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 해에 나온 수많은 음반들 가운데 20~30장만을 추리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최대한 많이 들어보고 그 때 그 때 음반의 완성도를 기록해두거나 기억해두지만 음악의 완성도를 완벽하게 절대 평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손에 꼽을 만한 몇 장의 음반을 제외하고는 어떤 음반을 넣고, 어떤 음반을 뺄지 늘 고민스럽다. 그동안 네이버, 다음 등의 매체를 통해 참여했던 결산들을 참고하고, 다른 평론가들의 결산도 훑어보지만 빠른 시간 안에 명쾌하게 순위가 매겨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음반을 평가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부터 고민스럽다. 음반을 평가하는 것이니 당연히 음악성을 중심에 두면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음악성이라고 하는 기준에 절대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음악성에 절대적인 근거가 있다면 음악평론가들의 의견이 똑같을 텐데 그런 게 없고 있을 리도 없으니 음악을 꾸준히 많이 들어온 평론가들의 의견도 항상 엇갈린다.
음반에 담긴 음악을 구성하는 것이 단순히 사운드만도 아니다. 음악은 내적으로는 가사와 멜로디, 비트, 화성 등의 조합이지만 컨텍스트적인 측면에서는 현실의 반영이며, 현실의 재창조물이다. 그래서 단순히 노래를 잘했다거나 연주가 좋다고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어떤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 결과 어떤 사운드와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함께 보아야 한다.
또한 대중음악은 아티스트 한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음악 산업이라는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한 장의 음반을 만들기 위해 관계 맺고 작동하며 그 결과 변화하는 기술, 법규, 시장, 산업 구조, 조직 구조, 직업 경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의미 있는 작업도 분명히 있다. 단순히 사운드의 완성도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올해의 음반을 뽑는 과정은 이 모든 요소를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감안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뽑을 때 마다 어렵다. 하지만 스스로 정한 원칙은 분명히 있다. 내가 들어서 좋았던 음반,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음반을 뽑는 것이다. 다른 평론가나 대중들이 아무리 좋았고, 의미 있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음반을 뽑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평론가에게 나타날 수 있는 지적 허영 역시 피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다.
이처럼 평론가로서 솔직한 나의 주관을 드러냄으로써 차이를 분명히 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평론가 중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아서인지 각자의 결산을 보면 각자의 다른 관점과 지향이 보인다. 그 차이와 맥락을 읽는 것이 연말 결산의 즐거움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평론가들이 애써 뽑은 올해의 음반 같은 결과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온라인이라는 매체가 없어 인쇄매체에 정보와 관점을 의존해야 했던 시대에 평론가들이 가졌던 지적 권위는 인터넷의 등장 이후 대중들에게 이전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정보와 관점을 얻을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특정 전문가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면서 대중은 스스로의 취향을 더 존중하게 되었고 심미안과 관점은 취향으로 흡수 통일되었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취향이 다른 상대적인 차이만이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면서 평론가들의 의견 또한 존중해서 들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취향으로 게토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연말 결산을 뽑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렇게 게토화된 의견이나마 솔직하게 제출하는 것이 평론가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음반을 듣고, 음악을 듣는 것이 음악을 만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서 음악을 듣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해도 결국 음악은 제 스스로 듣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제 귀로 음악을 듣고,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와 정서를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은 혼자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다.
아무리 많은 이들과 함께 음악을 듣는다 해도 음악을 듣는 순간은 모두 개별적인 순간이다. 음악을 듣는 개별적인 순간의 울림과 사유, 그것은 자아가 깨어나는 순간이며 자아가 더 많은 자아로 이루어진 세계와 만나는 순간이다. 음악을 듣는 일은 바로 그 순간을 갖게 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그 순간을 열어주는데 길잡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오늘도 나를 말하게 한다. 그렇다. 모두 당신 때문이다.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 : bandobyu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