의 공연에서 나온 곡이고요. 작년 공연의 주제가 '록의 명곡들'이어서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연주했는데 제가 택한 곡이 'Temple of the king'이었거든요. 마음이 가니까 별 망설임 없이 실을 수 있었어요.
작업을 위해 양수리에서 지내거나 이태원에서 칩거를 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양수리에서 지냈던 기간은 사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웃음) 반대로 이태원에서 보낸 시간은 도움도 많이 되고 집중력도 좋았는데 그 곳에서 작곡부터 녹음까지 모든 작업을 했어요. 원래 집을 잘 떠나지 않는 성격이에요. 3집에서만큼은 예외로 작업실에서 많이 지낸 것 같아요. 옷 한 벌에 먹고 자는 것 외에는 다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을 정도니까.
작업할 때 까다로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스로의 기준이나 작업방식이 있는가.
특별한 것은 없어요. 느낌을 믿는 편입니다. 가령 타악기가 필요하면 제가 간단하게 타악기를 연주해서 연주자에게 들려주는 식이예요. 연주자의 디테일한 부분을 듣고 필요한 만큼만 취합해요. 앨범을 들어봤을 때 별로라는 생각이 들면 섣불리 발표하지 않으려고 해요. 가장 민감한 부분이기도 한데 저 스스로 까다로운 검열과정을 가지고 그것에 맞추려고 계속 노력하는 거죠.
이번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어떤 곡인가
'겨울날의 회상'이 제일 좋아요. 그렇긴 한데 항상 앨범이 나오면 완벽하게 만족하기 힘들어요. 어떤 곡은 별로였다가 밤에 우연히 들어보니 너무 좋을 때가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많고요.
코미디언 신보라는 어떻게 섭외한 것인가.
'그 멜로디'라는 곡이 일반 여자 가수들이 하기에는 그다지 특별한 곡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일반적인 가수가 소화하기엔 좀 거리가 멀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가수 분들이 저마다 습관과 고집이 있다 보니 라틴 팝이라는 곡의 장르와 서로 충돌할까 염려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한 층 편한 신보라를 선택한 거예요. 제게도 의미가 있는 결정이었고 신보라도 너무 좋아해서 빠르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신)보라는 확실히 감각이 있더라고요.
선생님이 하시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처음 뵈었어요. 다른 편한 친구들이 하는 방송보다 훨씬 부담이 돼서 떨었던 기억도 있네요. 그런데 선생님이 한참 어린 연주자인데도 예의를 갖추시고 진심으로 대해주시는 것이 참 좋더라고요. 그게 인연이 되어 2집 앨범 작업 때 같이 '방랑자'를 만들게 된 거예요.
아이유 앨범에도 참여를 했다. 어떻게 작업하게 되었나.
아이유 프로듀서 분이 슬픔의 피에스타를 듣고 연락을 주셨어요. 저만의 색으로 아이유의 곡을 작업해달라고 제의를 받은 거죠. 최백호 선생님 같은 경우도 아이유와 작업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집시 재즈곡과 보사노바 스타일의 곡을 써서 선생님께 보내드렸어요. 그랬더니 좋다고 하시면서 듀엣도 흔쾌히 허락해주셨죠.
본격적으로 음악을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한 것인지.
드러머인 아버지의 영향 덕분인지 어릴 적부터 집에서 적극적으로 음악을 배우게 했어요. 유치원 대신 피아노 학원을 다녔을 정도니까. 그 영향에 피아노를 다섯 살 때부터 배웠고 기타는 아홉 살에 잡았지요.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도 흥미를 발견했고요. 2000년 즈음에는 메탈 성향의 밴드로 시작을 하다가 군대에서 우연히 집시 음악을 접하고 집시 기타로 길을 바꿨어요. 처음에는 집시 음악을 어떻게 내 방식대로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그 때 페렝 스넷베르거(Ferenc Snetberger)라는 기타리스트의 라이브를 보게 되었어요. 클래식과 재즈의 어법을 결합한 음악을 하던 음악가였는데 여기서 감명을 받고 방향을 정했죠. 그 이후 집시 밴드를 조직하기도 하고 클럽 공연도 다니면서 제 스타일을 실험해보기 시작한 거고요.
하루에 연습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아무래도 콘서트가 있으면 계속 연습을 해요. 콘서트 때는 몇 시간 전에도 반복해서 연습할 정도예요. 연주자가 지겨워서 죽을 정도로 해야 실제 공연에서 제대로 나오는 것 같아요. 막상 공연에서는 연주자가 연주에 신경을 쓸 수가 없어요. 제 이름을 걸고 공연을 하니까 조명은 잘되는지 세션들은 앙상블이 맞는지 다 체크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제 연주는 아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연주가 나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고요.
우리나라 음악 사정상 프로로 데뷔하는 가장 안정적이고 빠른 길은 실용음악과잖아요. 우리나라가 학벌을 중시하는 경향도 있다 보니 세션을 한다고 하더라도 실용음악과가 안정적이고요. 선배들도 많을 거고 이름값이라는 것도 있으니. 사실 꼭 그런 학벌이 연주력을 담보한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거지만 나름 음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이것이 간절할 수밖에 없어요. 멀리보고 자기 음악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니 더욱 그렇고요. 그런데도 실용음악과를 나온 저조차도 실용음악과를 추천하기는 애매한 상황이에요. 하지만 이런 상황은 누가 실용음악과가 별로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바뀔 일은 아니에요. 그냥 세상의 흐름을 따라갈 뿐이지.
박주원이 생각하는 집시 음악의 매력은 무엇인가.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화려한 멜로디, 다이내믹한 리듬 그러면서도 느껴지는 슬픈 감정이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한을 많이 담은 음악이에요.
현재 즐겨 듣는 음악을 추천하자면.
프랑스 출신 스패니쉬 기타리스트 니콜라스 드 안젤리스(Nicolas De Angelis)의 '슬픔의 안나를 위하여 눈물로 쓴 시(Quelques Notes Pour Anna)'. 이 곡은 멜로디가 특히 좋아요.
마지막으로 최근 높아지고 있는 집시나 재즈 음악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지만 대중의 관심이 상당히 높아진 것은 맞아요. 그래도 여전히 침체된 다른 장르가 많잖아요. 균형 있게 발전을 했으면 하는데 아직은 부족한 편이죠. 예전에 대중음악상을 받으면서 소감을 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대중들이 더 많은 장르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거든요. 최근 전자음악이 대세가 되면서 더 위축된 것 같아 아쉽긴 한데 그래도 아이돌이나 포크 뮤지션들이 비주류 음악과 협업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 김반야, 이기선
사진 : 이한수
정리 : 이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