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가 조금 넘어 시작된 상영회는 알앤비 가수 유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 Beyonce > 뮤직비디오에 앞서 아틀란틱 시티 공연 실황 하이라이트가 상영되었다. 애피타이저 격 영상이라고 생각했기에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 평소 이어폰이나 모니터를 통해 접하던 비욘세와 달랐다. 두 영사기가 전달하는 화질의 뚜렷함과 스크린 아래 튀어나온 고가 스피커에서 울리는 진동이 현장감을 구현해냈다. 'Crazy in love', 'Diva', 등 노래는 물론, 안무도 눈에 선할 정도로 익숙한 히트곡들이었지만 새로웠다. 흔한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보는 3D영화보다 리얼했다. 내용물 또한 이 양질의 시설에 걸맞으니 관객을 압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의 짧은 강의 끝, 쏟아지는 질문들이 그치고 나서야 17편의 뮤직비디오가 연속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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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참가자들의 준비가 한창이다. 아름다움을 가꾸고 있지만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대회가 시작되고 진행자가 후보 비욘세에게 묻는다. “당신의 인생에 '염원'은 무엇입니까?” 뒤이어 나오는 16편의 뮤직비디오가 각각 다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앨범 중심을 관통한다.
정말 다르다. 'Blow'는 복고 디스코 풍이고 'Drunk in love'는 근래의 힙합 트랜드인 트랩이다. 'Partition'에서 비욘세는 스트리퍼지만 'Heaven'에서 그는 유산된 아이의 어머니다. 노래의 색은 물론, 영상의 심도와 온도까지 천차만별이다. 심오하고 오싹한 미장센을 담은 'Haunted'가 있는가 하면 놀이동산에서 놀면서 찍은 듯한, 행복한 'XO'가 있다. 워낙 가지각색이라 지루할 틈은 없다. 단지 영화처럼 스토리나 긴장감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영어 가사를 듣고 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기에, 여러 관객, 조금은 피곤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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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향유함에 있어, 아는 것은 힘이 아닌 재미다. 이 78분짜리 영상 쓰나미 위에서 파도를 타려면 가사를 알아야 했다. 다양한 음악, 영상과는 반대로 모든 노랫말이 같은 주제에 수렴한다. 남녀 간이든 모녀간이든,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사랑으로 엮인다. 'Rocket'은 성관계를 앙증맞게 풀어냈고, 'Superpower'는 사랑에서 반전(反戰)까지 그 범위를 확장시킨다. 밀리터리 의류 브랜드 광고 같은 영상이 가사의 의미를 잔잔하게 증폭시켰다. 단순히 느리게 행진하는 것이 섬세하게 매혹적이다.
비디오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결정체가 사랑인 것은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다. 딸 'Blue'를 키우는 어머니인 동시에 여전히 'Jealous'를 느끼고, 그 이가 항상 'Mine'이길 바라는 보통의 여자다. 모성애, 질투와 소유욕이 여러 감성과 면모 같지만 결국 사랑이다. 세계적인 팝스타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비욘세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갈구하는 천생 여자다.
그가 그토록 사랑을 노래하는 이유는 첫 곡에서 답한 염원 때문이다. 앨범의 제목마저 < Beyonce >인 것을 고려할 때, 그의 삶에 핵심적인 가치관이다. 사랑은 그것을 향한, 가장 가까운 수단이다. 때론 동일시 될 정도로 밀접하다. “당신의 인생에 '염원'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비욘세는 “행복해지는 것입니다.”라고 답변한다. 당연하지만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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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적인 가창력의 여자 솔로 가수가 육감적인 몸매로 추는 춤을 동반한다면 언론은 그를 그 나라의 비욘세로 빗댄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오른다. 이러한 비유가 의미 없는 것은 각자의 색이 있어서가 아니다. 비욘세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넘어 의식이 깨어있는 아티스트다. 제 2의 비욘세 치고 사회나 본인의 예술 세계와 인생에 확고한 신념이 있는 가수, 거의 없다. 그게 차이다. '꿀벅지'라는 이름의 튼실한 허벅지와 파워풀한 성량은 일부일 뿐이다. 클래스의 차이를 확인시켜 준 상영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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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 hurts'와 'No angel'에서 비욘세는 불완전한 것에 애정을 표하지만 행사는 조금 더 보완되어야 한다. 예술 영화를 위한 기름진 시설에서 진행되는 '앨범 상영회'라는 기회만으로도 팝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축복이었지만 더 보강해 이러한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근래에 한국에서도 수요가 있는 해외 뮤지션들이 본인의 앨범을 단편 영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힙합 신만 봐도 이미 2010년에, 카니예의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가 단편 영화화 되었었고, 이 시대의 클래식 < good kid, m.A.A.d city >의 각본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켄드릭 라마가 언급한 바 있다. 여러 앨범에 걸쳐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선보인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 Wolf >는 예고편도 공개된 상태다. 뮤직 비디오의 형식을 빌린 단편영화나 비욘세의 비주얼 앨범을 볼 때, 이제는 음악과 미술이 함께 가는 종합 예술의 시대다. 뮤직 비디오를 통해 급격하게 성장한 유튜브가 증명한다.
이러한 흐름과 호흡하기 위해 팝 앨범 상영회에 자막과 해설이 필요하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집에 와서야 앨범의 값진 의미를 이해했다. 가사를 알 수 없었고 영상의 의도를 해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장소와 소소한 카메오들도 많았지만 직접 검색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한 번의 감상으로 아티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해 할 수 는 없겠지만 자막과 해설이 가미된다면 배로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