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배의 미학 혹은 구색 맞추기…
터키 영화계의 자랑, 누리 빌제 세일란 감독의 역작 <윈터 슬립>에 황금종려상을 안기며 제 67회 칸영화제(5월 14일∼25일, 현지 시각)가 11박 12일 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이미 말했듯 세일란 감독은 생애 최초의, 터키 영화로는 1982년 일마즈 귀니의 <욜> 이후 사상 두 번째 영예다. 3시간 16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 긴장감 넘치는 내러티브를 선호하는 심사위원장 제인 캠피온의 영화적 취향 등 크고 작은 불리 요인에도 불구하고, 작가주의의 어떤 정점을 제시한 영화는 세계 최고 영화제의 정상에 등극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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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상 격인 심사위원대상은, 이탈리아 알리스 로어바하의 <더 원더즈> 품에 안겼다. 르 필름 프랑세 종합 평균 평점 1.1점밖에 받지 못한데다, <윈터 슬립> <미스터 터너> <팀북투> <투 데이즈 원 나잇> <리바이어던> 등 숱한 화제작들에 가려 별 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기에 30대 초반의 신예 여성 감독이 빚어낸 두 번째 연출작이 거둔 쾌거는 '이변'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균 평점 2.6점의 호평에, 스크린 지 기자로부터는 4점 만점을 득한 영화는 수상권에 들기 충분했다. 열세 살 소녀의 눈을 통해 본, 주목할 만한 성장 영화인 것. 특히 인류학적 향기 가득한 영화의 속내는, 그 간 목격해온 여느 이탈리아 영화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그 영화만의 개성을 듬뿍 선사했다. 더욱이 1993년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와 공동으로 자신이 가져간 이래 단 한 명의 여성 감독도 황금종려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어 칸 특유의 성 차별이라 비판하며 개막 현장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 심사위원장 제인 캠피온 등 5인의 여성 심사위원들이 여성 감독에게 각별한 배려를 하지 않을까 등의 의구심이 일찌감치 돌았지만, 그건 별 근거 없는 억측에 지나지 않았다.
이변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터. 종합적으로는 칸 현지 평자들로부터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다르넨 형제의 <투 데이즈 원 나잇>이나, 시의성 짙은 실화를 안정감 있는 연출로 극화해 그만의 정치·종교적 문제의식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아프리카 모라타니아 출신 압데라만 시사코의 <팀북투>가 일찌감치 황금종려상 감으로 회자됐건만 무관에 그친 것이다. 판단컨대 그 결과는 2014 칸의 최대 이변 (어쩌면 오점?) 기록될 공산이 크다. 그 대신, 경쟁 부문 아닌 비경쟁 부문에서 선보였더라면 모양새가 한층 더 좋았을 노거장 장 뤽 고다르의 <언어여 안녕>에, 캐나다의 스물다섯 살 청년 감독 자비에 돌란의 <마미>와 공동으로 심사위원상을 안겼기에 해보는 개인적 예측이다.
이 두 영화가 수상 자격이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의 공동 수상이, 안배를 넘어 구색 맞추기 아니냐는 의심 내지 비아냥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고 판단돼서다. 유난히 칸(의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80대 중반의 노장과, 5년 전장편 데뷔작 <난 엄마를 살해했다>로 감독주간에 초청되며 파란을 일으켰던, 다섯 번째 연출작으로 경쟁 부문에 첫 입성한 젊은 스타 감독을 한 데 묶어 상을 안겼으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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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상인 감독상을 미국 베넷 밀러의 <폭스캐처>에, 남자 연기상을 마이크 리 감독의 <미스터 터너>의 티모시 스펄에, 여자 연기상을 캐나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맵스 투 더 스타즈>의 줄리안 무어에, 그리고 각본상을 스크린 지 기자에 의해 최 강력 황금종려상 후보로 점쳐졌던 러시아 안드레이 즈비아진체프의 <리바이어던>에 선사했다는 데 등에 눈길을 주면, 안배 내지 구색 맞추기는 절정에 달한다. 아프리카와 남미를 제외하면 전 대륙의 다양한 참가국 영화들에 상을 고루 나눠준 것이다.
지역적 안배만이 아니다. 이미 언급했듯 신구의 조화도 절묘하다. 최고령 감독과 최연소 감독에게 공동으로 심사위원상을 준 것만이 아니다. <맵스 투 더 스타즈>의 크로넨버그 감독은 70대며, <미스터 터너>의 마이크 리 감독은 60대다. 세일란과 즈비야진체프는 50대다. 그리고 베넷 밀러는 40대 말이다. 의도한 바는 아닐지 몰라도, 2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10년 단위로 전 연령층에 상을 안긴 것이다. 게다가 일본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스틸 더 워터>와 더불어 유일한 여성 감독, 그것도 30대 초반의 감독이 심사위원대상이란 큰 상을 거머쥐었다. 흥미롭지 않은가?
한편 또 다른 공식 섹션인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은, 헝가리의 중견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의 <화이트 독>이, 신인 감독상인 황금 카메라상은 주목할 만한 시선 개막작으로 일찌감치 큰 화제를 모았던, 클레어 뷔르제 등 세 프랑스 감독들이 공동 연출한 <파티 걸>이 가져갔다.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는 수준 급 작품성과 큰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수상엔 실패했다. 그럼에도 경쟁 진출작이 2년 연속 없어 위기론까지 대두된 한국 영화가 올 칸에서 거둔 성과는 또 다른 주목을 요한다. 그 주목 등에 대해서는, 다음 칸 이야기 마지막 탄에서 해야겠다(계속).
전찬일(영화 평론가)