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가수라고 하기에 조금은 곤란하다. 인순이는 하지만 추억을 먹고살지 않고 지금도 왕성하게 음반과 공연 활동을 펼치면서 까마득한 후배 가수들과 무대를 나누며 인기를 겨룬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아니 우뚝 선 전설이다.
2009년에 그는 <판타지아>라는 타이틀을 내건 통산 17번째 신보를 발표했다.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앨범의 재킷을 보면 1957년생으로 나이 50살을 넘긴 노장이 아니라 이효리 엄정화 못지않은 젊은 여가수라는 인상을 준다. 이어서 2013년에도 인순이는 18집 앨범 < Umbrella(우산) >를 내놓고 앨범활동에 다시금 박차를 가했다. 그 에너지와 드라이브가 놀랍다.
그의 열정은 앨범보다도 무대에서 빛을 발한다. 예나 지금이나 무대를 뛰어다니며 엄청난 파워를 내뿜는다. 이러니 늙어 보일 수가 없다. 그 말은 스스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강렬하고 젊은 이미지를 뿌려대기에 인순이는 그 나이대의 가수로선 드물게 영 제너레이션과의 소통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늘 공연무대에서 강했지만 젊은이들마저 그의 존재를 확고히 인식하게 된 결정적 전환점은 2004년 후배 뮤지션 조피디와 함께 만든 곡 '친구여'가 빅히트하면서부터였다. 여기서 젊은 세대는 비로소 인순이가 얼마나 비범한 가수인가를 새롭게 인식했다. 인순이는 젊은 여가수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노래 장악력과 가창의 힘을 훌륭하게 구현했다. 젊은이들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곡의 편곡자 박근태는 말한다. “어느 날 조피디가 도움을 청하더라고요. 고민을 해 보겠다고 한 게 인순이씨가 섭외가 되겠냐 해서 섭외가 되면 제가 한 번 해 보겠다고 했어요. 인순이씨 말고는 파워풀한 가수는 없다는 판단이었고 서로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섞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순이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미지가 젊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젊어지셨죠.”
마침 그 시점은 '다문화'가 사회적 키워드로 부상하던 때였다는 점도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혼혈이라는 신분이 이전까지의 차별적 푸대접이 아닌 긍정적 요소로 해석되면서 그의 스탠스가 더욱 견고해진 것이다. 게다가 이듬해인 2005년,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한 혼혈 다니엘 헤니의 열풍이 불었다.
인순이와 다니엘 헤니를 계기로 윤수일 박일준 등 과거 1970년대부터 활약해 온 혼혈가수들이 일제히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시작했다. '친구여'와 더불어 히트 가수로 부활하면서 이후 행보는 더 다이내믹해졌다. 'Higher'와 '열정' 같은 에너지 가득한 노래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흑인음악의 필(feel)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팬들에게 보란 듯 시범했다.
기를 회복한 인순이는 내친 김에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전략을 구체화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공연이든 음반이든 팬들이 인순이하면 언제나 열정적인 댄스리듬의 노래만을 떠올리는 것에 대한 불만이요, 아쉬움이었다. 사실 이전에 인순이는 오로지 숨 가쁜 노래 '밤이면 밤마다'의 가수로만 인식되어 왔다.
가창력은 어쩔 수 없이 <나는 가수다>가 증명하듯 빠른 템포의 노래보다는 조금은 느린 발라드에서 진가가 나온다. 제대로 자신의 노래솜씨를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발라드 히트곡을 내놓고 싶은 마음은 가수라면 공통분모라 할 만큼 간절하다. 하지만 팬들이나 음악관계자들이나 자신한테 한결같이 '밤이면 밤마다' 풍의 빠른 노래만을 원하는 바람에 설령 앨범에서 발라드를 불러 타이틀곡으로 밀어도 실패만을 거듭할 뿐이었다. 발라드 히트송을 갖는 것은 애원이자 로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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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의 꿈'은 인순이 가창력의 개가이자 적절한 선곡이 가져온 승전보였다. 사람들은 '거위의 꿈'을 들으면서 혼혈로서 인순이가 겪은 온갖 설움과 차별의 벽에 공감하며 그에게 아낌없는 동정표를 던졌다. 인순이가 굳이 리메이크 곡으로 '거위의 꿈'을 선택한 것도 거기서 자신의 처지와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나를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노래 그대로 거위의 꿈을 실현한 인순이를 보고서 다시 한 번 가수의 기본을 생각해 본다. 진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가창력일 것이다. 아무리 무대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더라도, 예쁜 얼굴 덕에 인기를 누리더라도 마이크를 잡은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 우리의 비주얼 가수, 아이돌 가수들에게 이런 기본의 부재가 자주 목격된다. 심지어는 라이브를 못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는 뻔뻔한 가수들도 있다.
인순이가 혼혈의 벽을 딛고, '거위의 꿈' 노랫말처럼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었던 것도 관객들의 혼을 빼앗고 자신의 노래에 집중하게 만드는 빼어난 가창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없으면 잠시 화제가 되어 부상할 수 있어도 결코 롱런의 꿈을 갖지 못한다.
인순이의 파워 싱잉이 어느 정도인가는 많은 음악관계자들이 증언한다. 그중 하나가 웬만큼 노래 잘하는 가수라도 인순이와의 합동무대는 피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인순이씨 다음에 나를 배치하면 어찌하라는 거야. 너무 비교되는 것 아니에요?” 언젠가 한 여가수는 인순이가 한번 휩쓸고 간 뒤에 다음 순서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버럭 화를 냈다. 때문에 여러 가수들이 출연하는 행사에서 인순이는 대부분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다. 다른 가수들이 인순이가 나오기 전에 자기 차례를 주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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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표현이 진실하고 어찌할 수 없는 흑인의 혈통을 가진 덕에 그의 노래는 우리 가슴 깊숙이 숨은 인간미에 대한 공감을 자극한다. 또 한 차례의 발라드 히트 레퍼토리가 된 곡 '아버지'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실한 노래로 관습의 장벽을 넘어서 모두가 인정하는 자기 영역을 구축한 인순이의 승리는 하나의 귀감이다.
2012년 6월 <나는 가수다>의 스페셜 공연으로 여수 엑스포 무대에 섰던 그는 관객들의 열렬한 요청으로 7월에 다시 엑스포장 공연을 가져 '파워 디바', '라이브 퀸'의 위상을 확인했다. 어느 스테이지에서나 늘 그렇다. 노래에 모든 것을 걸고 언제나 혼신의 열정으로 임하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앙코르 요청을 주고 용기를 환급받는다. 인순이의 열정 퍼레이드는 희망의 전도(傳道)를 동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