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년도는 S.E.S와 동기지만 인기로는 후발대에 줄을 섰던 베이비복스, 얼굴마담이자 메인보컬이었던 간미연이 싱글앨범을 종종 발표하긴 하지만 아이돌 기세에 밀리고 있다. 아쉽게도 걸 그룹출신 가수들은 해체 후 홀로서기를 하더라도 전성기를 잇지 못한다거나 새로운 트렌드에 뒤처지고 만다. 상당수가 안방극장이나 버라이어티로 방향을 튼다. 그런 면에서 서인영은 조금 특별하다. 어느 분야에 있어도 '가수'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다.
서인영은 주얼리 2집 < Again > 에서 조민아와 합류하게 되었다. 아직도 이때의 막내 서인영을 기억한다.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앳되었고 살짝 도톰한 입술에 보조개가 들어가는 것이 신효범을 닮은 듯 했다. 작은 체구에 안무도 능숙하게 구사했던 것 같다. 당시 열아홉 살 이었던 서인영은 풋풋한 음색에 적당히 허스키했고, 어딘지 모를 개성이 느껴졌다. 1절의 첫 소절과 후렴구를 리더 박정아가 이끌면 서브보컬 서인영은 2절에서 고스란히 이어받아 야무지게 밀어주었다.
신인 가수에 팀 내 막내지만 자신의 역할을 똑 부러지게 소화했다. 후속곡 '투나잇'은 물론 앨범에 수록된 'How are you?'라는 곡에서도 보컬을 리드하며 슬며시 윤곽을 들어냈다. 완벽한 세공을 거치지 않은 원석 서인영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단연코 2집이다. 3집 '바보야'라는 곡에서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 인상은 강렬하지만 미소를 지을 때는 청순하고, 음색은 여리지만 단단한 힘이 있는 목소리를 가진 것이 감춰놓은 무언가가 있을 것 만 같았다.
2006년, 업타운의 정연준이 프로듀싱을 한 첫 솔로 앨범 < Elly Is So Hot > 을 발매한다. 타이틀 곡 '너를 원해'의 콘셉트는, 짙은 눈 화장에 누드 톤 입술, 긴 생머리에 뱅 앞머리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스타일과 흡사했다. 콘셉트 뿐 아니라 이집트 사운드와 섹시한 안무, 그리고 냉소적인 보이스로 서인영을 다시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해 주얼리 5집, 짧게 자른 머리와 함께 < Kitchi Island > 로 컴백했고 타이틀곡 'One more time'으로 대박을 쳤다. 여기서부터 박정아의 주얼리가 아닌 서인영 주축의 주얼 리가 되었다. '모두다 쉿!', '모를까봐서' 등 역시 서인영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싸이와 유건형이 합작하여 만든 서인영 솔로 2집 '신데렐라' 활동이 그 정점. 그가 유행시킨 골드 브라운 헤어컬러를 까맣게 바꾸고, 하이웨스트 패션, 킬힐 그리고 속눈썹 춤까지 서인영의 캐릭터를 몽땅 담아냈다.
이후 7년간 몸담았던 그룹 활동을 해체 후 진정 솔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서인영의 선택은 댄스곡이 아닌 차분한 발라드였다. 박선주의 곡을 리메이크한 '잘 가요 로맨스'를 시작으로 '사랑이라 쓰고 아픔이라 부른다.' 등으로 주로 댄스곡만을 소화했던 그에게서 대중들은 서인영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리듬 속으로', '오 마이 가쉬'는 센 언니 콘셉트의 부활 같으면서도 방향을 잘못 짚는 듯했지만 방황도 잠시였다. 쿠시가 작곡한 'Any more'로 다시 돌아왔으며 디스코풍의 일렉트로닉 댄스 곡 'Let's dance'로 자리를 잡았다.
컴백 콘셉트에 적극 참여하는 그의 면모는 '나를 사랑해줘'까지 이어졌다. 일명 '청청 패션', 까만 선글라스, 헤어밴드, 그리고 워커로 이루어진 복고콘셉트는 서인영의 의견이 다수 반영되었다. 봄여름에 발표한 '헤어지자'는 서인영표 발라드로 돌아왔지만 아이돌 홍수 속에 밀리고 말았다. 노래를 지도하는 박선주의 지휘에 맞춰 진중하게 불러내는 모습은 마녀 서인영이 아닌 가수 서인영을 제대로 느끼게 했다.
노래하는 발음이 모두 정확하지만 특히 '시옷'과 '지읒' 발음에 묘한 매력이 있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유독 그 받침을 정확히 짚어낸다. '가르쳐줘요, 신데렐라, 내 가슴속에 수갑을 채워 줄, 나를 사랑해줘,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걸' 등의 가사가 특히 그렇다. 그를 성대모사하려면 분명 시옷과 지읒에 강조를 두면 제대로 짚어내면 비슷할 것 같다.
서인영이 끌리는 것은 다방면에서 열정을 쏟아 붓는다. 오디션 심사는 물론, 연기(SBS 드라마 '스타일'), 예능, 패션 디자이너 등 결과에 상관없이 성실히 임한다. 남자 엠씨들이 짓궂게 털기 춤을 주문해도 '싫다, 너무 오래 됐다.' 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웃으면서 한방에 털어(?)준다. 애교를 보고 싶다고 하면 이제 나이가 들었다고 하면서도 곧장 해준다. 노래요청에는 당연히 쭈뼛거림이 없다. 그런 점에서 MBC < 오빠밴드 >와 케이블 방송 < 서인영의 카이스트 > 그 부분을 잘 살려냈던 것 같다.
인기를 얻고 여유가 생길수록 다른 분야로 시선이 끌리기 마련이지만 꾸준한 피처링 참여와 OST발매 등으로 솔로 여가수의 존재감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가 지원사격을 하는 곡은 인기를 얻어 흥행 보증수표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노래를 하는 공간에는 어디든 참여했다. < 불후의 명곡 >, < 유희열의 스케치북 >, < 윤도현의 러브레터 >, 심지어는 2009년 MAMA에서 선배가수 심수봉과의 트리뷰트 무대를 펼쳤다.
가수로서의 첫 시작이 다른 멤버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서브역할이었고 인기도 뒤늦게 얻었지만, 홀로 본인을 챙겨야 할 차례가 왔을 때 비축해온 실력을 과감 없이 펼쳐낸 것이다. 컴백을 위해 매번 고민을 거듭하고 무대구성부터 패션까지 하나하나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모습이 가수 서인영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 무릎팍 도사 >에서 '여가수의 삶이란?'이라는 질문을 받고서 '산 넘어 산'이라고 이야기 한바있다. 무언가 힘들게 넘고 나면 또 다른 험난한 산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연예계 생활이 재미있다고도 이야기했다. 투덜대면서도 무엇을 하던 빠른 적응을 보이는 서인영이 멋지다. 솔로로 전향 후 속도 조절을 하는 것에도 아름답다. 퍼포먼스에 치우친 것이 아닌 노래 욕심이 있다고 하는 것에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때나,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꾸밀 때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마인드가 인상적이다. 누구에게도 끌려 다니지 않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대세만을 쫓지 않는 '여가수 서인영' 자체가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