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야외 공연이 안내됐지만, 주최 측이든 관객이든 날씨에 대해선 불안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최근 저녁마다 조금씩 내린 비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기상청이 안전한 날씨를 약속해도, 이상하게 공연 날만 되면 심심치 않게 찾아온 빗줄기는 공연을 준비한 사람과 즐기는 사람 모두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구촌이 인정하는 실력파 뮤지션, 존 메이어(John Mayer)의 첫 내한 공연은 하늘도 그의 진가를 알고 계셨는지 구름을 찾기 어려운 화창한 하늘 아래 진행됐다. 피크닉 존까지 운영하며 록 페스티벌 분위기의 콘서트를 주도한 주최 측의 바람이 올바르게 실현된 것. 덕분에 야외에서 듣기 좋은 그의 음악은 그 감동이 배가 되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존 메이어의 첫 내한 공연을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겸손'이다. 그의 품격은 신사라는 단어를 수차례 언급해도 부족함이 없으며, 공연에 대한 예의범절을 지킬 줄 아는 멋쟁이였다. 일단 시작 시각인 오후 7시가 되자 1분도 지체하지 않은 채 밴드 멤버와 함께 무대에 올라섰다. 관례라도 되듯, 몇십 분씩 지각을 일삼는 내한 공연의 염려가 일순간에 사라진 순간이다. 그뿐인가, 밴드 전원이 노란 리본을 달며 제프백(Jeff Beck) 이후 국외 뮤지션들이 만들어낸 세월호 추도 물결에 동참했다. 파란색 빈티지 재킷과 머플러,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쓰고 올라선 그의 첫인상이 올바르고 단정해 보일 수밖에 없다.
< Born And Raised >(2012)의 'Queen of california'로 첫 곡을 알린 그는 곧바로 멘트를 이어가며 데뷔 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한국 팬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몇 주 전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돕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한 그는 공연 당일 판매된 상품 수익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밝혔고, 공연장의 팬들은 박수갈채로 그 마음에 응답을 보냈다.
기타를 바꾸며 두 번째로 나선 곡은 데뷔 싱글 'No such thing'이었다. 이번 무대가 최근 일본에서 열린 공연 셋 리스트와 비슷하게 갈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는데, 일단 두 번째 곡까지의 흐름은 크게 다르진 않았다. 놀라운 진행은 세 번째로 들려주기 시작한 'Belief' 부터. '한국 팬들이 원하는 떼창을 알려주면 미리 준비하겠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는 불과 며칠 전 열린 일본 공연과는 다른 셋 리스트를 준비하여 팬들을 열광시켰다. SNS부터 인터뷰까지, 언급한 작은 약속들을 모두 지켜낸 것이다.
이날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모두 기타에 대한 조예가 깊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즉, 연주에 대한 지식을 특별하게 갖추지 않았음에도 연주 모습과 들려지는 소리만으로도 관객들은 마치 서커스 공연의 일부를 보듯 '와~'를 일순간에 외치게 된 것이다. 21세기에 등장한 뮤지션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기타쟁이의 실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놀라움을 만들어내는 힘이 존재하다는 걸 증명하는 현장이었다.
'Wildfire', 'Dear marie', 'Why georgia', 'A face to call home' 등 18곡을 1시간 40분 동안 들려준 그는 어두워진 공연장을 계속해서 따뜻하게 감쌌고, 앙코르곡 'Gravity'를 마지막으로 “See you again!”을 외치며 한국에서의 짧은 첫 만남을 마쳤다.
이번 존 메이어의 내한은 예상과는 다르게 매진이 되지 않아 걱정스러운 시선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감히 전 세계를 존 메이어 열풍으로 만들어낸 < Continuum >(2006) 때보다 한참이 지났고, < Born And Raised >부터 블루스 형식과 컨트리로 더 깊숙하게 파고든 그의 음악 스타일은 자국인 미국에선 여전히 들끓었지만, 다른 나라에선 점점 반응이 미지근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투어의 선곡 역시 신보 < Paradise Valley >(2013) 를 중심으로 진행했기에 '추억의 노래'들을 얼마나 확보하여 관객과 교류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걱정들은 존 메이어가 평소 공연에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임하는지 알지 못한 오해일 뿐이었다. 그는 무조건 신보만 알리려 고집 피우지도 않았고, 관객이 원하는 것, 그리고 관객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여 먼 길을 찾은 이들에게 만족을 전달했다. 정상에 선 음악가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였다.
그가 다시 오고 싶다고 의사를 밝힌 만큼, 이날 공연을 보는 페스티벌 관계자들은 재빨리 머릿속에 계산기가 두드려졌을 것이다. 재즈 페스티벌이나 록 페스티벌에 적격인 그를 놓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기 때문이다. 머나먼 한국 땅을 처음 밟는 데는 14년이나 걸렸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그 횟수가 높아지리라 의심치 않는다. 2014년 5월 6일. 한국에도 존 메이어의 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존 메이어 독사진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