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음악만이 전부가 아니고, 세상에는 무궁무진한 음악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음악은 소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정치 등 다양한 요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음악을 듣는 것은 결국 음악에게 자신을 들키는 것이며, 자신과 세계를 발견하는 방법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날 강의가 200여명에 가까웠던 청소년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강의가 좋았다며 강의 후에 열린 작은 사인회에 서른 명쯤의 청소년들이 줄을 서서 내 사인을 받아갔지만 그들의 마음 속 울림은 오직 그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강의를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거의 14시간이 지나있었다. 꼬박 하루가 걸린 강의였지만 기꺼이 다녀왔던 것은 전교조가 주최한 행사이기 때문이었고, 청소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그들보다는 내가 음악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내가 40여년 동안 알게 된 것들을 이야기 하면서 음악을 보는 다른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가장 예민하고 가장 호기심이 넘치는 그 나이 때 읽고 들은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나이 때 들었던 음악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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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라디오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대중음악의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길거리 노점상이 팔던 인기팝송 모음집이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당시 MBC와 KBS의 AM과 FM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들, 가령 <김희애의 인기가요>와 <임국희의 영화음악>,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김기덕의 두시의 데이트>, 이상벽이 진행했던 <금주의 인기가요 20>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들은 나를 라디오키드로 만들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상벽의 프로그램에서 처음 들국화의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어느 프로그램에선가 이문세의 <휘파람>과 <소녀>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두 시의 데이트에서 <고독한 양치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3분 내외의 짧은 곡이었지만 그 음악들은 내 마음을 음악 속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게 했다. 음악 한 곡을 들었을 뿐인데 내 마음이 무너져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음악이라는 늪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날마다 라디오를 듣지 않을 수 없었고 용돈을 모아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둘씩 사모으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노래들은 공테이프를 이용해서 녹음했다. 그렇게 날마다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나의 취향을 발견했다. 내가 멜랑콜리한 노래를 좋아하고, 동아기획 뮤지션들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래가 심금을 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노래를 듣는 순간은 나도 모르는 나를 찾아 유영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2집을 들으면서는 노래가 나뿐만 아니라 세상과 만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것은 그 때 들었던 음악이 평생을 간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 들은 어떤 음악들보다 그 때 들었던 음악들이 더 깊은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후에 들었던 음악들이 훨씬 더 다양하고 수준 높았지만 어떤 음악도 그 때의 노래들만큼 생생하게 기억되지는 못했다. 그 때 들었던 노래들은 아무리 오랜만에 다시 듣더라도 전주 몇 초만 들으면 노래 가사와 연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노래를 듣다보면 가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나의 감성과 취향, 스타일에 그 때의 음악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바로 그 나이 때 더 많은 음악, 더 다양한 음악을 찾아 듣게 자극하고 싶었다. 음악을 듣는 기쁨,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자신을 발견하고 더 많은 세상을 이해하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돕고 싶었다. 그 때의 음악이 나를 만들었듯 지금 그들이 듣고 있는 음악이 미래의 그들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음악으로 성장했고 음악으로 오늘의 자신이 되었다. 음악이 만들어 준 나. 그 수많은 음악들과 뮤지션들에게 어떤 말로 그 고마움을 다 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